잠시 멈추어도 된다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잠시 멈추어도 된다.




잠시 멈추어도 된다.

멈춤은 패배가 아니다. 길은 곧게 뻗지 않는다. 길은 굽고, 끊기고, 때로는 길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추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외려 길을 살아내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사람은 걷는 존재이지만, 사람은 또한 멈추는 존재다.

우리는 종종 바쁨을 덕목으로 여긴다. 쉼 없이 달리는 자를 성공한 이라 부른다. 달림만이 삶의 본질은 아니다. 화살처럼 달리는 시간 속에서 자아는 희미해진다. 끝없이 달리면 목적은 사라지고, 그저 달리는 행위만 남는다. 멈춤은 그 달림 속에서 방향을 다시 세운다.

나무는 위로만 자라지 않는다. 추운 겨울, 나무는 멈춘다. 눈보라 속에서 잎을 떨구고, 땅속으로 깊이 뿌리를 내린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지만, 그 멈춤이 나무를 살린다. 사람의 삶도 같다. 멈춤은 죽음이 아니라, 더 깊이 살아내는 방식이다.

삶에는 고비가 있다. 병으로, 실패로, 이별로 길이 끊긴 듯한 순간이 온다. 그때 멈추는 것은 당연하다. 울어도 좋다. 쓰러져도 좋다. 멈춤은 패배의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숨 고르기다. 다시 일어나기 위해 몸을 낮추는 일이다. 강물도 멈춘 듯 고이는 웅덩이가 있어야 더 멀리 흐른다.

세상은 멈추는 이를 조급하게 몰아세운다. 뒤처진다고, 낙오된다고 말한다. 멈춤은 뒤처짐이 아니다. 멈춤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위해 걷는지 묻는 시간이다. 그 질문 없이는 걷는 길이 헛바퀴가 된다.

사람의 상처도 멈춤 속에서 아문다. 서두르면 상처는 덧난다. 천천히 기다려야 살이 붙고, 새 살이 돋는다. 고통은 급히 치유되지 않는다. 멈춤은 상처를 다독이는 과정이다. 침묵 속에서, 기다림 속에서 상처는 제 빛깔로 회복된다.

사랑도 멈춤 속에서 자란다. 함께 달리기만 하는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멈추어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 고요 속에서 손을 잡는 순간, 사랑은 깊어진다.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마주 앉을 때, 마음은 다시 살아난다.

멈춤은 길의 한 부분이다. 길은 직선이 아니다. 오르막과 내리막, 고요와 폭풍, 멈춤과 달림이 함께 길을 만든다. 멈추어야 다시 걸을 수 있다. 멈춤이 없는 길은 없다. 멈춤 없는 삶은 없다.

그러니 잠시 멈추어도 된다. 그것은 나약함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더 깊이 끌어안는 순간이다. 멈춤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의 뿌리다. 멈춤 속에서 사람은 다시 길을 찾는다. 멈춤은 곧 길이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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