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청람 김왕식 연작소설
《피맛골 사람들 》
3편
― 변주승, 기타를 든 사내
밤은 길다. 무대는 낮다.
불빛은 싸구려다. 전구가 깜박거린다. 담배 연기가 천장에 붙는다. 술잔이 비어 간다. 손뼉 소리가 눅다.
변주승은 검은 기타를 안는다. 줄은 낡았다. 손끝은 굳었다. 굳은살 위로 땀이 난다. 땀은 짜다. 짠맛이 혀끝에서 돌다가 사라진다. 사라진 자리에서 노래가 올라온다. 목이 말라서 노래가 간다. 그래도 부른다. 노래가 밥이고, 밥이 임대료다. 임대료가 사람을 살린다. 사람을 살리는 동안 노래는 늙는다.
그는 피맛골에서 자랐다. 골목은 좁았다. 비가 오면 물이 담장에 올라 붙었다. 겨울이면 흙벽이 얼었다. 여름이면 파리가 떼로 붙었다. 아버지는 막노동을 했다. 상수도관을 땅에 묻었다가, 공사판이 끝나면 짐을 풀었다. 손마디가 굵었다. 손등 털이 희어졌다. 일 끝난 날, 아버지는 국밥을 먹었다. 뚝배기에서 김이 올랐다. 국물을 들이켜면 땀이 났다. 그 땀이 밥값이었다. 어머니는 좌판을 폈다. 담배와 과자와 라이터. 손톱에 과자 가루가 묻었다. 어머니는 구두를 닦았다. 닦인 구두에 하늘이 비쳤다. 하늘이 비쳐도 구두는 구두였다.
주승은 열세 살에 기타를 줍는다. 서울역 앞 고물상에서 떼어 온 깎인 목재, 끊어진 줄, 벌어진 브리지. 그는 흰 실과 하얀 본드로 틈을 메웠다. 젓가락을 잘라 브리지에 끼웠다. 세 번째 줄이 자꾸 어긋났다. 그는 줄을 죄었다. 죄고 또 죄었다. 손톱이 깨졌다. 피가 났다. 피가 마르니 소리가 났다. 삑삑거렸다. 그래도 소리였다. 소리는 길이었다. 소리를 따라가면 어디든 갈 수 있었다. 가난한 아이의 지도를 노래가 그렸다.
독학이었다. 라디오를 붙잡고 멜로디를 베꼈다. 노랫말은 종이에 적었다. 철자 틀린 줄도 많았다. 밤마다 빨랫줄에 악보를 널었다. 비가 오면 악보가 번졌다. 번진 글자 사이로 새로운 노래가 보였다. 작은 창문 틈으로 달빛이 들어왔다. 빛은 종이에 얇게 눕고, 노래는 그 위를 흘렀다. 소년은 그 흐름을 외웠다. 외움은 재산이었다.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아버지의 허리가 나갔다. 공사장에서 넘어졌다. 허리뼈가 소리를 냈다. 병원비가 장롱을 비웠다. 어머니의 좌판이 얇아졌다. 얇아진 좌판 위에 소년의 기타가 올라섰다. 그는 낮에는 짐을 나르고, 밤에는 골목의 술집을 돌았다. 새로 문을 연 다방에서, 오래된 포장마차에서, 창문이 없는 지하 술집에서 노래를 팔았다. 가게마다 기타 줄이 한 번씩 끊어졌다. 그때마다 주인이 욕을 했다. 욕은 짧고 익숙했다. 익숙한 욕은 사람을 덜 다치게 한다. 그는 줄을 갈았다. 줄은 다시 소리를 냈다.
밤무대는 반지하였다. 천장은 낮았다. 천장에는 물때가 앉았다. 전구가 노랗게 탔다. 손님들은 웃었다. 웃음은 견고했다. 견고한 웃음이 가끔 무너졌다. 무너지는 자리에서 노래가 들어갔다. 그는 사람들이 놓친 박자를 주워 노래를 세웠다. 박자가 사람을 붙들었다. 붙들린 사람은 잠시 덜 외로웠다.
사장이 있었다. 배가 나왔다. 손톱을 길렀다. 반지는 굵었다. 사장은 웃지 않았다. 웃음 대신 계산을 했다. 계산이 끝나면 손뼉을 세 번 쳤다. 그 소리가 일이 끝났다는 신호였다. 흰 봉투가 건너왔다. 봉투는 얇았다. 봉투 안에서 종이가 울었다. 울음은 금방 멎었다.
형사가 있었다. 밤마다 와서 앉았다. 식은 표정. 불 켜진 유리잔. “허가증.” 그는 허가증을 내밀었다. 형사는 허가증을 읽지 않았다. 허가증은 요식이었다. 요식은 일이었다. 일 뒤에는 다른 계산이 왔다. 사장이 돈을 내밀었다. 형사는 돈을 읽지 않았다. 돈은 유효했다. 형사는 담배를 피웠다. 연기가 노래를 덮었다. 덮인 노래가 더 멀리 갔다. 멀리 간 노래가 사람의 가슴을 더 늦게 쳤다. 늦게 치는 노래가 오래 남았다.
그해 여름, 주승은 영화관 옆 클럽으로 옮겼다. 간판에 ‘나이트’라고 적혀 있었다. 낮에는 불이 꺼지고, 밤에는 불이 깜빡였다. 깃발이 펄럭였다. 바닥은 끈적했다. 끈적임 위를 구두가 미끄러졌다. 남자들이 넥타이를 풀었다. 여자들이 웃었다. 웃음은 금속처럼 딱딱했다. 딱딱한 웃음이 부서질 때, 그 자리에 노래가 눌렸다.
그는 무대에 섰다. 사회자가 이름을 불렀다. “변주승 군, 요즘 뜨는 청년.” 뜨는 청년은 땅에서 떼어질 수 없었다. 그는 발바닥으로 무대를 눌렀다. 무대는 흔들렸다. 흔들리는 무대가 어지러웠다. 어지러움 속에서 노래가 나왔다. 기타 줄이 떨렸다. 떨림마다 아버지의 허리가 올라왔다. 어머니의 좌판이 올라왔다. 피맛골의 담장이 올라왔다. 노랫말이 골목을 지나 사람들의 입술로 갔다. 사람들의 입술에서 그의 노래가 다른 노래가 되었다. 다른 노래가 더 많은 사람을 붙들었다.
한 곡은 금지곡이었다. 라디오에서 사라진 곡.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이유는 늘 있었으나,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분위기 때문에.” “시국 때문에.” “윗선 때문에.” 그는 이유 대신 노래를 외웠다. 금지곡은 좋은 곡이었다. 좋은 곡일수록 금지였다. 금지는 밤에만 풀렸다. 밤에는 금지의 손이 느슨해졌다. 느슨해진 틈으로 노래가 빠져나왔다. 그는 그 틈을 알았다. 틈새의 길을 외웠다. 틈새로 들어간 노래는 날았다. 날아가다 잡혔다. 잡히면 맞았다. 맞으면 알았다. 아픈 것을.
검열이 왔다. 80년이었다. 광주의 비명이 라디오를 끊었다. 무대 위에 군화가 올랐다. 군홧발이 작지 않았다. 사장의 입술이 떨렸다. 돈이 빠르게 움직였다. 굵은 손이 빠르게 받아갔다. 주승은 기타를 내려놓았다. 기타가 바닥에 놓이자 소리가 끊겼다. 끊긴 소리 뒤에 침묵이 왔다. 침묵은 공허가 아니라 쓴맛이었다. 입 안 가득한 쓴맛. 그 맛이 오래갔다. 오래가는 맛은 상처였다. 상처는 굳었다. 굳은 상처가 곡의 첫 소절이 되었다.
그는 소리를 낮췄다. 낮춘 소리가 깊었다. 노래의 몸이 바뀌었다. 윙크나 돌림노래보다 더 느리고, 더 짧고, 더 곧았다. “기름 냄새가 코에 밴 골목 / 겨울 새벽에” 같은 말들이 음표 없이 흘렀다. 관객은 조용했다. 조용함은 무시가 아니라 집중이었다. 집중이 늘어날수록 술은 식었다. 식은 술잔 옆에 어두운 눈이 생겼다. 눈 안에 각자의 피맛골이 들어 있었다. 노래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가끔 멈췄다. 멈춘 자리에 숨이 났다. 숨은 관객과 가수를 잇는 줄이었다. 줄이 끊어지지 않게 그는 박자와 인내를 잡았다. 인내는 악보에 없다. 몸에만 있다.
그는 낮에 악기를 닦았다. 현을 끓는 물에 담갔다가 식혔다. 녹이 빠졌다. 밤에 사람을 맞았다. 가끔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국밥집에서 노래를 한 소절 부르고, 복순이 다방 문턱에서 기타를 한 번 튕겼다. 윤길중의 복덕방에는 가끔 포스터를 붙였다. ‘라이브 오늘 밤’ 같은 문구. 윤길중이 도장을 찍어줬다. 도장 소리가 기타 울림과 박자를 맞췄다. 그 박자가 차분했다. 차분함으로 사람은 버틸 수 있었다.
겨울, 서울역에서 지내던 사내가 골목으로 왔다. 정상일이었다. 손등에 흙이 박혔다. 하수구를 뚫는 사람. 주승은 그에게 악기 케이스를 건넸다. “이거 들어주시오.” 케이스는 무거웠다. 무거운 것을 드는 손은 마음이 가벼웠다. 정상일이 웃었다. 웃음은 드물었으나 진했다. 진한 웃음이 무대 뒤편에 오래 남았다. 가끔 그 웃음이 악기의 울림통처럼 소리를 키웠다.
그해 봄,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다. 오디션이었다. 낮 녹화. 낮은 그에게 낯설었다. 그는 무대에서 내려와 머리를 감았다. 빗이 머리에서 미끄러졌다. 양복을 빌려 입었다. 팔이 좀 짧았다. 어깨가 팽팽했다. 라이터를 버렸다. 손톱을 깎았다. 손톱 밑에 흙이 남았다. 흙은 노래의 근육이었다.
스튜디오는 차가웠다. 마이크가 컸다. 빨간 불이 들어왔다. 그는 첫 소절을 불렀다. 소리는 좋았다. 좋을수록 그래서 위험했다. 심의위원이 손을 들었다. “가사 수정.” 다섯 글자가 잘렸다. 잘린 자리에서 숨이 끊겼다. 그는 다른 단어를 넣었다. 단어는 들어맞지 않았다. 안 맞는 단어가 리듬을 어겼다. 어긴 리듬이 노래를 넘어뜨렸다. 넘어지는 동안 시간은 길었다. 길어진 시간 속에서 그의 얼굴이 굳었다. 카메라가 그 얼굴을 찍었다. 웃음이 필요했다. 그는 웃지 못했다. 오디션은 끝났다. 그가 방송국 앞 계단을 내려올 때, 비가 왔다. 카메라보다 큰 빗방울. 양복은 젖었다. 젖은 양복은 무거웠다. 무거움은 오래 기억됐다.
그는 다시 밤으로 돌아왔다. 무대는 그를 기억했다. 기억은 배척과 다르다. 무대는 배척하지 않았다. 대신 비용을 요구했다. 기타 줄, 마이크, 앰프, 전기, 세금, 봉투. 봉투는 여전히 얇았다. 얇은 봉투를 쥔 손이 떨릴 때, 그는 귀를 골목으로 돌렸다. 골목에서 노래의 첫음이 났다. 아이가 휘파람을 불었다. 아주머니가 국물 떠내는 소리가 박자를 찍었다. 오토바이가 지나가며 드르륵 소리를 남겼다. 소리들이 합쳐졌다. ‘도’가 아닌 소리, ‘솔’이 아닌 소리. 그래도 사람 사는 소리. 그 소리 위에 가수가 올라탔다. 노래는 원래 사람이었다.
철거 소식이 돌았다. 종이에 붉은 글씨가 찍혔다. ‘협조’. ‘이주’. ‘보상’. 글씨는 무심했다. 무심한 글씨가 사람의 물건을 부수었다. 김철희 반장이 나타났다. 헬멧과 안전화. 줄자. 단단한 눈빛. 악의는 없었다. 없다고 일이 덜 아프지 않았다. 그는 무대에 올라 “오늘이 마지막”이라 말했다. 거짓말이었다. 마지막은 다음 날에도 있었고, 그다음 날에도 있었다. 하루하루가 마지막 같았다. 관객은 고개를 숙였다. 숙인 머리들이 물결처럼 움직였다. 그는 금지곡의 첫 소절을 띄웠다. 누군가가 눌렀다. 버튼일 수도 있고, 눈빛일 수도 있었다. 형사가 들어왔다. 사장이 나갔다. 돈이 오갔다. 노래가 끊겼다. 그는 웃었다. 침묵을 손바닥으로 쪼갰다. 그리고 아이 노래를 불렀다. 박수 소리가 났다. 형사의 뺨이 굳더니 풀렸다. 밤은 그런 식으로 사람을 피로하게 했다. 피로는 도리어 사람을 느슨하게 했다. 느슨해진 틈으로 노래가 다시 들어갔다.
복순이 다방이 문을 닫던 날, 그는 창가에서 기타를 튕겼다. 잔이 흔들렸다. 커피가 잔 가장자리에서 얇게 흔들렸다. 윤길중이 문을 닫았다. 도장이 찍혔다. 도장 소리가 무대 박자처럼 방 안을 울렸다. 사람들이 모였다. 누군가 노래를 청했다. 그는 오래 준비했던 곡을 부르지 않았다. 대신 아주 단순한 곡을 불렀다. “그릇은 깨지고 / 빛은 남는다 / 남은 빛으로 / 다시 길을 찾는다.” 노래는 길지 않았다. 짧은 노래에 사람들이 울었다. 울음은 길었다. 길수록 가벼웠다. 가벼워진 사람들은 문을 나갔다. 문턱이 덜 아팠다.
재개발이 시작됐다. 포클레인이 벽을 밀었다. 벽 안에서 오래된 글씨가 나왔다. ‘취급 주의’. ‘연탄’. ‘탁구장’. 웃음이 났다. 웃음 사이로 먼지가 들어왔다. 먼지 속에서 그는 테이프 레코더를 꺼냈다. 카세트 구멍에 연필을 끼워 돌렸다. 테이프가 팽팽해졌다. ‘라이브 in 피맛골’이라고 썼다. 녹음 버튼을 눌렀다. 마지막 밤의 소음을 담았다. 잔 흔들리는 소리, 의자 끄는 소리, 형사 기침, 사장 욕, 아이 웃음, 포클레인의 첫 시동. 그 소리들 사이로 기타가 들어갔다. 목소리가 따라갔다. “골목이 내 무대였다 / 무대가 내 밥이었다 / 밥이 내 아버지였다 / 아버지가 내 노래였다.”
그는 테이프를 끝까지 채웠다. 소리가 끊겼다. 버튼이 튕겼다. 튕기는 소리 하나가 끝을 지었다. 끝은 끝이 아니었다. 다른 시작이었다. 그는 테이프에 날짜를 썼다. 테이프를 복순이에게 건넸다. “이건 다방의 노래요.” 복순이는 웃었다. “이건 다방의 기록이네.” 다방은 사라졌지만, 기록은 남았다. 남는 것이 더 늦게 사라졌다.
그는 한동안 노래를 쉬었다. 컨테이너 옆에서 줄을 갈았다. 낮에는 정상일과 하수구를 들여다봤다. 더러운 물이 올라왔다. 악취가 눈썹에 붙었다. 그는 버켓을 붙잡고 물을 퍼냈다. 물이 빠지자 구멍이 있었다. 구멍 속에 어제의 담배꽁초가 있었고, 그 아래에 오래된 동전이 있었다. 그는 동전을 씻었다. ‘백 원’. 백원은 빛났다. 빛나는 동전을 얼굴에 대보았다. 얼굴이 동그랬다. 그는 웃었다. 웃음이 물에 비쳤다. 물이 흔들렸다. 흔들린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낯설지 않다는 건 오래 봤다는 뜻이었다.
가을이 되자 다시 노래가 그를 불렀다. 골목의 임시무대. 맥주 상자를 쌓아 올린 데크. 전깃줄이 바람에 흔들렸다. 아이들이 모였다. 어른들도 섰다. 윤길중이 팔짱을 끼고 뒤에 섰다. 김철희가 헬멧을 벗고 옆에 섰다. 정면에 복순이가 앉았다. 얼굴에 주름이 늘었다. 눈빛은 전과 같았다.
주승은 기타를 올렸다. 첫음을 길게 눌렀다. 소리가 골목에 번졌다. 번진 소리가 새로 생긴 벽 사이로 스며들었다. 새벽 공사가 남긴 먼지가 소리 위에 앉았다. 그는 그 먼지를 털지 않았다. 먼지도 노래였다. 노래는 깨끗해야만 하지 않았다. 더러움에도 음이 있었다. 음이 있으면 노래가 된다.
그는 실제보다 더 낮게 부르기 시작했다. 한 구절마다 골목의 얼굴이 나왔다. 심숙자 좌판의 담배가 나왔다. 윤길중의 도장 소리가 나왔다. 복순이의 잔 닦는 손이 나왔다. 정상일의 버켓이 나왔다. 김철희의 줄자가 나왔다. 낙선자의 기침 소리가 섞였다. 소리들이 다 합쳐져 합창이 되었다. 합창은 사람 없이도 된다. 소리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오늘은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이 소리를 만들었다. 사람과 소리가 섞였다. 섞인 것이 노래였다.
한 검은 차가 멈췄다.
유리창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정장을 입은 사람이 내렸다. 명찰을 달았다. 구청 문화과. “허가 없이는.” 허가 없는 노래는 음란도 아니고 사기도 아니었다. 그러나 허가가 필요했다. 허가는 늘 어디에나 있었다. 그는 미소를 지었다. 윤길중이 다가가 어깨를 눌렀다. “잠시만.” 도장이 들려 있었다. 도장에는 잉크가 남아 있었다. 잉크가 종이에 닿았다. 닿는 소리가 났다. 문화과 직원의 어깨가 내려갔다. 노래가 이어졌다. 이어진 노래는 중단보다 강했다. 중단이 있으면 이어짐이 더 빛났다. 그 빛이 골목을 덮었다.
절정은 조용했다. 사람들은 가만히 서 있었다. 손뼉 소리가 사라졌다. 소주병이 멈췄다. 개가 짖지 않았다. 오토바이가 속도를 늦췄다. 전깃줄의 바람이 잦았다. 골목의 공기가 낮아졌다. 그 낮음이 무대보다 낮았다. 낮은 자리에서 소리가 더 먼 데로 갔다.
그는 눈을 감지 않았다. 눈을 뜨고 골목을 보았다. 낡은 간판과 새 간판, 철거된 자리에 선 컨테이너, 임시 가로등, 임시 인생. 모든 임시가 한밤에 정식이 되었다. 정식은 잠시였다. 잠시라서 소중했다. 소중해서 아팠다. 아픔이 오래 남았다.
마지막 곡의 마지막 소절. “내 목에는 별이 없고 / 내 발에는 먼지가 있다 / 먼지가 먹이고 / 먼지가 이불이다 / 그러나 먼지는 노래가 된다.”
끝났다. 끝났는데 소리가 남았다. 그 남음이 여운이었다. 여운은 밥이 아니고, 돈도 아니고, 허가도 아니었다. 여운은 사람의 체온이었다. 체온은 새벽이면 식었다. 식어도 다시 올랐다. 오르기 위해선 한 번은 내려가야 했다. 그는 기타를 내렸다. 내린 기타가 무거웠다. 무거운 악기가 사람의 등에 등을 세웠다.
사람들이 흩어졌다. 쓰레기를 주웠다. 아이가 종이학을 들고 와서 그의 케이스 위에 올려놓았다. 종이는 신문이었고, 잉크는 손에 묻었다. 아이가 말했다. “아저씨, 새가 있어야 길을 안 잃어요.”
그는 웃었다. 손으로 학의 날개를 펴주었다. 날개가 떨렸다. 떨림이 음악 같았다. “그래, 길은 위에도 있고, 바닥에도 있단다.”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뛰어갔다. 종이학이 케이스 위에 남았다. 남은 것이 기록이었다. 기록이 골목을 붙들었다.
밤이 깊었다.
컨테이너 안에서 보온병이 식었다. 기타 줄이 풀렸다. 풀린 줄을 감았다. 감긴 줄이 다시 원이 되었다. 원은 다시 시작이었다. 그는 카세트테이프를 꺼내 다시 들었다. 테이프가 씽, 하고 돌아갔다. 싸구려 스피커에서 잡음이 났다. 잡음 사이로 그의 목소리가 걸어 나왔다. 걸음이 느렸고, 느림이 따뜻했다. 따뜻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래가지 않기에 더 귀했다.
그는 창밖을 봤다. 벽에 붙은 붉은 글씨가 보였다. ‘안전제일’. 안전은 늘 뒤에 왔다. 그러나 오늘은 앞에 있었다. 기타가 안전했다. 목이 안전했다. 골목이 안전했다. 아주 잠깐. 그 잠깐의 안전이 사람을 살아 있게 했다. 살아 있음이 다음 노래였다.
그는 불을 껐다. 어둠이 컨테이너를 채웠다. 어둠 속에서도 기타의 목이 보였다. 목에 손을 얹었다. 나무는 미지근했다. 사람의 체온이 남아 있었다. 체온은 물건에도 남았다. 남아야 했다. 남지 않으면 다음이 없다.
새벽이 왔다.
신문 가방을 멘 아이가 달렸다. 오토바이가 굉음을 냈다. 윤길중이 셔터를 올렸다. 복순이가 조그만 주전자에 물을 올렸다. 김철희가 출근했다. 정상일이 덮개를 벗겼다. 심숙자가 좌판을 폈다. 사람들은 각자의 소리를 냈다. 소리들이 섞였다. 섞인 소리가 음악이었다. 음악은 악보 없이도 만들어졌다. 악보 없는 음악이 도시를 데웠다.
변주승은 기타를 들었다. 무대는 없다. 그래도 노래는 있다. 노래가 있으면 길이 있다. 길이 있으면, 한 사람의 하루가 덜 어둡다. 그는 걸었다. 발끝이 먼지를 일으켰다. 먼지가 아침빛에 반짝였다. 반짝임이 짧았다. 짧아서 정확했다. 정확해서 오래 남았다.
그는 안다. 무대의 불빛은 싸구려였으나, 그 빛이 사람을 한 번씩 살렸다. 살린 만큼 서늘하게 남겼다. 서늘함이 여운이었다. 여운이 오래가면, 사람은 자기 사는 방식을 조금씩 바꾼다. 조금씩 바꾼 것이 결국 도시를 바꾼다. 도시는 느리다. 느린 것이 오래간다. 오래가는 동안 노래는 계속된다.
그의 어깨에서 기타 끈이 삐걱거렸다. 삐걱거림도 박자였다. 그는 그 박자에 맞춰 걸음을 고쳤다. 골목이 열렸다. 사람의 등들이 보였다. 등들이 각자의 일로 움직였다. 그 사이로 노래가 흘렀다. 아무도 청하지 않았으나, 다들 조금씩 들었다. 듣는 사람은 모른 척했고, 모른 척한 사람들이 밤에 혼자 있을 때 그 소리를 흥얼거렸다. 흥얼거림이 사람을 붙들었다. 붙들린 사람들이 다음 날을 산다. 다음 날이 모여서 계절이 된다. 계절이 돌면 역사가 된다. 역사에 이름이 없을지라도, 소리는 남는다.
그 남음이 그의 몫이었다. 그는 그 몫을 오늘도 메고 갔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