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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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어령 선생
ㅡ죽음이 남긴 한마디, 지금을 사랑하라
□임종 직전의 이어령 선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석학 이어령 선생이 암투병 중 마지막으로 남긴 말, “여러분, 지금을 사랑하세요”라는 울부짖음은 단순한 교훈이 아니다. 그것은 평생을 지성의 빛으로 살았던 한 철학자의 마지막 결론이며, 죽음 직전까지 삶을 붙들고자 한 절규다. 그의 말속에는 인간의 지성과 지식이 결국 허망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는 유한한 삶의 본질이 담겨 있다. 그동안 수많은 강단에서, 책 속에서, 강연장에서 그는 ‘지금 여기’를 강조했지만, 임종을 앞두고 남긴 이 짧은 외침은 더 이상 수사적 문장이 아니라 생의 가장 깊은 자리에서 나온 고백이었다.
그는 살아가는 동안 지성이 전부라 믿었고, 학문이 곧 인간의 빛이라 여겼다. 그러나 죽음을 앞에 둔 순간, 그토록 숭상했던 지성은 한순간의 바람처럼 스러지고 말았다. 그는 남은 기운을 다해 “사랑”이라는 단어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학문적 성취나 사회적 명망이 아닌, 순간순간 살아 있음의 기쁨을 사랑하라는 당부였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영원의 빛으로 남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카르페 디엠 carpe diem.’ 수많은 철학자, 시인, 예술가들이 반복해 온 말이다. 그 말은 대개 인생을 좀 더 충실히 살아보라는 가벼운 권유나 낭만적 표어로 소비되었다. 이어령 선생의 말은 달랐다. 그것은 수천 권의 책과 수만 마디의 언어를 넘어선 마지막 결론이었다. 죽음을 앞둔 자만이 건넬 수 있는 단호한 진리였다. 삶을 지탱하던 온갖 개념과 논리는 이미 무너졌고, 남은 것은 ‘사랑하라’는 단 하나의 명령뿐이었다.
그의 몸은 야위었으나 눈빛은 결코 흐려지지 않았다. 외려 지성이 벗겨지고 육체가 소멸하는 순간, 그 빛은 더 맑고 더 절실하게 타올랐다. 그것은 ‘지금’을 붙들려는 영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맞이할 시간 앞에서, 그는 자신이 살아온 모든 것을 정리하여 한마디로 압축해 주었다. 지금을 사랑하지 못한 삶은 결국 공허할 뿐이라는 사실을.
이 말은 듣는 이의 가슴속에서 깊은 메아리로 남는다. 미래를 향한 집착과 과거에 매인 후회 속에서 흔들리며 사는 우리에게, 지금의 시간은 종종 하찮아 보인다. 그러나 이어령 선생은 우리에게 당부한다. “지금은 다시 오지 않는다. 이 순간이야말로 가장 귀하다.” 그 울림은 단순한 권면이 아니라, 죽음을 직시한 자만이 전할 수 있는 생의 진리였다.
삶은 언제나 지금의 연속이다. 우리는 늘 내일을 기약하며 오늘을 소홀히 여긴다. 그러나 내일은 약속되지 않는다. 과거는 이미 흘러가 버렸고, 오직 지금만이 손에 쥘 수 있다. 이어령 선생의 말은 그런 삶의 본질을 가리킨다. 지식은 쌓여도 결국 허망하게 흩어지고, 지성은 빛나도 죽음 앞에서 무너진다. 남는 것은 순간의 사랑,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마주하는 생의 충만함뿐이다.
그의 마지막 목소리는 우리에게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는다. 거창한 업적이나 화려한 성공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우리가 매일같이 흘려보내는 순간들이 사실은 삶의 전부이며, 그 안에서만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그의 말은 철학적 선언이자 영혼의 고백이다. 그것은 곧 죽음을 넘어서까지 살아남을 메시지다. 우리는 그 울림 앞에서 스스로에게 다시 묻게 된다. “나는 지금을 사랑하고 있는가?” 삶의 마지막에 가서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지금을 온전히 살아낼 때에만, 인생은 허무를 넘어 빛날 수 있다.
이어령 선생의 지성은 이제 언어를 넘어 침묵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말은 언어를 넘어 우리 각자의 가슴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죽음을 앞둔 철학자가 남긴 사랑의 외침은 시대와 세대를 넘어 울려 퍼질 것이다. 우리는 그 말 앞에서 스스로의 삶을 다시 세우게 된다. 결국 삶의 모든 가치는 “지금을 사랑하는 일”에 귀착된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분명하다. 하루하루를 당연하게 흘려보내지 말고, 순간마다 사랑하라는 그의 유언을 붙드는 것이다. 그 길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살아 있는 인간이 된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