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광일 시인의 '9월의 바람'을 청람 김왕식 평하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9월의 바람




시인 주광일




9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산과 바다 위에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도
서늘한 입김을 불어넣고 있었다

반바지 입은 사내들 사라졌으나
길 위엔 뜨거운 열기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 세상
모든 일은 순식간

곧 찬 서리 내리고
찬 바람 불어오는
하이얀 계절이 오리라

가까이 가면 갈수록
정신 번쩍 들고 거룩해지는
좋은 계절이 오리라








주광일 시인의 시 '9월의 바람'을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주광일 시인의 시「9월의 바람」은 짧은 행간 속에 계절의 흐름과 인간 존재의 성찰을 절묘하게 포개어 놓은 작품이다. 바람은 단순한 계절의 현상이 아니라, 삶의 이치를 전하는 상징으로 자리한다. 서늘한 바람이 산과 바다,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까지 스며드는 장면은 자연의 힘이 인간 사회와 일상의 구석구석을 관통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는 계절의 변화가 단순한 기후적 사건을 넘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삶의 섭리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첫 연에서 드러나는 바람의 이미지는 생동감과 더불어 차가운 이정표와 같다. 여름의 무거운 열기 위에 불어오는 서늘한 기운은 일상의 굳은살을 벗겨내듯, 인간 존재를 맑게 깨운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확실히 감지되는 힘이며, 시인은 이를 통해 무형의 존재가 얼마나 큰 울림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반바지 입은 사내들이 사라지고 길 위에만 열기가 남아 있다는 표현은, 떠난 것과 남은 것의 대비를 선명하게 그려낸다.
이는 시간의 흐름 앞에서 인간의 흔적이 어떻게 퇴색하고, 또 어떻게 잔열로 남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계절은 이미 바뀌어가지만, 인간의 감각 속에는 미련과 집착이 여전히 남아 있다.
시인은 이를 짧고 힘 있는 문장으로 붙잡으며, 사라짐과 머묾이 동시에 존재하는 삶의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이 세상 모든 일은 순식간”이라는 단정적 진술은 시 전체를 지탱하는 핵심 축이다. 군더더기 없는 직설적 언어 속에서 삶의 진실이 투명하게 드러난다. 생은 기다려주지 않고, 모든 사건은 예고 없이 지나간다.
이 선언은 허무의 감정에 머물지 않고, 인간이 정신을 바로 세우는 계기가 된다.

찬 서리와 하얀 계절의 도래는 죽음과 고통의 전조일 수 있지만, 시인은 이를 추위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정신을 번쩍 들게 하고 거룩함을 불러오는 힘으로 제시한다. 차가움 속에서 정신이 깨어나고, 고통 속에서 인간은 자신을 다시 다잡는다. 하얀 계절은 단절이 아니라 정화이며,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상징이다.

이 작품의 바탕에는 무상에 대한 깊은 인식과 동시에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려는 태도가 놓여 있다. 시인은 변화의 불가피함을 담담히 받아들이면서, 그 변화를 통해 더욱 단단한 정신적 세계로 나아간다. 화려한 수사나 장식 없이 절제된 언어로 구축된 시적 세계는 더욱 큰 울림을 낳는다.

요컨대,「9월의 바람」은 단순히 계절의 변화를 노래하는 작품을 넘어, 삶의 덧없음과 인간 정신의 각성을 동시에 담아낸 시라 할 수 있다.
독자는 이 시를 통해 바람처럼 스쳐가는 시간 속에서 무엇을 붙잡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묵묵히 되새기게 된다. 계절의 바람은 몸을 스치지만, 그 바람이 전하는 메시지는 마음 깊은 곳에 오래 머문다.


ㅡ 청람 김왕식





주광일 시인은 인천 출신의 법조인이자 시인으로,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검사, 고등검찰청 검사장,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한 뒤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문학 활동에서도 활발히 활동 중이며, 시집으로는 『저녁노을 속의 종소리』, 『유형지로부터의 엽서』, 『당신과 세월』 등이 있다.

그의 시는 짧고 간결한 형식 속에 삶, 죽음, 존재, 계절의 순환 등을 깊이 있게 성찰하며, 자연스럽고도 철학적인 이미지로 독자의 마음을 울리는 힘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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