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청람 연작소설 《피란길》
제16장
다리 위의 그림자
달삼 가족은 새벽녘에 다시 길을 떠났다.
초가집에서 얻은 죽 덕에 아이들이 잠시 기운을 차렸지만, 발걸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길은 남쪽으로 이어졌고, 그 끝에 강이 있었다. 강은 낙동강이었다. 물살은 세차게 흘렀고, 강 위에는 철교와 나무다리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이미 다리 위에는 수많은 피란민들이 몰려 있었다.
“저 다리만 건너면 산다 아이라카더라.”
사람들이 서로 속삭였다. 그러나 그 말은 위로인지, 아니면 스스로를 다독이는 최면인지 알 수 없었다.
강변에는 군인들이 서 있었다. 총구가 하늘을 향해 있었다. 그들은 사람들을 향해 고함쳤다.
“밀치지 마라! 질서 안 지키면 다리 끊어삔다!”
질서는 이미 무너져 있었다. 피란민들은 죽음의 그림자처럼 다리 위로 몰려들었다.
달삼은 아내와 아이들을 감싸며 줄에 섰다. 아이들은 겁에 질려 울음을 삼켰다. 강물은 푸르스름하게 빛나며 흘렀다. 물살은 차갑고 매서웠다. 바람은 강을 건너며 사람들의 옷자락을 후려쳤다.
다리 위는 이미 아비규환이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밀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보따리들이 떨어져 강물에 빠졌다. 보따리 속 옷가지와 곡식은 물 위에 떠다녔다. 아이가 강물에 빠지자 여인이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손을 내밀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앞으로만 몸을 밀었다.
“아이고, 애기야!”
여인의 울음은 강바람에 실려 퍼졌다. 곧 군홧발 소리가 덮쳤다. 군인 하나가 여인의 어깨를 잡아 다리 밖으로 밀쳐냈다. 그녀는 강변에 주저앉아 흐느꼈다. 아이는 이미 물살에 휩쓸려 사라지고 있었다.
그 순간, 하늘에서 굉음이 울렸다. 적 비행기가 나타난 것이었다. 사람들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새까만 그림자가 다리 위를 스쳤다. 이어 총탄이 다리를 갈겼다. 쇳조각이 튀고, 목재가 부서졌다. 비명이 터졌다. 사람들은 몸을 웅크리며 다리를 붙들었다. 아이들이 울부짖었다.
“살아야 된다, 죽어도 건너야 된다!”
어느 사내의 고함이 울렸다. 그 고함은 곧 포성에 묻혔다. 다리 한쪽에서 불길이 솟구쳤다. 연기와 화염이 강바람을 타고 번졌다. 사람들은 더욱 미친 듯 앞으로 달려갔다.
달삼은 아이들을 품에 안고 다리를 건넜다. 아내의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돌조각이 날아와 이마를 스쳤기 때문이다.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다리 아래 강물은 끝없이 흘렀다. 떨어진 사람들의 몸이 물 위에 떠올랐다. 누구도 돌아보지 않았다. 살아남으려면 앞으로 가야 했다.
달삼은 온몸을 던져 다리를 건넜다. 다리 끝에 도착했을 때, 그는 무릎을 꿇었다. 아이들은 그의 품에서 떨고 있었다. 아내는 손으로 얼굴의 피를 훔치며 숨을 몰아쉬었다.
다리 건너편에는 다시 피란민들이 몰려 있었다. 모두의 눈빛은 멍했다. 다리 위의 울음과 비명이 여전히 귓가에 메아리쳤다.
달삼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우리는 살아남는다. 오늘 이 다리 위의 그림자와 울음을 잊지 않는다.”
강물은 여전히 흘렀다.
사람들의 울음과 피가 섞여 강물은 더욱 붉게 빛나는 듯 보였다. 바람은 차갑게 불었고, 새벽의 햇살은 무심하게 강 위에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