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변희자 시인 시집 《가을 귀뚜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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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빛 열
변희자 작가
불 같은 여름이 물러나자 공기가 느슨, 편안해졌다.
밖의 아스팔트 지열로 창문 열어놓기 힘든 서울의 밤
선풍기 자연 바람으로 틀어놓고 잠든 탓일까
엊저녁부터 목이 부은 듯 불편했다.
타원형 모양의 약을 삼키고 잠에 들었다가 일어난 아침.
새벽 창을 열자 서늘한 바람이 이마와 뺨을 스쳤다.
외출 준비를 가볍게 하고 길을 나섰다.
평소 산뜻하던 발걸음이 오늘은 무겁고,
굳은 몸은 기지개를 켜며 삐걱대는 소리로 계절의 문을 두드린다.
차도 옆으로 길게 만들어진 가로공원은
꽃들이 밤새 머금은 이슬을 내놓고 있었다.
초록 잎마다 맑은 빛이 번지고 풀잎은 바람에 눕다 일어서며
아침 인사를 건넨다.
그 빛 앞에 공연히 풀이 죽어 미열이 있는 이마를 짚어본다.
나는 지금 풀만도 못하는구나, 중얼거린다.
벤치 곁 화단에는 보랏빛 작은 얼굴의 러시안 세이지.
향을 들이켜 보지만 꽃은 빛나는데 향은 닿지 않는다.
내 몸의 이상을 확인하고 나는 다시 길을 걷는다.
햇살은 초록 사이에 금빛 실을 엮고
은행잎은 일부 누렇게 물들어 바람에 살짝 흔들린다.
전깃줄 위 까치 한 마리, 깍깍 울며 아침을 깨우고
아이의 자전거 바퀴는 달그락, 굴곡진 길을 넘는다.
주인 따라 산책 나온 강아지는 배설할 곳을 찾느라
종종 엉덩이를 흔든다.
상점 셔터 오르는 소리가 풍경의 선잠을 깨우며
상점 안으로 눈을 비빈다.
다리 아래 물은 바삐 흘러 돌에 부딪혀
은빛 파편을 흩뿌리고 작은 물고기들이 반짝이며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지느러미가 분주하다.
그 흐름을 내려다보며 나는
시간 또한 소리 없이 흘러간다는 것을 몸으로 어지럽게 느낀다.
걸을수록 다리는 점점 끌리고
햇살은 뜨겁게 가슴을 누른다.
불볕더위에도 씩씩하던 여름의 걸음이
가을 문턱에서 쉼표를 찍게 할 수는 없다.
몸이 처져 집으로 돌아와 늦은 아침을
푸짐하게 차려 억지로 먹고,
빨간 숫자들이 오르내리는 휴대폰 화면을 훑는다.
쓸모없는 말들 사이
친구의 글 한 줄이 반짝 빛나서
나는 작은 기쁨으로 답글을 남긴다.
얼굴엔 미열이 오르고 몸은 잔잔히 떨린다.
가을은 이렇게 오는가.
산책길의 초록과 이슬, 보랏빛 꽃과 은행잎,
다리 아래 흐르는 물빛과 버들치의 거슬러 오름이
가을을 부르는가.
단풍빛 열과 함께
얇은 차렵이불을 끌어다 덮는 순간,
고개 숙인 강아지풀이 내 옆으로 누우며
가을의 문을 연다.
■ 변희자 작가의 '단풍빛 열'을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변희자 작가의 「단풍빛 열」은 일상에서 출발해 계절과 존재의 본질을 사유하는 서정적 수필이다. 표면적으로는 여름의 뜨거운 기운이 물러나고, 몸에 스며든 미열을 기록한 글이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과 자연, 시간과 존재를 관통하는 철학적 사유가 촘촘히 깔려 있다. 단풍빛은 계절의 물들어감이자 인간의 체온과 맞닿은 은유이며, 열은 단순한 병증이 아니라 삶의 뜨거움과 나약함이 교차하는 징표로 작동한다.
이 작품은 몸과 계절, 삶과 문학이 한데 얽히는 지점에서 탄생한 성찰의 기록이다.
글은 불같던 여름이 물러나고 공기가 느슨해졌다는 대목에서 출발한다. 더위의 잔열이 여전히 아스팔트에 남아 있는 서울의 밤, 선풍기 바람에 잠들었다가 목이 불편해 약을 삼키는 장면은 극히 일상적이다.
그러나 바로 그 사소한 불편이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게 하는 매개가 된다. 새벽 창을 열었을 때 이마와 뺨을 스친 바람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가을의 문을 두드리는 첫 신호로 전환된다. 이는 일상의 경험이 곧 계절과 맞닿는 문학적 지점임을 보여준다.
산책길에서 만난 자연의 풍경들은 세밀한 묘사로 살아난다. 꽃잎에 맺혔다 떨어지는 이슬, 초록 잎마다 번지는 맑은 빛, 바람에 눕다 일어서는 풀잎의 몸짓은 마치 생명들이 합창하듯 계절의 새벽을 연다. 그 활력을 바라보는 화자는 외려 “나는 지금 풀만도 못하는구나”라며 스스로를 낮춘다. 풀조차 매 순간 바람을 맞아 일어서는데, 인간은 작은 미열에도 흔들린다는 깨달음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태도는 자책이 아니라 겸허함이다. 인간은 자연보다 위에 있지 않으며, 자연의 질서 속에서 자신을 성찰하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러시안 세이지의 보랏빛 꽃은 화려하게 피어 있지만 향은 닿지 않는다. 이는 자연의 충만함 속에서도 인간이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결핍을 상징한다. 꽃의 아름다움은 눈에 들어오지만, 몸의 이상으로 인해 향이 감각되지 않는다.
이 장면은 충만과 부재라는 이중적 체험을 드러내며, 삶 또한 늘 모든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채 부분적 감각 속에서 흘러간다는 사실을 은유한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은 바삐 흘러 돌에 부딪히며 은빛 파편을 흩뿌린다. 작은 물고기들이 거슬러 오르는 장면은 단순한 생태 묘사가 아니라, 인간 삶의 축소판이다.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지느러미의 분주함 속에서 화자는 “시간 또한 소리 없이 흘러간다”는 자각을 얻는다.
시간은 강물처럼 끊임없이 흐르며, 인간은 그 속에서 부딪히고 흔들리며 살아간다. 이 부분은 계절과 생명의 움직임을 통해 무상(無常)을 깨닫게 하는 글의 핵심적 대목이다.
집으로 돌아온 화자는 늦은 아침을 억지로 먹고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본다. 쓸모없는 말들이 오가는 공간 속에서 친구의 글 한 줄이 빛나며 작은 기쁨을 준다. 이는 삶의 무상함 속에서도 순간의 반짝임을 발견하고자 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거대한 성취나 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일상의 미세한 순간에서 삶의 위안을 찾는 것이 작가가 지향하는 미학이다.
글은 “단풍빛 열”이라는 이미지로 수렴된다. 몸의 미열은 단풍의 붉은빛과 겹쳐지며, 계절의 색채가 신체의 증상과 맞물린다. 얇은 차렵이불을 끌어 덮는 순간, 강아지풀이 옆으로 눕는 장면은 계절의 문이 열리는 상징적 순간이다. 이는 계절과 인간, 자연과 삶이 하나의 흐름 속에 있음을 보여주는 결말이다.
변희자 작가의 글에는 겸허와 수용의 철학이 깔려 있다. 미열로 인해 몸은 나약해지지만, 그 나약함조차 계절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자연과 조응한다. 이는 고통을 부정하거나 회피하는 태도가 아니라, 그 속에서도 의미를 찾으려는 자세다.
작품 미의식은 화려한 수사보다 절제된 관찰과 비유에 있으며, 사소한 일상에서 철학적 사유를 이끌어내는 힘에 있다.
「단풍빛 열」은 개인적 몸의 감각을 계절의 변환과 맞물려 풀어낸 서정적 수필이다. 자연의 세밀한 묘사와 존재의 겸허함, 시간의 무상함과 소소한 기쁨이 교차하며, 결국 단풍빛 열이라는 은유로 집약된다.
이 글은 독자에게 병든 하루조차 삶의 일부이며, 계절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의 운명임을 상기시킨다. 나약한 몸, 흘러가는 시간, 그러나 여전히 아름다운 계절 ― 그것이 이 수필이 전하는 문학적 메시지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