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벌초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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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 빗물 속의 정성
벌초의 날, 산자락에 비가 내린다.
흙길은 젖고, 풀잎에는 물방울이 맺혀 반짝인다.
궂은 날씨라 해서 후손의 발걸음이 멈추지 않는다. 조상을 섬기는 마음은 날씨에 매이지 않는다. 비는 단지 그 마음을 더 맑고 깊게 적셔 줄 뿐이다. 후손들은 낫을 들고 묘역으로 향한다. 풀을 베어내는 손길 하나하나에 공경이 담기고, 묘소를 쓰다듬는 눈빛마다 감사가 스며 있다.
조상 앞에 선다는 것은 단순한 형식이 아니다. 그 자리는 삶의 뿌리를 확인하는 자리이며, 내 존재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돌아보는 자리다. 비록 손발은 젖고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지만, 그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다. 땀방울은 곧 정성의 이슬이 되고, 빗물은 그 정성을 더욱 투명하게 드러낸다.
묘소 앞에 서면 조상의 숨결이 들리는 듯하다. 그분들이 걸었던 발자취, 겪었던 고난, 나눠 주었던 사랑이 풀잎 사이로 되살아난다. 후손은 그 자리에 서서 깊이 고개를 숙인다. “당신들이 계셨기에 내가 있습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사가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온다. 그 순간, 비 내리는 벌초의 현장은 단순한 풍습을 넘어 하나의 성스러운 의식이 된다.
벌초는 풀을 베는 행위이면서 동시에 마음을 다듬는 시간이다. 잡초가 무성하듯 우리 삶에도 무심히 자라난 욕심과 게으름이 있다. 낫으로 풀을 베어내듯, 그 마음의 군더더기를 잘라내고 정갈함을 회복하는 순간이 벌초다. 그래서 묘소 앞의 흙내와 풀향은 단순한 자연의 냄새가 아니라, 내 마음을 정결케 하는 향기다.
비가 그치지 않아도 상관없다. 비 내리는 풍경 속에서 후손의 정성은 더욱 빛난다. 이마의 땀방울은 빗물과 섞여 흘러내리지만, 그것은 곧 하나의 기도로 승화된다. 흙 묻은 손, 젖은 옷자락, 무거운 발걸음 속에서도 후손은 미소 짓는다. 조상을 섬긴다는 기쁨, 뿌리를 지킨다는 의무, 그 모든 것이 삶의 무게를 감당할 힘으로 다시 다가오기 때문이다.
비에 젖은 풀잎이 다시 일어나듯, 후손의 정성 또한 시간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그 정성은 단지 조상에게 바쳐지는 것이 아니라, 곁의 가족과 후대에게 전해진다. 오늘의 벌초는 내일의 교훈이 되고, 후손에게 길이 남을 가르침이 된다.
묘소에 절을 올리고 나서 산을 내려올 때, 하늘은 여전히 흐리다. 후손의 마음은 오히려 맑다. 조상을 향한 공경, 삶을 향한 다짐, 그리고 후대에게 물려줄 신의(信義)의 정신이 마음속에 단단히 심겨 있기 때문이다.
벌초는 그저 풍습이 아니다. 그것은 뿌리를 잊지 않고, 근본을 지키며, 삶을 더욱 깊게 가꾸려는 사람의 고백이다. 오늘 내린 비와 함께 흘린 땀방울이 그 증거다. 그 정성은 세월이 흘러도 빛을 잃지 않고, 한 집안의 혼을 지켜내는 등불이 될 것이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