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시조시인의 시 '가을 한 잔' ㅡ청람 평하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김민정 시조시인의 시 '가을 한 잔'







가을 한 잔



시조시인 김민정




하늘은 마냥 높고
물빛마저 여문 계절

가을햇살 등에 업고
유유히 날고 있는

잘 익은
가을 한 잔을
그대에게 따릅니다

내미는 손길마다
디디는 걸음마다

꽃등처럼 환해지는
저 가을 한가운데

더러는
열매로 남는
기도가 있습니다








김민정 시조시인의 작품 〈가을 한 잔〉을 읽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김민정 시조시인의 작품 〈가을 한 잔〉은 시조의 본령이 지닌 고졸한 미학과 함께 현대적 감각을 결합하여, 계절의 빛과 삶의 철학을 투명하게 담아낸 정수精髓라 할 수 있다.
작품은 단순히 가을의 풍경을 묘사하는 차원을 넘어, 자연과 인간의 내면을 교차시켜 숭고한 존재의 의미를 드러낸다.
이는 시인이 지닌 전인격적 태도와 장인정신의 소산이며, 더 나아가 시조라는 전통 형식의 미래를 열어가는 귀한 성취라 하겠다.

첫 구절 “하늘은 마냥 높고 / 물빛마저 여문 계절”은 가을이라는 계절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면서, 동시에 삶이 깊이 여문 순간을 은유한다.
하늘의 높음과 물빛의 여묾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성숙과 순정한 마음의 빛깔로 연결된다.
이는 김민정 시인이 추구해 온 삶의 가치, 곧 자연과 더불어 단순하면서도 충만한 삶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가을햇살 등에 업고 / 유유히 날고 있는”에서는 존재의 가벼움과 자유로움이 표현된다. 햇살을 등에 업는다는 구절은 단순히 따뜻함의 수용이 아니라, 생을 감사히 받아들이는 겸허한 태도이다.
시인은 자연의 은총을 짊어진 채 유유히 날아가듯 살아가는 길을 말하고 있으며, 이는 군더더기 없는 삶의 철학, 곧 욕망을 덜어내고 순리를 좇는 도가적 道家的심성을 반영한다.

“잘 익은 / 가을 한 잔을 / 그대에게 따릅니다”는 시의 중심부를 이루는 명구로, 시인의 미학적 결정체라 할 만하다. 여기서 ‘가을 한 잔’은 단순한 계절의 술잔이 아니라, 삶이 빚어낸 성숙과 사랑의 결실이다.
시인은 그것을 자신에게 머금지 않고 타인에게 건넨다. 이는 자기 완결적 존재가 아닌, 나눔과 베풂을 통해 완성되는 인격의 형상이다. 곧 김민정 시인의 가치철학은 삶을 자기 안에 가두지 않고, 타인을 향해 열어젖히는 데 있다.

이후 이어지는 “내미는 손길마다 / 디디는 걸음마다 / 꽃등처럼 환해지는 / 저 가을 한가운데”는 시인의 존재론적 자리에 대한 고백이다. 손길과 걸음마다 환해진다는 것은 곧 삶의 모든 행위가 기도의 몸짓으로 승화됨을 의미한다.
그는 자신의 행위 하나하나를 가을빛 속에 녹여내며, 존재 자체를 계절과 합일시킨다. 시조의 단아한 정형 속에 담긴 이 구절들은, 단순한 언어의 배열을 넘어 인간 존재의 진실한 빛을 드러내는 영적 울림을 갖는다.

마지막 “더러는 / 열매로 남는 / 기도가 있습니다”는 이 작품의 철학적 결론이자 영원한 메시지이다. 기도가 열매로 남는다는 것은, 인간의 간절한 바람과 진실한 소망이 헛되지 않고, 결국 세상 어딘가에서 결실을 맺는다는 확신이다.
이는 김민정 시인이 평생 견지해 온 시적 태도, 곧 언어를 통해 삶을 위로하고, 시를 통해 존재의 궁극적 가치를 증언하려는 자세의 집약이다.

시 〈가을 한 잔〉은 계절의 서정을 빌려 삶의 진리를 전하는, 시조의 정수를 보여주는 걸작이다. 김민정 시조시인은 언어를 단순한 표현의 도구로 삼지 않고, 인생 그 자체를 응축하는 도구로 다루었다. 그에게 시어의 조탁彫琢은 곧 존재의 수련이었고, 시조 형식은 단절된 옛것이 아니라 오늘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이 작품은 후학들에게 단순한 본보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언어를 빚는 섬세한 손길과, 존재 전체를 던져 작품을 완성하는 전인격적 태도는, 시가 곧 삶임을 보여주는 위대한 교본이다.
김민정 시조시인의 미학은 화려하지 않되 단정하고, 가볍지 않되 투명하며, 무겁지 않되 깊다. 그것은 마치 가을의 공기처럼 맑고, 가을의 물빛처럼 여문, 삶의 철학이자 시의 정신이다.

따라서 〈가을 한 잔〉은 단지 한 편의 계절시가 아니라, 한 시조시인이 남긴 생애적 고백이며, 인간이 추구해야 할 삶의 가치에 대한 은유적 성찬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의 손에서 빚어낸 이 '가을 한 잔'은 독자들의 영혼을 환히 밝히며, 기도로 남아 열매 맺는 시조의 영원성을 증언한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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