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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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사색, 여행의 길 위에서
책을 읽는 일은 삶의 출발점이다.
한 권의 책을 펼칠 때마다 우리는 수많은 언어와 사상을 마주한다.
그 만남이 곧바로 삶이 되지는 않는다. 책은 어디까지나 재료일 뿐이다. 그 재료가 온전히 나의 것이 되려면, 조용히 곱씹고 오래 음미하는 사색의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재료라 해도 불과 손길이 닿지 않으면 밥상이 될 수 없듯, 지식 또한 사색이라는 내면의 불길 위에서만 제 모습을 갖춘다.
책을 읽은 뒤 한동안 침묵할 줄 아는 사람, 바로 그가 참된 독자다. 글을 덮은 뒤에도 오래 마음속에서 그 문장을 반추하는 이에게, 지식은 발효되고 생각은 뿌리를 내린다.
언젠가 삶의 언어로 꽃을 피운다. 독서와 사색은 그렇게 맞물려, 한 사람의 내면을 천천히 빚어낸다.
여행도 그렇다.
플로베르의 말처럼 여행은 인간을 겸허하게 만든다. 익숙한 자리에서 벗어나 낯선 곳에 서면, 우리는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알게 된다. 고향에서 차지하던 공간은 세상 속에선 그저 한 점에 불과하다. 광활한 사막과 눈 덮인 산맥, 끝없이 이어지는 바다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미약함을 절실히 느낀다.
그 순간 교만은 꺾이고, 겸허가 스며든다.
풍경을 본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여행의 의미 역시 사색에서 완성된다. 찬란한 노을을 본 자리에서, 그 빛이 나의 삶에 무엇을 묻고 있는지 되짚어야 한다. 돌아온 일상 속에서도 그 질문을 계속 품을 때, 여행은 단순한 이동을 넘어 인생의 길잡이가 된다.
독서와 여행은 닮아 있다.
책에서 얻은 지식이 사색을 통해 지혜로 바뀌듯, 여행에서 얻은 경험도 성찰을 통해 겸허함으로 바뀐다. 결국 이 둘은 우리를 낯설게 바라보게 하고, 작은 자아의 틀을 넘어 더 큰 세계를 향해 열리게 한다.
삶은 짧고 세상은 넓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매 순간의 독서와 여행 속에서 사색을 놓치지 않는 일이다. 사색 없는 독서는 허기만 남기고, 사색 없는 여행은 풍경만 스쳐 간다.
사색을 품은 독서와 여행은 우리 마음을 길러내고, 우리 자신을 새롭게 다듬는다.
사람을 성장시키는 힘은 언제나 사색 속에서 태어난다. 책장을 덮고 난 뒤의 고요한 시간, 여행에서 돌아온 뒤의 긴 여운, 그 순간이야말로 삶이 깊어지는 자리다. 그곳에서 우리는 조금 더 지혜로워지고, 조금 더 겸허해진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