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유긍모 시인
■
아픔
시인 유긍모
뒤돌아 보니
옹이 진 상처
지나고 보니
견디고 버티며
추억일세
회환의 눈물
죽을 만큼 고통
성숙이란
꽃이
필 때까지
■
아픔을 성숙으로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유긍모 시인의 '아픔'은 짧은 언어 속에 인생의 고통과 성숙의 과정을 압축한 시다. 언뜻 단순해 보이는 문장들은 사실 한평생의 체험과 철학을 꿰뚫고 있다. 시인은 삶의 고통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한다. 그 고통을 지나온 뒤에야 비로소 성숙이라는 꽃이 피어난다고 말한다.
이는 곧 그의 삶의 가치철학이자 작품의 미의식이다.
첫 구절 “뒤돌아 보니 / 옹이 진 상처”는 삶을 돌아볼 때 드러나는 고통의 흔적을 선명히 보여준다. 옹이는 나무가 자라며 상처를 봉합한 자리다. 매끄럽지 않지만 단단히 굳어져 나무의 일부가 된다. 시인은 자신의 상처를 그렇게 바라본다. 그저 고통의 흔적이 아니라, 삶을 지탱해 온 굳건한 자국이다. 여기에는 고통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시인의 철학이 담겨 있다.
“지나고 보니 / 견디고 버티며”라는 구절은 인내와 끈기의 의미를 드러낸다. 고통은 견디는 순간에는 쓰라리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는 그것이 삶을 지탱한 힘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시인은 고통을 통해 삶의 의지를 확인한다. 버티고 견디는 과정 자체가 인간을 단단하게 만든다는 통찰이 담겨 있다.
이어지는 “추억일세 / 회환의 눈물”은 아픔이 시간이 흐르며 기억으로 변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당시에는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던 순간이, 지나고 나면 눈물 섞인 회환으로 남는다.
고통은 영원히 현재에 머물지 않고, 결국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전환된다. 시인의 미의식은 바로 이 전환에 있다. 가장 쓰라린 순간조차 시간이 지나면 인간을 빚어내는 재료가 된다는 믿음이다.
“죽을 만큼 고통”이라는 직설적 표현은 삶의 무게를 날 것 그대로 드러낸다. 시인은 그 고통을 절망으로만 묘사하지 않는다. 마지막 구절 “성숙이란 꽃이 필 때까지”라는 선언적 언어는, 모든 고통의 궁극적 의미를 성숙으로 귀결한다. 꽃은 단순한 생물학적 개화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성장과 영혼의 승화를 상징한다. 죽음을 불러올 만큼 깊은 고통조차도 결국은 성숙의 꽃을 피우기 위한 거름이라는 인식, 그것이 시인의 가치철학이다.
유긍모 시의 미의식은 짧고 절제된 언어 속에서 삶의 본질을 드러내는 데 있다. 화려한 수사나 장식은 없다. 대신 체험에서 이끈 진실한 언어만이 있다. 고통을 피하지 않고, 그것을 정직하게 응시하며, 그 속에서 성숙을 길어 올리는 태도야말로 그의 시가 지닌 숭고함이다.
요컨대, '아픔'은 단순히 고통을 노래하는 시가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이 고통을 살아내며 얻은 철학적 결론이자, 시적 승화의 증언이다. 시인은 우리에게 말한다. 삶의 상처와 고통은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성숙을 향한 노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이 시는 그 고백을 간명하면서도 깊이 있게 담아낸다. 아픔은 곧 성숙의 씨앗이며, 그 꽃은 끝내 피어난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