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광일 시인의 시 '가을 소나기를 청람 김왕식 평하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가을 소나기



시인 주광일



매미 울음 그친 저녁
이어서 풀벌레
울음 우네

누가 지난여름
이 땅을 이토록
울음판으로 만들었는가

살며시 다가온
가을이여

그대는 독한 맘먹고
천둥 번개 더불어
매몰찬 소나기로 쏟아지거라

지난여름 쌓였던
눈 뜨고 못 볼
이 땅의 못 볼 것들을
성난 빗물로
모두 모두 쓸어버려라








가을 소나기에 담긴 정의의 시학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주광일 시인의 '가을 소나기'는 계절의 변화를 노래하는 단순한 자연시가 아니다. 그 안에는 시인의 생애와 가치철학, 그리고 정의를 향한 간절한 소망이 응축되어 있다. 법조인으로 살아온 그는 한평생 破邪顯正을 삶의 소명으로 삼았다. 이 시는 그런 그의 삶과 정신이 그대로 투영된 시적 선언이다.

첫 구절은 매미 울음이 그친 저녁의 정적 속에서 시작된다. 여름 내내 울부짖던 매미 소리가 멎자 곧바로 풀벌레 소리가 이어진다. 이는 계절의 교체를 알리는 자연스러운 장면이지만, 시인은 그 속에서 다른 의미를 읽어낸다. “누가 지난여름 / 이 땅을 이토록 / 울음판으로 만들었는가”라는 물음은 단순한 계절 묘사가 아니라 사회적 현실에 대한 비판이다. 지난여름, 시인의 눈에 비친 사회는 울음으로 가득한 혼돈의 장이었다. 정치적 갈등과 부조리한 싸움이 나라를 울음판으로 만든 것이다.

이 지점에서 시인은 계절의 이미지와 사회적 현실을 교묘히 겹쳐 놓는다. 매미와 풀벌레의 울음은 단순한 자연의 소리가 아니라, 불의와 부정 속에 신음하는 민중의 울음소리로 변환된다. 시인의 미의식은 바로 이런 은유적 전환에서 드러난다.

이윽고 시인은 가을을 소환한다. 그가 부르는 가을은 낭만적 계절이 아니다. “그대는 독한 맘먹고 / 천둥 번개 더불어 / 매몰찬 소나기로 쏟아지거라”라는 구절은 가을에게 정화의 역할을 명령하는 언어다. 여기서 가을은 정의의 계절이며, 소나기는 불의를 씻어내는 심판의 은유다. 시인은 가을 소나기를 통해 지난 계절 쌓인 모든 부조리를 씻어내길 바란다.

마지막 연은 시인의 가치철학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지난여름 쌓였던 / 눈 뜨고 못 볼 / 이 땅의 못 볼 것들을 / 성난 빗물로 / 모두 모두 쓸어버려라.” 여기서 ‘못 볼 것들’은 단순히 더러운 흔적이 아니다.
이는 권력의 탐욕, 정치의 부패, 사회의 불의와 같은 구체적 현실을 지칭한다. 시인은 그것들을 소낙비에 맡겨 말끔히 씻어내길 갈망한다. 이 갈망은 법조인으로 살아오며 불의와 싸워온 그의 일생과 맞닿아 있다.

주광일 시인의 삶의 철학은 분명하다.

그는 시를 통해서도 현실의 어둠을 외면하지 않는다. 외려 계절과 자연을 빌려 부조리를 고발하고, 정의의 회복을 기도한다. 그의 시는 단순한 자연 서정이 아니라, 현실과 맞닿은 정의의 언어다. 이는 곧 시를 통해서도 파사현정을 실천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가을 소나기'는 미적으로도 단순하면서 힘 있다. 불필요한 수식이나 화려한 언어는 없다. 대신 짧고 단호한 문장이 이어지며, 마치 판결문처럼 분명한 울림을 남긴다.
이는 법조인으로서의 이력과 시인으로서의 감성이 결합된 독특한 미의식이다. 시인은 자연을 바라보면서도 언제나 그 속에서 정의의 문제를 읽어낸다. 그래서 그의 가을은 낭만이 아니라 심판이고, 소나기는 단순한 비가 아니라 정화의 빗줄기다.

요컨대, 이 시는 가을이라는 계절의 변화를 빌려 사회의 갱신을 기원하는 기도문이자 선언문이다. 주광일 시인은 법정에서 정의를 세우듯, 시의 자리에서도 정의를 외친다. 그의 소망은 단순히 한 계절의 청량함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부조리한 세상을 말끔히 씻어내고, 정의와 진실이 살아 숨 쉬는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고자 하는 열망이다.
'가을 소나기'는 그 열망을 담아낸 숭고한 시적 기록이며, 시인의 일생이 증거하는 가치철학의 집약체라 할 수 있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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