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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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언제나 서툴다
시인 나태주
서툴지 않은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
어제 보고 오늘 보아도
서툴고 새로운 너의 얼굴
낯설지 않은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
금방 듣고 또 들어도
낯설고 새로운 너의 목소리
어디서 이 사람을 보았던가.
이 목소리 들었던가.
서툰 것만이 사랑이다
낯선 것만이 사랑이다
오늘도 너는 내 앞에서
다시 한번 태어나고
오늘도 나는 네 앞에서
다시 한번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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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툶과 낯섦으로 빚어진 사랑의 변증법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사랑은 오래된 주제다.
인류의 문학은 사랑의 다양한 얼굴을 그려왔다. 나태주 시인의 〈사랑은 언제나 서툴다〉는 흔한 감정의 찬미가 아닌, 사랑의 본질을 ‘서툶’과 ‘낯섦’이라는 두 개의 축으로 파고든다. 사랑을 성숙과 완결이 아닌, 미숙과 갱신의 연속으로 보는 관점은 단순한 감정의 기록을 넘어 존재론적 진술로까지 확장된다.
첫 연은 단호하다.
“서툴지 않은 사랑은 이미 / 사랑이 아니다.” 여기서 ‘서툴지 않음’은 익숙함이나 숙련을 의미한다. 시인은 사랑이란 익숙해지는 순간 이미 죽은 감정이라 단언한다. 사랑은 정지된 안정이 아니라 늘 불안정한 설렘이어야 하며, 그 불안정성은 ‘서툰 얼굴’이라는 이미지로 형상화된다. 매일 마주하는 얼굴조차 새로움과 두려움으로 다가올 때, 사랑은 비로소 살아 있다. 이 대목에서 사랑은 ‘항상 처음인 듯한 낯선 탄생’이라는 의미로 재구성된다.
둘째 연은 목소리의 비유로 확장된다.
“낯설지 않은 사랑은 이미 /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귀에도 동일한 논리를 적용한다. 익숙한 목소리, 반복되는 음향 속에서는 더 이상 설레는 떨림이 없다.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는 늘 낯설게 다가와야 하며, 그것은 감각의 새로움을 넘어 관계의 갱신을 뜻한다. 여기서 목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존재의 징표다. 매 순간 새롭게 들리는 목소리는 타자가 나와 동일화되지 않고, 여전히 신비한 타자로 머물러 있음을 드러낸다.
세 번째 연은 질문의 형태로 전환된다.
“어디서 이 사람을 보았던가. / 이 목소리 들었던가.” 사랑하는 이는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으면서도 여전히 알 수 없는 타자다. 가까움 속의 낯섦, 익숙함 속의 미지(未知)가 사랑을 지탱한다. 이 구절은 연인의 얼굴과 목소리를 통해 ‘데자뷔(deja vu)’와 같은 감각을 불러오면서, 사랑이란 언제나 미지의 세계와 마주하는 경험임을 보여준다.
결국 시인은 “서툰 것만이 사랑이다 / 낯선 것만이 사랑이다”라고 다시 한번 선언하며, 처음의 단호한 명제를 원형처럼 되풀이한다. 이는 사랑의 진리를 반복과 강조 속에서 독자의 가슴에 각인시키는 장치다.
마지막 연은 사랑의 본질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오늘도 너는 내 앞에서 / 다시 한번 태어나고 / 오늘도 나는 네 앞에서 / 다시 한번 죽는다.” 사랑은 탄생과 소멸의 끊임없는 순환이다. 연인은 매 순간 새롭게 태어나며, 그 앞에서 시적 화자는 매번 죽음을 맞는다.
이 ‘죽음’은 관계 속에서 옛 자아를 버리고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은유다. 사랑은 자아의 확장이 아니라 자아의 소멸이며, 그 소멸을 통해 다시 쓰이는 탄생이다. 에로스와 *타나토스, 사랑과 죽음의 긴밀한 연관성을 선명히 보여주는 구절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의 문체적 특징은 절제와 직설이다. 화려한 수사나 장식적 비유는 거의 없고, 단정적인 진술과 반복을 통해 사유의 깊이를 만들어낸다. ‘서툶’과 ‘낯섦’이라는 두 축이 시 전편을 지배하면서, 독자는 점차 그 의미의 심연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러한 절제는 오히려 언어의 맑음을 더하며, 독자가 여백 속에서 스스로 의미를 확장하게 한다.
문학적 맥락에서 보자면, 이 시는 사랑을 ‘완성’이나 ‘안정’으로 보는 통념을 거부한다. 사랑은 항상 미완이며, 그 미완성 속에서만 살아 있다. 서툴고 낯설어야 한다는 명제는 곧 사랑의 생명력에 대한 선언이다.
이는 단순한 연애의 감정을 넘어, 인간이 타자와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한 근원적 사유로 이어진다. 타자는 끝내 다 알 수 없는 존재이며, 사랑은 그 알 수 없음 속에서 지속된다.
결국 〈사랑은 언제나 서툴다〉는 사랑을 감정이 아닌 사건으로, 심리적 체험이 아닌 존재론적 경험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사랑은 늘 새로이 태어나며, 그 앞에서 자아는 늘 죽는다. 이 반복과 갱신의 역설이야말로 사랑의 진실이다.
나태주 시인은 이 단순한 진리를 서툴고 낯선 언어로 응축해 내어, 독자들로 사랑의 본질을 새삼 성찰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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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나토스 ㅡ그리스 로마 신화의 죽음의 신.
정확히는 ‘의인화된 죽음’이며, 그리스어로 '죽음, 절명, 사망'이라는 뜻이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