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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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고통을 빛으로 바꾼 영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빈센트 반 고흐는 늘 스스로를 “최하층 중에 최하급의 사람”이라 불렀다. 사회에서 밀려난 이들, 가난하고 병든 이들과 자신을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를 낮추며 가장 밑바닥에 놓았으나, 바로 그 낮춤 속에서 진정한 용기의 불꽃이 타올랐다. 고흐의 예술혼은 자신의 고통을 빛으로 바꾸려는 끊임없는 투쟁이었다.
고흐의 생애는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었다. 목사의 길을 걷고자 했으나 끝내 벗어났고, 연애에서도 좌절을 거듭했다. 그는 안정된 직업도, 가정도 갖지 못한 채 방황했으며,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바로 그 고통 속에서 그는 인간의 삶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했고, 이를 그림으로 승화시켰다. 그는 가난한 광부의 얼굴에 깃든 절망을, 농부의 손에 배어 있는 땀의 무게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느꼈다. 그래서 그의 화폭에는 언제나 “삶의 바닥에서 피어난 빛”이 담겼다.
고흐의 그림은 화려한 치장이 없다. 대신 불안하게 떨리는 선, 치열하게 부딪히는 색채가 있다. 《감자 먹는 사람들》 속 음울한 갈색은 가난한 자들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거기에는 인간 존엄에 대한 깊은 애정이 깃들어 있다. 《해바라기》의 노란 빛은 환희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고통을 뚫고 솟아오른 의지의 색이었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니라, 영혼이 격렬하게 불타오른 흔적이었다.
그는 말년에 귀를 자르고, 정신병원에 갇히기도 했다. 그의 붓은 멈추지 않았다. 외려 가장 어두운 밤에 그는 가장 빛나는 그림을 그렸다. 《별이 빛나는 밤》은 그의 내면의 고통이 폭풍처럼 몰아치는 와중에도, 그 속에서 하늘을 향해 꿈꾸던 영혼의 울부짖음이었다. 그는 하늘의 별빛을 절망이 아닌 희망의 언어로 옮겼다. 고흐의 그림은 절망을 뚫고 나아간 인간 영혼의 찬가였다.
그는 생전 단 한 점의 그림만을 팔았을 뿐, 세상은 그를 알아주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그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림은 그의 마지막 숨결이자 존재 이유였기 때문이다. 그는 동생 테오에게 편지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내 예술을 통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싶다.”
비록 세상은 그에게 가난과 조롱을 주었지만, 그는 자신의 붓으로 고통받는 이들과 영혼을 나누려 했다.
고흐가 말한 “나는 최하층 중의 최하급”이라는 고백은 패배의 낙인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그곳에서 사랑을 발견하려는 결연한 의지였다. 그는 낮은 곳에서 빛을 찾았고, 그 빛을 세상에 나누었다. 그의 그림은 지금도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절망 속에서도 별빛을 볼 수 있는가?”
고흐의 삶은 짧고 비극적이었으나, 그의 영혼은 시대를 넘어 불멸의 울림을 남겼다. 그는 고통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고, 절망 속에서도 빛을 그렸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다. 그는 패배한 자가 아니라,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승리자였다.
오늘날 우리는 고흐의 그림 앞에서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닌, 한 인간의 치열한 영혼과 마주한다. 그의 해바라기는 태양을 향해 고개를 드는 희망이고, 그의 밤하늘은 어둠 속에서 별빛을 붙잡으려는 간절한 기도다. 고흐는 자신의 낮춤과 상처를 통해 우리에게 가장 높은 사랑을 전했다. 그는 최하층을 자처했으나, 그곳에서 누구보다 높이 빛났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