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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세의 오빠 부대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94세 오빠 부대



초봄, 아직 냉기가 짙은 햇살 속에 숨 가쁘게 들썩였다. 강원도 태백 공설운동장 무대 위에서는 노래가 울려 퍼지고, 가득 메운 관객들은 일제히 플래카드를 흔들며 함성을 보냈다. 조끼 앞뒤에 새겨진 이름은 하나였다. 모두가 부르고, 모두가 기다린 이름, 바로 가수 정동원.

관중석에는 젊은이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이들, 주름 깊이 세월을 새긴 이들이 같은 열기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사로잡은 이는 단연 부산에서 달려온 한 어르신이었다. 나이 아흔넷, 새벽길을 직접 승용차로 몰아 태백까지 올라온 할아버지. 그에게 정동원은 단순한 가수가 아니었다. 손을 높이 흔들며 “우리 동원 오빠!”를 외치는 모습은 나이와 상관없는 순정의 발현이었다.

사람들은 놀라움 속에 그를 바라봤다. 어떻게 이 연세에 이런 열정을 가질 수 있을까. 그의 목소리에는 이유가 있었다. “정동원이 아니었으면, 이미 이 세상에 없었을지 모른다.” 한마디 고백은 공연장의 소음을 가르며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병든 몸과 외로운 노년의 시간을 견디게 해 준 것은 무대 위 소년의 노래였다. 어린 시절의 천진함으로 다가왔던 목소리는 이제 의젓하게 자라난 청년의 울림이 되어, 여전히 그의 생을 지탱하는 힘으로 남아 있었다.

정동원이라는 이름 앞에서 세대의 경계는 사라졌다. 소녀 팬들의 눈빛도, 청년 팬들의 함성도, 그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의 절규 같은 응원도 모두 같은 맥박을 탔다. 음악은 나이를 가리지 않았다. 열여섯 살의 청년이 던진 노래가 아흔넷 노인의 심장을 다시 뛰게 했다. 그 순간 무대와 객석은 하나의 공동체가 되었다.

공설운동장의 가을 하늘은 높았고, 목소리는 울림을 키웠다. 플래카드를 든 수많은 손 사이에서, 흰머리와 주름진 얼굴이 더 빛났다. 그것은 단순한 팬심을 넘어선 생의 고백이자, 삶의 끈을 놓지 않게 해 준 감사의 외침이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지켜내는 이 팬덤은 젊음의 흉내가 아니라, 세월을 넘어선 진실한 사랑의 증명이었다.

이날 태백의 운동장은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음악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지탱하는가, 노래가 어떻게 생의 버팀목이 되는가를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정동원의 노래는 단순한 가락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세대가 살아갈 이유가 되었고, 노년이 다시 꿈꾸게 하는 불씨였다.

아흔넷의 할아버지가 부르는 “오빠”라는 호칭은 우스꽝스럽지 않았다. 외려 그 속에는 삶에 대한 애착과, 가수에게 보내는 절절한 고마움이 담겨 있었다. 청춘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 이보다 더 뚜렷하게 증명될 수 있을까.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공연장 어느 자리보다 뜨거웠고, 그것은 곧 생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리는 장엄한 선언이었다.

정동원이라는 이름 아래 모인 이들은 단순한 팬덤이 아니라, 인생의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음악으로 하나 된 형제자매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을 “94세 오빠의 부대”라 불렀다. 이는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노래가 삶을 지탱하는 힘이자 세대를 초월한 연대의 상징이었다.

그날의 태백, 운동장은 노래와 환호로 뜨거웠다. 그러나 진정 오래 남은 것은 한 노인의 말 한마디였다. “정동원이 아니었으면, 이미 이 세상에 없었을지 모른다.” 그것은 음악이 한 생명을 붙잡은 기록이자, 인간이 인간을 살리는 위대한 증언이었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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