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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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향기
말은 향기를 품을 수도, 상처를 남길 수도 있다. 같은 입술에서 흘러나온 음성이지만, 어떤 말은 꽃처럼 피어나 상대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어떤 말은 가시처럼 박혀 오래도록 아픔을 남긴다. 그 차이는 단순히 말의 내용이 아니라, 마음을 담는 태도와 언어의 빛깔에서 비롯된다.
대화 속에서 가장 피해야 할 말은 “그게 아니고”라는 짧은 한마디일 것이다. 상대가 어렵게 꺼낸 이야기를 단숨에 부정하는 순간, 그 마음은 닫히고, 눈빛은 얼어붙는다. 말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잘라버리는 태도 속에는 상대의 아픔이나 분노를 공감하려는 의지가 없다. 마치 씨앗이 흙을 뚫고 나오려는 순간, 발로 짓밟아버리는 격이다. 이 말은 설명이 아니라 단절이고, 대화가 아니라 방어다. 결국 마음의 거리를 더 멀게 만드는 벽돌이 된다.
반면, 가장 따뜻한 말은 “많이 아팠구나”라는 한마디다. 이 말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 상대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표시다. 설명이나 충고가 필요 없는 자리에서, 그저 공감으로 채워진 한 문장은 메마른 땅에 스며드는 빗물처럼 상처를 적신다. 화가 잔뜩 난 사람의 분노 뒤에는 보이지 않는 상처가 숨어 있다. 그 상처를 알아채고 이름 불러주는 순간, 사람은 이미 절반은 치유된다. 말은 약이 되고, 숨결은 연고가 된다.
아름다운 언어란 문학적인 수사를 늘어놓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향기처럼 은은하고, 바람처럼 스며드는 말이다. 상대의 마음을 인정하는 “그랬구나”, “수고했구나”, “네 마음이 이해돼” 같은 말들이 바로 향기 나는 언어다. 그런 말은 꾸밈없이 간결하지만, 오래 남는다. 꽃의 향기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풍겨 나오듯, 진심에서 비롯된 언어는 소리 없는 울림으로 상대의 가슴을 적신다.
말은 곧 사람의 얼굴이다. 아름다운 말은 그 사람을 더욱 빛나게 하고, 향기나는 말은 그 사람 곁을 편안한 자리로 만든다. 누군가의 아픔 앞에 “그게 아니고” 대신 “많이 아팠구나”라고 말할 때, 우리는 단순히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 영혼을 끌어안는 것이다. 언어는 칼이 될 수도 있고 꽃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어떤 말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관계는 무너질 수도, 더 깊어질 수도 있다.
아름다운 언어는 삶의 지혜이자 품격이다. 향기나는 말은 누구나 기억한다. 시간은 지나도 그 따뜻한 울림은 사라지지 않는다. 언어의 향기를 지닌 사람 곁에는 늘 사람들이 모여들고, 그 말의 흔적은 오래도록 사람들의 가슴속에 머문다. 결국 우리는 말을 통해 살아가며, 말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그 순간마다 향기나는 언어를 선택하는 것, 그것이 인간다운 길이자 가장 고운 삶의 방식이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