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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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을 쓰는 사람을 단 한 번만이라도 만나고 싶다
지나치게 비난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과하게 칭찬하지도 않는 언어. 그 담백한 빛깔 속에서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세상에는 목소리는 크지만 마음은 텅 빈 말들이 너무 많다. 남을 꺾기 위해 날을 세우거나, 허영을 달래기 위해 지나친 찬사를 늘어놓는 말들. 그런 말은 잠시 귓가를 스쳐가지만 오래 남지 않는다. 외려 마음 한켠에 쓴맛을 남기며 인간 사이의 거리를 벌려놓는다.
담백한 언어는 밥과 같다. 기교가 없어도 결코 질리지 않고, 오래 곁에 두고 싶은 맛을 남긴다. 비난은 짜디짠 소금물 같아 목을 타들게 하고, 과한 칭찬은 지나치게 달아 결국 물리게 만든다. 담백한 말은 적절히 간을 맞춘 한 그릇의 밥처럼, 사람의 마음을 든든하게 채워준다. 그 말속에는 꾸밈보다는 진심이 있고, 계산보다는 온기가 있다. 그래서 듣는 이는 편안히 마음을 내려놓게 된다.
은은한 향기를 지닌 언어는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꽃이 자기 향기를 떠들썩하게 알리지 않듯, 향기 나는 말은 억지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분위기를 바꾸고, 상처받은 이의 숨결을 다독인다. 때로는 한마디 “그랬구나”라는 말이 천 마디 위로보다 더 깊게 스며든다. 향기 나는 언어는 말의 길이가 아니라 마음의 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런 언어를 쓰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대화 속에서 상대를 이기려는 마음 없이, 다만 같이 걸어가듯 말하는 사람. 남을 높이려는 과장된 칭송도, 남을 꺾으려는 날 선 지적도 없이, 조용히 진심을 건네는 사람. 그와의 대화는 계절의 바람결 같아서, 오래 머문 흔적은 없어도 몸과 마음을 맑게 씻어준다. 마치 깊은 산길을 걸을 때 코끝에 스치는 솔향기처럼, 말을 듣는 순간에는 잊고 지나가더라도 시간이 지난 뒤 문득 떠올라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사람.
언어는 결국 사람의 얼굴이다. 지나치게 비난하는 사람의 말은 주름진 얼굴처럼 경직되어 있고, 과한 칭찬을 늘어놓는 사람의 말은 번드르르하지만 금세 퇴색한다. 담백하고 향기로운 언어를 쓰는 사람의 얼굴에는 늘 고요한 미소가 머문다. 그 미소는 억지로 웃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기에 오래도록 사람을 끌어당긴다.
나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더 나아가, 나 스스로도 그런 언어를 품은 사람이 되고 싶다. 말이 가시가 되어 상처를 남기기보다, 말이 꽃잎이 되어 누군가의 하루를 밝혀주는 사람. 지나친 비난도, 과한 칭찬도 아닌 담백한 말 한마디로 타인의 마음에 향기를 남기는 사람. 결국 그 언어는 삶의 품격이 되고, 그 품격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가까이 잇는 다리가 된다.
언어가 곧 존재라 한다. 그러니 내가 바라는 만남은 단순히 사람을 향한 바람이 아니라, 언어의 향기를 통해 맺어지는 인연에 대한 소망일 것이다. 세상이 시끄럽고 거칠수록 더욱 그리워지는 만남. 은은히 향기 나는 언어를 쓰는 사람, 그 사람을 기다리며 오늘도 내 말의 결을 돌아본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