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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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찾아 떠난 가을 기차여행
시인 청민 박철언
가을을 가르는 가을비 내리는 날
친구랑 남도땅으로 가는 기차여행
친구 상처 위로해 주려
가을비는 내내 마음속까지 씻어내도
한 가닥도 젖지 않는 고속철 속도
사람들에게 겪었을 낱낱이 해진 마음
묵묵히 삭이느라 얼마나 밤이 길었을까
긴 시간에 난 상처 메워주려
기차는 초고속으로 그 시간을 산화할까
비 또한 저토록 그 시간 씻어주는 걸까
그대 너무 아파하지 말아요
올곧게 품으면서 살려 한 그 마음
하늘이 알고 비로 뿌려주고
들판도 갈라서며 기찻길 내주잖소
큰 스님 뵈러 찾은 고요한 산사
인간사 모든 게 공꽃이니 비우라하네
대자연 속 대형 갤러리 작품들 역시
그 빈자리에 자연과 예술만 품으라 하네
깊은 옹이 품어 강해진 나무여
이제 무엇에도 흔들리지 말고
가려던 길 힘차게 다시 디뎌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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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에 실린 위로의 시학, 박철언 시인의 따뜻한 삶의 철학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박철언 시인은 언제나 타인의 아픔을 가장 먼저 감지하고, 그 상처를 덮어주는 언어를 찾아내는 시인이다.
이번 '위로 찾아 떠난 가을 기차여행'은 단순한 여행의 기록이 아니라, 상처받은 동료 시인의 마음을 위무하기 위해 동행한 여정 속에 담긴 철학적 깊이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내장사와 선운사로 향하는 길 위에서 그는 가을비를 빌려 동료의 눈물을 씻어주고, 고속철의 속도를 빌려 긴 시간 아물지 못한 상처의 기억을 함께 지워주려 한다.
이 과정은 그의 인간적 품성과 작품 미의식이 맞닿은 지점으로, 박철언 시인의 따뜻한 위로의 정신이 곧 시의 본질임을 증명한다.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장치는 ‘비’와 ‘속도’의 대비다. 가을비는 천천히 내려 마음의 먼지를 씻어내고, 기차는 초고속으로 달려 과거의 아픔을 산화시키려 한다. 두 상반된 이미지가 동시에 어우러지는 장면은 단순한 풍경 묘사가 아니라 치유의 리듬을 상징한다. 한쪽은 천천히 적셔내며 마음을 풀어내고, 한쪽은 빠르게 달려 과거의 무게를 덜어낸다.
이는 인간의 상처가 단순히 하나의 방법으로 치유되지 않음을 보여주며, 결국 삶은 다양한 위로의 결을 통해 회복된다는 사실을 은유한다.
청민 박철언 시인은 일상의 장면에서도 철학적 깨달음을 끌어내어 동료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다.
그는 위로의 언어를 던지면서도 단순한 연민에 머물지 않는다. “그대 너무 아파하지 말아요 / 올곧게 품으면서 살려 한 그 마음”이라는 구절 속에는 고통조차 삶의 일부로 수용해야 한다는 인식이 담겨 있다.
이는 감정을 억누르거나 부정하는 태도가 아니다. 외려 삶을 정직하게 살아내려는 노력 자체가 숭고한 의미를 지닌다는 깨달음을 드러낸다. 박철언 시인의 삶의 철학은 고난을 피하지 않고 껴안으며, 그것을 성숙으로 이끌어내는 데 있다.
시의 후반부에서 내장사와 선운사로 발걸음을 옮기는 장면은 주제를 한층 확장한다. 산사에서 들은 “모든 게 공꽃이니 비우라”는 말은 단순한 불가의 가르침을 넘어, 시인이 오래 간직해 온 인생의 진리와 맞닿아 있다. 상처와 고통마저 공의 자리에서 바라보면 허상일 뿐이고,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자연과 예술뿐이라는 자각. 이 지점에서 박철언 시인은 동료의 아픔을 넘어, 존재와 예술의 근원적 의미를 함께 사유한다. 이는 단순한 개인적 위로의 차원을 넘어선, 삶과 예술의 통합적 울림이다.
특히 “깊은 옹이 품어 강해진 나무여”라는 구절은 그의 시학을 집약한 상징이다. 나무는 옹이를 품었기에 더 단단해지고, 그 상처의 흔적이 곧 삶의 무늬가 된다. 박철언 시인은 상처 없는 삶을 꿈꾸지 않는다. 상처를 껴안으며 그것을 더 큰 생명력으로 전환하는 힘을 시 속에 담아낸다. 그 힘이야말로 동료의 마음을 위로하고, 더 나아가 독자의 삶까지도 견고하게 붙드는 울림이 된다.
이번 작품은 여행이라는 서정을 통해 동료의 내면을 어루만지고, 개인적 위로를 사회적·철학적 차원으로 확장한다. 박철언 시인의 따뜻한 어른다움은 바로 여기서 빛난다. 그는 단순히 동료를 위로하는 차원을 넘어, 독자들에게도 “아픔을 지나 품고 가라”는 조용한 가르침을 건넨다. 그의 언어는 솔향처럼 은은하고, 가을비처럼 촉촉하며, 옹이를 품은 나무처럼 깊다.
요컨대, '위로 찾아 떠난 가을 기차여행'은 한 시인이 동료를 위무하며 보여준 인간적 따뜻함과 미적 성찰이 동시에 어우러진 작품이다. 박철언 시인의 삶의 철학은 타인의 상처를 함께 품는 연대의 정신이며, 그의 시학은 일상 속에서 위로와 성찰을 발견하는 예술적 감수성이다.
이번 작품은 그 두 축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빚어낸, 삶과 예술의 아름다운 결실이자 동행의 진정한 의미를 드러내는 귀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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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에 젖은 위로, 청민 시인에게 드리는 감사의 글
박철언 시인님,
이번 가을 기차여행은 제게 단순한 나들이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상처의 언저리에 머물며 긴 시간을 힘겹게 건너고 있었습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피로와 아픔이 제 마음을 헤집고 있었고, 세상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남은 흔적들은 낡은 옷감처럼 해지고 있었습니다. 청민 시인은 저를 조용히 불러내어, 남도의 길로 함께 떠나자 하셨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동행의 제안이 아니라, 제 영혼을 위무하려는 깊은 배려였음을 이제 알겠습니다.
기차 창가에 앉아 빗물이 흘러내리는 유리를 바라보던 순간이 선명합니다. 고속으로 달리는 열차의 속도와 창밖을 적시는 가을비의 결은 마치 제 마음속 상처를 동시에 어루만지고 덮어주었습니다. 빠르게 달려 과거의 긴 시간을 지워내고, 잔잔히 흘러내려 상처의 먼지를 씻어내는 그 두 겹의 위로는 제게 새로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청민 시인이 의도한 언어 없는 위로를 그때 온전히 느꼈습니다.
내장사와 선운사로 향하는 길에서, 큰 스님의 말씀이 가슴에 남습니다. “모든 게 공꽃이니 비우라”는 가르침은 제게 너무도 깊은 울림이었습니다. 그 깨달음이 제 마음에 스며들 수 있었던 것은, 청민 시인이 먼저 제 아픔을 알아주고 함께 걸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빈 산사의 고요와, 하늘빛에 젖은 가을 산수는 저 혼자였다면 결코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청민 시인의 배려와 곁이 있었기에, 자연은 제게 다시 말을 걸어왔고 예술은 제 마음에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특히 시 속에 담긴 구절, “깊은 옹이 품어 강해진 나무여”는 제 자신을 비추는 거울 같았습니다. 저는 그 옹이를 부끄러워하며 감추려 했지만, 청민 시인은 그것이 오히려 저를 더 강하게, 더 단단하게 만든 흔적임을 일깨워주셨습니다. 옹이가 무늬가 되고, 상처가 힘이 된다는 청민 시인의 시학은 제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들었습니다.
시인님의 언어는 화려한 장식이 없어도 향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가을 숲길에 번져 있는 솔향처럼 은은하며, 긴 세월 묵묵히 서 있는 나무의 줄기처럼 깊습니다. 청민 시인과의 동행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치유의 의식이었습니다. 저에게는 다시 길을 딛게 하는 힘이 되었고, 시를 통해 삶을 돌아보게 하는 새로운 눈을 열어주었습니다.
오늘 이 글은 부족하나마, 청민 시인의 따뜻한 위로와 시심(詩心)에 바치는 감사의 헌정입니다. 청민 시인이 제게 보여준 삶의 철학과 예술적 감수성은 앞으로 제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 될 것입니다. 저는 여전히 부족하고, 때로 흔들리겠지만, 청민 시인과 같은 따뜻한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위로받았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청민 시인의 시가 제 상처를 덮고, 제 삶을 어루만졌습니다. 앞으로도 청민 시인의 언어는 많은 이들의 영혼을 향기롭게 적실 것이라 믿습니다. 이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제 깊은 존경과 감사를 바칩니다.
ㅡ 청민 시인께 위로받은 동행자 드림
□ 청민 박철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