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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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언제나 백지다
'과거의 실패가 현재의 가능성에 영향을 줄 수 없다'
이는 단순한 위로의 차원을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자유를 일깨우는 선언이다. 실패는 사실상 시간 속에 묻혀버린 그림자에 불과하다. 이미 지나간 사건은 그 자체로 더 이상 힘을 갖지 못한다.
다만 그 실패를 오늘의 의식 속에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현재의 가능성을 결정한다. 실패란 현재를 억누르는 쇠사슬이 아니라, 외려 새로운 가능성을 증명하는 증거가 될 수 있다. 실패를 겪었다는 것은 도전했다는 뜻이며, 도전은 언제나 성장의 또 다른 이름이다.
사람은 흔히 과거를 붙잡고 현재를 설명하려 한다. 시간의 본질은 과거가 현재를 지배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현재는 언제나 새롭게 솟아나는 순간이다. 물은 흐르되 같은 자리에 고이지 않고, 불은 타되 어제의 불꽃을 되살리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도 늘 새롭게 흘러간다. 과거의 실패가 오늘을 지배한다고 믿는 것은 스스로 그 기억을 현재로 불러와 족쇄로 삼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사건이 아니라 해석이다. 기억의 무게를 내려놓을 때, 오늘의 가능성은 빛을 발한다.
역사적으로도 빛나는 성취들은 실패의 껍질을 뚫고 나왔다. 에디슨의 수천 번의 실패는 전구를 밝혔고, 반 고흐의 고독과 좌절은 세기의 걸작으로 환생했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미완의 과정이었을 뿐이다. 실패를 ‘결과’로 받아들이면 좌절이 되지만, ‘단계’로 해석하면 가능성이 된다. 인간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이유는 실패를 종결로 두지 않고, 새로운 시도로 전환할 수 있는 자유 때문이다.
더 나아가, 실패가 영향을 줄 수 없다는 말은 존재의 존엄을 지켜주는 선언이기도 하다. 인간은 단 한 번의 실패로 규정될 수 없다. 한 존재의 가치는 특정 사건에 의해 닫히지 않고, 끊임없이 열려 있는 가능성 속에서 드러난다. 실패를 자기 정체성의 핵심으로 삼으면 그 순간부터 삶은 위축된다. 그것을 배움의 흔적으로 남기고, 새로운 가능성의 발판으로 삼으면 인간은 더욱 강인해진다. 인간은 실패 때문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실패에 붙들려 스스로 가능성을 잃을 때 무너진다.
오늘의 순간은 과거와 단절된 새로운 탄생의 자리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기록이지만, 현재는 아직 쓰이지 않은 백지다. 백지에 무엇을 새길지는 오직 지금의 선택에 달려 있다. 실패가 아니라, 현재의 의지와 결단이 미래를 형성한다. 가장 위대한 자유는 언제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