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청민 박철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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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사금파리
시인 청민 박철언
그대에게 함부로 던진 내 말
가슴에 사금파리로 박혀
숨 쉴 때마다 찔렀을 조각들
파편마다 밤하늘에 하얗게 떠돌다가
꿈속에도 켜켜이 파고들었을까
금이 간 내 꿈마저 마디마디 아프구나
내 말의 넝쿨 한없이 자라나서
그대 마음 칭칭 동여맬 줄이야
내 마음도 무겁게 주저앉으니
하늘도 회색빛으로 우울하다
내 마음의 창 그대여
사금파리 내 가슴으로 되돌리고 싶으나
그럴 수 없어 더욱 날 찌르는구나
창 열고 하늘에 사금파리 산산이 흩뿌려
붉은 상흔 남김없이 은하수로 씻고서
하나 된 우리 사랑 다시 푸르게 날아봐요
아픔 털어낸 꿈의 날개 힘차게 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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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민 박철언의 시 '말의 사금파리'를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청민 박철언 시인의 시 '말의 사금파리'는 언어와 삶의 관계를 치열하게 응시한 작품이다. 법조인으로서 사회 정의의 울타리를 세우며, 동시에 시인으로서 인간의 내면을 탐구해 온 그의 삶의 궤적은 작품 전반에 드리운 긴장과 성찰의 빛을 한층 더 선명하게 만든다.
이 시는 한순간의 말이 남긴 파편을 되새기며, 언어의 윤리와 치유의 가능성을 동시에 모색한다는 점에서 겸손의 미학이 집약된 시편이라 할 수 있다.
시의 서두는 “그대에게 함부로 던진 내 말”이라는 고백적 어조로 열리며 독자를 단숨에 사유의 장으로 끌어들인다. 언어는 단순히 발화자의 입에서 흩날리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내면에 사금파리처럼 박혀 일상의 호흡까지 위협할 수 있는 현실적 힘을 가진다. “숨 쉴 때마다 찔렀을 조각들”이라는 구절은, 말이 육체적 고통으로 환원될 수 있는 구체적 상처임을 드러낸다. 이 지점에서 시인은 언어의 무게를 단순한 수사학이 아닌 삶의 윤리로 승화시킨다.
중반부의 “내 말의 넝쿨”은 상징적이다. 말은 순간적 사건이 아니라, 자라나고 번져나가는 생명체와 같다. 타인의 마음을 얽어매는 동시에 화자의 마음까지 옭아매는 이중적 속성은 언어의 본질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그 결과 하늘마저 회색빛으로 드리워진다. 잘못된 언어가 개인의 내면뿐 아니라 세계의 풍경까지 어둡게 바꿀 수 있다는 자각은, 언어에 대한 시인의 철저한 성찰을 보여준다. 법조인의 자리에서 경험했을 언어의 엄중함이 이 대목에서 문학적 형상으로 재현된 것이다.
마지막 연은 절망을 넘어 회복을 지향한다. “창 열고 하늘에 사금파리 산산이 흩뿌려 / 은하수로 씻고서”라는 구절은 정화와 치유의 이미지를 선명히 드러낸다. 상처의 흔적을 은하수라는 우주의 질서 속에 흩뿌리고 씻어내는 장면은, 언어가 남긴 상흔을 초월적 차원에서 새롭게 정화하려는 시적 의지다. 나아가 “하나 된 우리 사랑 다시 푸르게 날아봐요”라는 제안은 단순한 화해를 넘어, 상처 위에 새로운 관계와 사랑을 세우려는 희망의 선언이다.
이 시의 미학은 ‘겸손의 미학’으로 요약된다. 말의 상처를 타인의 문제가 아닌 자신의 아픔으로 되돌려 껴안는 태도, 그것이 곧 시인의 윤리적 성찰이다. 잘못된 언어가 남긴 금은 화자의 내면에도 깊게 파고들며, 그는 그 상처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한다. 동시에 상처를 흩뿌리고 씻어내어 새로운 삶을 꿈꾸는 과정은, 인간이 언어를 통해 상처받고 또다시 언어를 통해 치유된다는 역설적 진실을 웅변한다.
박철언 시인의 삶과 문학은 여기서 긴밀히 만난다. 법조인의 삶은 언어의 정확성과 책임을 요구한다. 판결문 한 줄, 변론의 한 마디가 타인의 운명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언어의 현장에서 평생을 살아온 시인이기에, 그는 누구보다 언어의 상처와 무게를 잘 안다. 동시에 그는 시를 통해 언어의 치유적 가능성을 찾는다. 언어가 파편으로 남을 때는 고통을 주지만, 은하수로 씻겨낼 때는 희망을 열 수 있다. 이 양면성을 꿰뚫는 시적 성찰이야말로 그의 작품 세계가 지닌 독창적 미의식이다.
'말의 사금파리'는 결국 언어의 윤리와 치유의 역설을 담아낸 시다. 상처를 인식하고, 그 책임을 자신에게 되돌리며, 끝내 그 상처를 치유의 길로 승화시키는 과정에서 시인은 언어를 삶의 철학으로 끌어올린다. 그것은 법과 문학, 현실과 예술을 관통하는 박철언 시인의 가치철학이자, 겸손한 성찰 속에서 빛나는 인간학적ㅡ 미학이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