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구 시인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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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도와 간도
이어도 시인 황성구
남녘 바다 끝 신성한 영토 이어도여
너의 파도는 우리 피의 맹세요
너의 고요는 조국의 넋이로다
줄기 빛 한라에서 백두로 이어지고
하늘과 바다 산맥과 물길이 합쳐
하나의 노래로 겨레를 부른다
백두의 숨결이 하늘을 가르고
간도의 들꽃이 잃은 노래를 부른다
바람 따라 피는 겨레의 맥박이여
눈보라 속에서도 불빛은 꺼지지 않고
어둠 속에서도 혼은 굽히지 않으니
그 땅의 이름 결코 잊지 않으리라
대대손손 우리가 지켜야 할 땅
그 위에 서린 선조의 피와 눈물
이제는 우리 손으로 되찾으리
한라 이어도에서 백두로 백두에서 간도로
우리의 혼 우리의 뜻 하나로 뭉쳐
그날까지 영원히 나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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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도와 간도
― 바다와 민족의 혼을 잇는 시학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시인 화현 황성구는 한국 현대시에서 보기 드문 ‘영토 시인’으로 불릴 만하다.
그는 이번 제6회 이어도문학회 공모전에서 은상 수상을 할 정도로 기량을 갖추고 있는 중견 시인이다.
그의 시적 원류는 바다와 민족의 혼, 그리고 역사적 기억의 깊은 층위에 닿아 있다.
특히 '이어도와 간도'는 단순한 지리적 노래가 아니라, 조국의 영혼을 잇는 상징적 서사시이다. 그는 바다를 시적 언어의 고향으로 삼고, 이어도를 민족의 영적 좌표로 세운다. 화현 황성구의 시에서 이어도는 단지 남해의 수중 암초가 아니라, 겨레의 정체성과 자존의 원천이다.
첫 연의 “남녘 바다 끝 신성한 영토 이어도여”에서 시인은 지리적 공간을 신성한 ‘정신의 땅’으로 승화시킨다. ‘파도는 피의 맹세’ 요, ‘고요는 조국의 넋’이라는 표현은 시인의 세계관을 함축한다. 외적 확장보다 내적 귀속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는 이어도를 단순히 지켜야 할 영토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민족의 영혼이 머무는 자리’, ‘겨레의 혈맥이 다시 흐르는 근원’으로 인식된다. 이 점에서 황성구의 시는 국토시(國土詩)의 범주를 넘어선다. 그에게 이어도는 민족의 ‘무의식의 심연’이며, ‘하늘과 바다의 어름에 선 신성한 혼의 기점’이다.
이어지는 “한라에서 백두로”라는 구절은 단순한 남북의 지리적 연결이 아니라, 분단의 시대를 넘어선 정신적 통합의 염원을 상징한다. 한라의 줄기빛이 백두로 이어진다는 비유는 민족의 근원적 일체성을 선언하는 언어다.
그는 시 속에서 지리적 축을 ‘한라―백두―간도’로 확장하며, 이 땅의 잃어버린 기억과 상처를 시적 화폭에 담는다. “간도의 들꽃이 잃은 노래를 부른다”는 구절은 역사적 망각을 넘어, 기억의 복원을 향한 노래다. 황성구에게 있어 간도는 단지 잃어버린 땅이 아니라, 민족의 상처이자 반드시 되찾아야 할 정신의 고향이다.
그의 시에는 언제나 ‘겨레의 맥박’이 살아 있다. 바다와 산맥, 바람과 눈보라, 불빛과 혼 같은 이미지들은 단순한 자연의 표상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생명성을 압축한 상징들이다. 특히 “눈보라 속에서도 불빛은 꺼지지 않고 / 어둠 속에서도 혼은 굽히지 않으니”라는 대목은 시인의 생명관을 극명히 드러낸다. 그것은 절망의 시대를 건너온 민족의 저항정신이며, 시인이 평생 추구해 온 ‘불멸의 생명시학’이다.
황성구 시의 언어는 과장되지 않으나 장엄하고, 감정은 절제되어 있으나 뜨겁다. 그의 어휘는 단단한 돌처럼 묵직하고, 문장은 파도처럼 리듬을 품고 있다. 특히 이 시에서는 시적 운율이 ‘기도’의 형식으로 흐른다. 반복되는 “그 땅의 이름 결코 잊지 않으리라”와 “우리의 혼 우리의 뜻 하나로 뭉쳐” 같은 구절은 노래이자 맹세이며, 시인의 생애를 관통하는 정신적 좌표다. 그는 언어를 ‘의지의 도구’로, 시를 ‘역사의 불씨’로 삼았다.
시인 황성구의 삶은 곧 이어도의 파도와 닮았다. 조용하지만 강하고, 낮지만 깊다. 그는 바다를 노래하면서도 결코 바다의 낭만에 머물지 않는다. 바다는 그에게 역사의 상징이자 민족의 실존이다. 수많은 이들이 이어도를 관광의 이름으로 부르지만, 황성구는 그것을 ‘피와 혼의 기억’으로 기록했다. 이어도는 그의 시 안에서 신화로 승화되고, 신화는 다시 현실을 부르는 예언이 된다.
그의 시적 미의식은 ‘영토적 자존’과 ‘정신적 통합’으로 요약된다. 그는 시를 통해 국경을 초월한 민족의 영토를 세우고자 했다. 그 땅은 지도 위의 땅이 아니라, 인간의 양심과 기억 속의 땅이다.
하여, 그의 이어도 연작은 단순한 애국시가 아니라, ‘정신의 국토를 세우는 시학’이라 할 수 있다.
요컨대, '이어도와 간도'는 시인의 일생을 관통한 신념의 결정체다.
그는 이어도를 사랑했으되, 그것은 바다의 낭만이 아니라 민족의 혼이었다.
그는 간도를 노래했으되, 그것은 영토의 환원이 아니라 정체성의 회복이었다.
한라에서 백두로, 그리고 간도로 이어지는 그의 시선은
“민족의 혼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귀결된다.
그 답은 시인의 가슴속,
끝없이 푸른 이어도의 파도에 있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