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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시인 성재경의 '시계를 바꾸다'를 읽고 ㅡ청람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겨레시인 성재경 총재





시계를 바꾸다



겨레시인 성재경




선생님 어제오늘 하제
그런 시간들을 묶어 놓고 싶어서
6원 주고 새 회중시계 샀습니다만
이 시계는 몇 시간 뒤에는 쓸모없으니
2원짜리 낡은 시계와 바꾸어 주십시오

훙커우공원 누대에 올라 축배를 들던
침략의 선봉들이 폭탄에 쓰러지면
선생님의 낡은 시계는 멈추고
저의 새 시계는 상해 임시정부 품에서
살아있는 맥박처럼 힘 있게 뛸 것입니다

짧은 시간 안에 그들은 나를 죽일 테지만
비로소 뜨거운 독립항쟁이 시작되어
피 흘리는 전선 위대한 의거마다
저의 붉은 영혼 함께 싸우게 하십시오

오천 년의 시간 중에서 가장 어두운 시간
너무 길어져 포기하지 않도록
대한나라 사람들 깃발아래 뭉치고
강한 이웃 나라들을 끝없이 일깨워
머지않아 기다리던 광복이 오는 날

어디선가 저의 굳어버린 시체를 찾거들랑
차가운 손목에 그 시계 조여 채워서
따사로운 햇살이 온몸에 퍼지게 하십시오
제 영혼의 시계도 멈추지 않고
천만년 조국의 시간과 함께 가오리다







시간의 피를 돌리는 시, 불멸의 맥박
―겨레 시인 성재경의 '시계를 바꾸다'를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성재경 겨레 시인의 '시계를 바꾸다'는 윤봉길의 마지막 독백이자, 백범 김구와 나눈 시간의 유언이다.
이 시에서 ‘화자’는 윤봉길이며, 그는 임정의 좁은 방에서 백범의 시계를 앞에 두고 조용히 말한다. “이 낡은 시계를 제 새 시계와 바꿔주십시오.” 이 한마디는 단순한 청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의 주권을 다시 세우는 맹세이며, 피로 써 내려가는 독립의 선언이다.

첫 연의 “선생님 어제오늘 하제 / 그런 시간들을 묶어 놓고 싶어서 / 6원 주고 새 회중시계 샀습니다만…”
이 구절에서 시인은 윤봉길의 내면을 그려낸다. 화자는 백범의 손목에 있는 낡은 시계를 바라본다. 그 시계는 조국의 지난 시간, 일제의 억압 속에서도 꺼지지 않았던 민족의 맥박이다. 윤봉길은 그 시간을 물려받고자 한다. 새 시계를 내밀며 “바꾸어 주십시오”라 말하는 순간, 그는 단순히 시계를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바통을 이어받는다.

백범의 낡은 시계가 조국의 과거라면, 윤봉길의 새 시계는 조국의 미래다.
그는 그 시계를 차고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그 순간부터 ‘시간’은 더 이상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되돌려지는 것, 즉 민족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피의 순환이 된다.

“훙커우공원 누대에 올라 축배를 들던 / 침략의 선봉들이 폭탄에 쓰러지면 / 선생님의 낡은 시계는 멈추고 / 저의 새 시계는 상해 임시정부 품에서 / 살아있는 맥박처럼 힘 있게 뛸 것입니다.”

이 연은 시 전체의 중심이자, 시적 절정이다.
윤봉길은 자신의 목숨을 던져 조국의 시계를 다시 돌리고자 했다.
폭탄이 터지는 순간, 백범의 낡은 시계는 멈추고, 윤봉길의 새 시계가 대신 뛰기 시작한다.
이 ‘두 시계의 교차’는 시간의 끝이자 시작이며, 죽음의 정지와 영혼의 박동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성재경 시인은 이 장면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초월한 시간의 은유를 완성한다.
시계의 멈춤은 일제의 시간의 종말, 시계의 박동은 독립의 서막이다.
즉, 윤봉길의 죽음은 한 개인의 사멸이 아니라, 민족의 재탄생이다.

“짧은 시간 안에 그들은 나를 죽일 테지만 / 비로소 뜨거운 독립항쟁이 시작되어 / 피 흘리는 전선 위대한 의거마다 / 저의 붉은 영혼 함께 싸우게 하십시오.”

윤봉길은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죽음 이후에도 시간 속에 남는 존재로 자신을 인식한다.
육신의 시계가 멈추더라도, 영혼의 시계는 끊임없이 뛴다.
이 부분은 윤봉길의 희생정신을 넘어, ‘영원한 현재’를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시인을 드러낸다.
그의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계승의 통로이며, 피는 시간의 또 다른 이름으로 흐른다.

성재경 시인은 이 대목에서 윤봉길을 한 영웅으로 신격화하지 않는다.
외려 인간적인 고요함 속에서, 그가 선택한 죽음의 의미를 시간의 언어로 승화시킨다.

“오천 년의 시간 중에서 가장 어두운 시간 / 너무 길어져 포기하지 않도록 / 대한나라 사람들 깃발 아래 뭉치고…”

윤봉길의 영혼은 죽음을 넘어 민족 전체로 확장된다.
그가 바꾼 시계의 초침은 더 이상 개인의 맥박이 아니라, 조국의 심장소리다.
성재경 시인은 절망의 시간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라는 윤봉길의 목소리를 이 구절에 새겼다.
그는 죽음 속에서도 시간을 견디고, 어둠 속에서도 새벽을 기다린다.
그 기다림이 바로 독립의 정신, 그리고 시의 영원한 생명이다.

“어디선가 저의 굳어버린 시체를 찾거들랑 / 차가운 손목에 그 시계 조여 채워서 / 따사로운 햇살이 온몸에 퍼지게 하십시오 / 제 영혼의 시계도 멈추지 않고 / 천만년 조국의 시간과 함께 가오리다.”

이 마지막 연은 윤봉길의 유언이며, 시인의 기도문이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시계를 조국의 시간에 맞추어놓고 떠난다. 그의 손목에 채워진 시계는 더 이상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조국의 역사를 관통하는 불멸의 맥박이다.

성재경 시인은 이 대목에서 윤봉길의 내면을 완벽하게 구현한다.
차가운 육체 위에서도 초침은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민족의 피 속에서 계속 뛰고, 광복의 햇살 속에서 다시 빛난다.

'시계를 바꾸다'는 시계 하나를 매개로 한 영혼의 교환, 시간의 부활이다.
백범의 시계는 민족의 어제였고, 윤봉길의 시계는 오늘과 내일을 향한 맥박이었다.
시 속 화자 윤봉길은 그 시계를 통해 죽음 이후에도 조국의 시간 속에 존재하고자 한다.

성재경 시인은 이 시를 통해 단순히 역사적 감동을 전하지 않는다.
그는 시간의 윤리를 말한다 —
진정한 시간은 오래 사는 데 있지 않고, 한순간을 어떻게 불태우느냐에 있다.

오늘 우리 시대의 시계가 다시 멈춰 있다면,
그것은 윤봉길의 시계를 다시 바라보아야 할 시간이라는 뜻이다.

“당신의 시계는 지금, 어떤 조국의 시간 위에 서 있는가?”

그 물음은 단지 과거의 회상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도 우리의 가슴속에서 탁, 탁, 탁
끊임없이 울리는 역사의 초침 소리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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