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시인 허형만 교수
Poet Heo Hyung-man was born in 1945 in
Suncheon, Jeollanam-do, South Korea. He made his literary debut in 1973 through the literary magazine Wolgan Munhak (Monthly Literature). He has published 20 poetry collections, including Eyes of the Soul, Ecstasy, Wind Sword, and Encounter. His
works have also been published abroad, including the Chinese poetry collection J LL Wf and the Japanese poetry collection H.7s 3. He has received numerous literary honors, such as the Korean Poets Association Award, the Yeongrang Poetry Literature Award, the Pyeonun Literature Award, and the Gongcho Literature Award. He is currently an Emeritus Professor at Mokpo National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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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론
시인 허형만
사랑이란 생각의 분량이다. 출렁이되 넘치지 않는 생각의 바다. 눈부신 생각의 산맥. 슬플 때 한없이 깊어지는 생각의 우물. 행복할 땐 꽃잎처럼 전율하는 생각의 나무. 사랑이란 비어있는 영혼을 채우는 것이다. 오늘도 저물녘 창가에 앉아 새 별을 기다리는 사람아. 새 별이 반짝이면 조용히 꿈꾸는 사람아.
□ 번역
Theory of Love
Love is a great abundance of thought.
A sea of thought—surging, yet never overflowing.
A mountain range of dazzling thoughts.
A well of thought that deepens endlessly in times of sorrow.
A tree of thought that trembles like petals in moments of joy.
Love is what fills an empty soul.
O you who sit by the window at dusk, waiting for a new star to rise,
O you who quietly dream when that new star begins to s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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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사유하는 지성의 온도
― 허형만 시인의 '사랑론'을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허형만 시인의 '사랑론'은 감정의 폭발이 아닌 사유의 깊이로 빚어진 사랑의 철학시이다. 시인은 사랑을 단순히 감정의 언어로 말하지 않는다. 그는 사랑을 ‘생각의 분량’이라 정의함으로써, 감정의 열기를 이성의 맑은 빛으로 정제한다. 이 한 문장은 시 전체의 철학적 명제이자, 허형만 문학의 요약이다. 사랑이란 뜨거움 속에서도 절제된 사유로 존재해야 함을 일깨운다.
“출렁이되 넘치지 않는 생각의 바다.” 이 한 구절에 시인의 미학이 담겨 있다. 감정의 바다는 출렁이지만 넘치지 않는다. 그 절제 속에 품격이 있고, 그 고요 속에 진실이 있다. 사랑을 감정의 홍수로 보지 않고, 깊은 사색의 바다로 본다는 점에서 허형만의 시는 서정의 차원을 넘어 사유의 시학으로 나아간다.
“눈부신 생각의 산맥.” 사랑을 산맥에 비유한 표현은 사랑이 단일한 감정이 아니라, 여러 봉우리를 가진 복합적 구조임을 암시한다. 사랑의 고통과 기쁨, 기다림과 깨달음이 서로 맞닿아 있는 ‘지적 풍경’이다. 허형만의 언어는 산처럼 고요하지만, 그 내면에는 오랜 침묵의 울림이 있다.
“슬플 때 한없이 깊어지는 생각의 우물 / 행복할 땐 꽃잎처럼 전율하는 생각의 나무.”
이 대목은 사랑의 양면성을 가장 아름답게 드러낸다. 슬픔과 행복, 어둠과 빛의 감정이 모두 ‘생각’이라는 중심축 위에서 조화된다. 사랑은 우물처럼 깊고, 나무처럼 살아 있는 존재의 에너지다. 시인은 이 두 이미지를 통해 사랑을 ‘지속되는 생명’으로 해석한다.
“사랑이란 비어 있는 영혼을 채우는 것이다.” 이 구절은 허형만 시의 핵심 철학을 응축한다. 사랑은 결핍에서 시작된다. 그 결핍은 결함이 아니라 존재의 가능성이다. 비어 있기에 채울 수 있고, 채움은 곧 살아 있음의 증거다. 시인은 사랑을 인간 영혼의 순환으로 본다. 비움과 채움이 반복되는 그 과정이 바로 사랑의 본질이다.
마지막 구절, “오늘도 저물녘 창가에 앉아 새 별을 기다리는 사람아. 새 별이 반짝이면 조용히 꿈꾸는 사람아.”
이 장면은 사랑을 ‘기다림과 꿈’으로 승화시킨다. 시인은 별빛 아래서 기다리는 이의 고요한 모습을 통해, 사랑의 완성을 ‘시간의 명상’으로 제시한다. 사랑은 얻음이 아니라 기다림이며, 끝없는 사색의 여정이다.
허형만 시인의 '사랑론'이 특별한 이유는 그 문체의 품격에 있다. 시는 운문이지만, 산문의 호흡을 빌려 썼기에 사유의 결이 더 자연스럽다. 만약 연과 행을 엄격히 나눴다면, 감정의 흐름이 끊기고 철학적 여운이 사라졌을 것이다. 산문적 구성이 외려 시의 울림을 확장시킨 것이다.
허형만 시인의 시는 교단의 언어로 다듬어진 지성의 산물이다. 평생 대학 강단에서 문학을 가르친 그는, 삶을 가르치듯 언어를 다듬고, 언어를 가르치듯 사랑을 이야기했다. 그의 시에는 지식인의 따뜻한 품성과 교육자의 사색이 동시에 녹아 있다. 사랑을 가르치지 않고, 사랑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것이 그의 시가 지닌 교양의 품격이다.
그의 작품 '사랑론'은 한국을 넘어 세계의 관심을 끌었다. 파키스탄의 유력 일간지 '신드쿠리에(Sindh Courier)'에 번역·소개되면서, 시인의 철학적 언어는 국경을 넘어 울림을 전했다. 파키스탄의 언론인 나시르 아이자즈 편집장은 허형만의 시를 “동양적 사색과 인류애의 결합”이라 평했다. 그것은 사랑이 언어와 문화를 초월하는 보편적 가치임을 입증한 사건이었다.
허형만 시인의 사랑은 불타는 열정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견디는 지성의 온도다. 그의 시는 감정의 소모가 아니라, 삶을 이해하는 사유의 에너지다. 오늘 우리는 감정의 소비 속에 살지만, 그의 시는 묻는다.
“당신의 사랑은 생각하고 있는가?”
그 물음은 단단하고, 그러나 따뜻하다.
허형만 시인의 '사랑론'은 말한다.
사랑은 불타는 것이 아니라, 빛나는 것이다.
그 빛은 잠시 반짝이지 않는다.
긴 사색의 시간 속에서 숙성되어,
끝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지혜의 빛이 된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