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철학, 마음의 온도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거리의 철학, 마음의 온도


청람 김왕식


인간관계에서 가장 미묘하고도 어려운 것은 마음의 크기가 아니라 마음의 거리다. 크기는 재어볼 수 없지만, 거리는 느껴진다. 누군가와 너무 가까워지면 숨이 막히고, 너무 멀어지면 그리움이 바람처럼 스쳐간다. 결국 관계란 적당한 간격 속에서 비로소 숨을 쉴 수 있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공기의 층이 필요하다. 그 공기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를 순하게 숙성시킨다. 거리가 없으면 숨이 섞이고, 거리가 너무 멀면 온기가 닿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 안에 작은 방을 하나씩 가지고 산다. 그 방에 누군가를 초대할 때, 문을 활짝 열면 금세 지쳐버린다. 반대로 문을 닫아걸면 외로움이 쌓인다. 그래서 문을 반쯤 열어두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 반쯤 열린 마음이 바로 인간관계의 숨통이다. 너무 가까이 붙으면 상대의 체온이 내 온도를 덮어버린다. 그 순간부터 나는 내 마음의 색을 잃고, 상대의 그림자가 나를 잠식한다. 그것이 곧 정서적 소진의 시작이다.

거리가 멀면 오해가 자란다. 말이 닿지 않고, 시선이 빗나간다. 마음의 거리란 단순히 물리적 간격이 아니라, 정서의 파장이다. 그 파장이 서로 맞을 때 우리는 평안함을 느낀다. 상대가 조금만 멀어져도 마음의 주파수가 어긋나고, 불안이 깃든다. 그러나 그 불안은 사랑의 결핍이 아니라 관계의 자연스러운 숨결이다. 너무 자주 확인하려 들면 관계는 금세 지친다. 바람이 스쳐야 공기가 흐르듯, 사람 사이도 적당히 스쳐야 오래 간다.

사람의 마음은 빛과 그늘을 동시에 품는다. 가까이 있으면 상대의 그늘이 내게 드리운다. 처음엔 그 그늘이 편안한 안식처럼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햇볕을 가린다. 내 마음의 식물이 자라지 못한다. 반대로 너무 멀리 서 있으면, 햇볕은 강하지만 바람이 지나쳐 금세 메말라 버린다. 그래서 관계는 늘 조율의 예술이다. 가까이 가다가도 한 발 물러서고, 멀어지다가도 다시 다가서야 한다. 물러섬은 포기가 아니라 배려이고, 다가섬은 간섭이 아니라 이해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각자의 온도, 속도, 호흡이 있다. 이 차이를 존중하는 것이 관계의 첫 걸음이다. 마음의 거리란 ‘정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균형’을 배우는 일이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고요한 시간까지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침묵을 견디는 힘이 사랑의 또 다른 언어다. 침묵 속에서 자라난 이해는 말보다 오래 남는다.

결국 인간관계의 완성은 가까움이 아니라 ‘편안한 거리’다. 그 거리는 서로의 자유를 허락하고, 각자의 빛이 스스로를 비출 수 있도록 돕는다. 햇살이 너무 가까우면 눈이 멀고, 너무 멀면 얼어붙는다. 빛과 그늘의 경계에서 관계는 비로소 숨을 쉰다. 사람을 품으려 하지 말고, 함께 걷는 길 위의 간격을 지켜라. 그 거리가 바로 사랑의 온도이며, 존중의 길이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만 진정한 마음은 시들지 않는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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