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서랍 ㅡ 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바람은

잊히는 것이 아니라,


흩어져 다시 만나는

또 하나의

기억이다.”






바람의 서랍
ㅡ움직이는 것만이 비밀을 품는다.






바람은 서랍을 닫지 않는다.
늘 열려 있고, 늘 흐른다.
그 안에는 누군가의 웃음,
사라진 목소리, 아직 닿지 못한 편지들이 들어 있다.

사람들은 바람을 잡으려 하지만
잡히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바람이 아니다.
움직임이 멈추면 생명도 멈춘다.
바람은 늘 떠난다.
떠나는 일은 곧 다시 오는 일이다.

오래전에 흘려보낸 한숨 하나가
지금 누군가의 볼을 스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바람은 그렇게 세상을 연결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 말과 침묵 사이를 지나며
보이지 않는 감정을 옮겨 다닌다.

가끔은 어떤 냄새로, 어떤 온기로,
과거가 불현듯 되살아날 때가 있다.
그건 바람이 서랍을 열어준 순간이다.
닫혀 있던 기억이 조용히 일어나
“나 아직 여기에 있다”고 속삭인다.

서랍 속에는 늘 잊힌 것들이 있다.
잊혔다는 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다.
바람이 다시 열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뿐이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잊지 못해 괴로운 것이 아니라,
언젠가 다시 열릴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픈 것이다.

이제 서랍을 닫지 않으려 한다.
기억이 흩어져도 좋다.
그 흩어짐 속에서만 새 생명이 태어난다.
바람은 결코 비어 있지 않다.
그 안에는 우리가 흘린 모든 시간의 냄새가 담겨 있다.




—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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