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스며드는 시간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빛이 스며드는 시간




해가 지고 나면 세상은 잠시 멈춘 듯하다.
하루의 소음이 가라앉고, 모든 빛이 거둬진 자리에
조용한 어둠이 내려앉는다.
그 어둠 속에서 사람은 자신을 마주한다.
낮에는 보이지 않던 마음의 그림자가
천천히 드러나는 시간이다.

세상은 언제나 밝음을 찬미하지만,
삶의 진실은 오히려 어둠 속에서 빛난다.
햇살은 눈부셔 잠시만 머물지만,
그늘은 오래도록 마음을 감싸 안는다.
상처도 그렇다.
겉으로는 아프지만, 그 깊은 자리에서
빛은 천천히 자라난다.
어둠이 없었다면,
빛이 어디에서 오는지 우리는 몰랐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작은 불씨 하나를 품고 산다.
그 불씨는 때로 바람에 흔들리고,
때로 빗물에 젖어 꺼질 듯하지만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세상은 그 불빛이 꺼졌다고 말해도
영혼은 여전히 빛을 품고 있다.
그 불씨는 기다림의 다른 이름이다.

빛은 항상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 안에서 피어난다.
삶이 무겁게 느껴질 때,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흔들릴 때,
그 흔들림 속에서 스스로를 들여다보라.
바로 그곳에서 빛이 시작된다.
빛은 결코 빠르지 않다.
천천히, 아주 조용히,
삶의 틈새로 스며든다.

어둠은 나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쉼의 시간이다.
햇살 아래선 보이지 않던 별들이
밤하늘에서 제 빛을 드러내듯,
어둠은 마음의 별을 밝혀준다.
보이지 않는 동안,
삶은 자라고 있다.
씨앗이 흙 속에서 싹을 틔우듯,
사람의 영혼도 고요 속에서 빛을 익힌다.

세상은 늘 빠르게 흘러가지만
빛은 언제나 천천히 도착한다.
그 느림이 바로 생명의 리듬이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
삶이 잠시 멈춰 있는 듯 보여도
그건 쉬어가는 시간일 뿐이다.
나무가 겨울을 지나야 꽃을 피우듯,
사람도 어둠을 견뎌야 빛을 배운다.

햇살은 항상 완전하지 않다.
구름에 가려 흐려질 때도 있고,
비에 젖어 색을 잃을 때도 있다.
하지만 빛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다른 모양으로 세상을 감싼다.
우리가 흔히 ‘잃었다’고 말하는 순간,
빛은 우리 안에서 다른 얼굴로 숨 쉬고 있다.

살아간다는 건
그 빛을 다시 발견하는 일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한 걸음 더 걷는 것,
슬픔이 길을 막을 때에도
작은 숨을 놓지 않는 것,
그 모든 것이 빛을 향한 여정이다.

저녁이 깊어질수록,
하늘의 빛은 사라지는 듯하지만
그때부터 별이 피어난다.
그 별빛은 낮보다 더 멀리 닿는다.
삶도 그렇다.
가장 어두운 시간에,
가장 깊은 깨달음이 온다.

아침이 오면, 창문으로 다시 햇살이 들어온다.
그 빛은 어제보다 부드럽고,
조금 더 따뜻하다.
그 사이에 우리는 한 걸음 더 자라 있다.
세상은 어둠과 빛이 번갈아 찾아오는 교향곡,
그 두 가지가 함께 있어야
하루는 완성된다.

지금 마음이 어둡다면
그건 빛이 스며드는 시간이다.
어둠은 빛이 머무를 자리를 준비하는 손길이다.
조급해하지 말라.
빛은 늘 천천히,
그러나 반드시 우리에게 온다.

가장 고요한 밤이 지나야
새벽의 첫 빛이 깃든다.
그 빛은 언제나,
우리 안에서 피어난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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