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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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 잔의 고요
아침 햇살이 유리창에 닿는다.
부엌 한켠, 물이 조용히 끓는다.
김이 오르는 주전자를 바라보며
나는 잠시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저 소리를 듣는다.
물의 숨, 바람의 결,
그 사이로 흐르는 나의 마음.
차를 따르는 일은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이 하루를 맑게 만든다.
찻물이 잔에 닿을 때,
세상의 소음이 잠시 멈춘다.
그 순간만큼은 나 자신도 조용해진다.
차는 단지 마시는 음료가 아니라,
하루를 가다듬는 의식이다.
한 모금의 따뜻함이
혀끝을 지나 가슴으로 스며든다.
그 부드러운 온도 속에서
나는 마음의 결을 느낀다.
차는 말이 없지만
그 침묵으로 마음을 어루만진다.
“괜찮다.”
차는 늘 같은 온도로 말한다.
사람은 종종 큰 깨달음을 먼 곳에서 찾으려 한다.
하지만 마음의 평화는
이처럼 작은 행위 안에 있다.
물을 끓이고, 차를 우려내고,
따뜻한 김을 바라보는 동안
삶의 속도가 천천히 늦춰진다.
그 느림 속에서 마음은 맑아진다.
세상은 늘 서두른다.
해야 할 일, 만나야 할 사람,
잊지 말아야 할 약속들.
차 한 잔의 시간은
그 모든 ‘해야 함’에서 벗어나
‘있음’으로 돌아가게 한다.
차를 마시는 동안
나는 아무것도 이루지 않지만,
그 시간이 나를 이루게 한다.
찻잔은 비워야 향이 머문다.
마음도 그렇다.
무엇으로 가득 차 있으면
새로운 바람이 들어올 틈이 없다.
차를 마시며 비우는 일은
단지 잔을 비우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비우는 연습이다.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고,
멈춰야 다시 걸을 수 있다.
차의 향은 금세 사라진다.
그 여운은 오래 남는다.
마음의 평화도 그렇다.
잠시 머물다 사라지지만,
그 흔적이 하루를 부드럽게 감싼다.
그 여운 하나로 우리는 버틴다.
차를 마시며 나는 생각한다.
이 잔이 비워질 때마다
하루가 조금 더 단단해진다고.
그건 결심이 아니라 습관이고,
수행이 아니라 삶 그 자체다.
평화는 멀리 있지 않다.
그건 늘 손이 닿는 곳에 있다.
차를 마시는 동안은
누구도 미워할 수 없다.
마음이 따뜻한 온도로 식어가고,
모든 감정이 하나의 숨으로 녹는다.
그 잠시의 고요 속에서
사람은 자신을 회복한다.
그게 수행의 시작이다.
차 한 잔을 다 마시고 나면
잔의 바닥이 보인다.
그 맑은 바닥에
어쩐지 내 마음이 비친다.
차는 이미 식었지만
그 고요는 여전히 따뜻하다.
삶이란 결국
이 한 잔의 차처럼
조용히 식어가면서 향을 남기는 일일지도 모른다.
차는 말이 없다.
그 침묵 속에서
마음은 자신을 들여다본다.
고요는 늘, 이렇게 시작된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