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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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쁨이라는 착각
요즘 사람들은 늘 바쁘다.
스스로도 쉼 없이 바쁘다고 말하며,
주변에서도 “그렇게 열심히 사니 멋지다”라며 격려한다.
이상하게도 그 바쁨 속에는 생기가 없다.
몸은 움직이는데 마음은 멈춰 있고,
많이 일하는데도 아무것도 이룬 것 같지 않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가 살기 위해 바쁜 것이 아니라,
바쁨 속에서 자신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바쁨은 현대 사회가 가장 교묘하게 만들어낸 착각이다.
무언가 하고 있으면 존재하는 것 같고,
움직이고 있으면 살아 있는 것 같지만
그건 단지 ‘멈춤이 두려운 마음’의 다른 얼굴일 뿐이다.
조용한 시간을 견디지 못해
의미 없는 일로 자신을 채우고,
텅 빈 마음을 바쁜 일정으로 덮는다.
그러나 ‘가득 찬 하루’와 ‘가치 있는 하루’는 다르다.
바쁘다는 말은 때로 생각하지 않겠다는 변명이 된다.
진짜 성실함은 바쁨의 양이 아니라
집중의 깊이에서 드러난다.
하루를 열 가지로 쪼개는 사람보다
하나의 일을 온전히 해내는 사람이 훨씬 단단하다.
바쁨은 방향을 잃은 에너지일 뿐이다.
“왜 바쁜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면
그 바쁨은 언젠가 우리를 소진시킨다.
진짜 일하는 사람은 바빠도 허둥대지 않는다.
그의 시간은 흐르되 흩어지지 않는다.
바쁜 사람일수록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달리면서 거울을 볼 수 없듯이,
바쁨 속의 인간은 자신의 얼굴을 잃는다.
잠시 멈추어 서면
그동안 놓쳤던 것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한다.
햇살이 창가에 머무는 시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들리는 빗소리,
오랜 친구의 안부 한마디.
삶의 진짜 온기는 늘 ‘틈’ 속에 있다.
멈춤은 게으름이 아니라 존재를 회복하는 시간이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나는 지금 너무 바빠서 꿈꿀 시간이 없다.”
사실은 거꾸로다.
꿈이 없기 때문에 바쁜 것이다.
목표가 분명한 사람은 선택이 단순하다.
그는 모든 걸 다 하지 않는다.
불필요한 일에 시간을 쏟지 않는다.
그에게 바쁨은 선택이 아니라 절제다.
시간을 잘 쓰는 사람은 일의 양보다 의미를 본다.
그는 묻는다. “이 일이 내 삶을 빛나게 하는가?”
그 물음이 바로 바쁨을 다스리는 지혜다.
바쁨의 시대일수록 텅 빈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은 낭비가 아니라 회복이다.
휴식이 없는 바쁨은 생산이 아니라 소모다.
기계도 쉬어야 오래가듯,
인간의 마음도 고요해야 다시 흐른다.
어떤 이는 쉼을 사치라 여기지만,
진짜 사치는 ‘멈출 수 없게 된 삶’이다.
고요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잊어버린 것일 뿐이다.
바쁘게 산다는 건 결국 ‘살아 있음’의 증거가 아니라,
‘살아 있음이 불안한 마음의 신호’ 일 때가 많다.
누군가가 “요즘 어때요?”라고 물었을 때
“바빠요.”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오는 순간,
그건 이미 마음이 고단하다는 뜻이다.
우리는 종종 할 일보다
해야 한다고 느끼는 의무에 매여 산다.
그러나 인생은 해야 할 일의 목록이 아니라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의 흔적이어야 한다.
삶의 속도를 늦추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바람이 나뭇잎을 스칠 때 나는 소리,
하늘이 저녁으로 물드는 시간,
그 모든 것이 내 삶의 일부임을 깨닫는다.
그때 비로소 알게 된다.
바쁨이 우리를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멈춤이 우리를 깊게 만든다는 사실을.
속도를 줄일 때 삶은 깊어지고,
깊어진 삶은 다시 세상을 밝힌다.
이제 ‘바쁘다’는 말을 조금 줄여보자.
그 대신 ‘충만하다’는 말을 늘려보자.
바쁨은 외부의 시간이고,
충만은 마음의 시간이다.
마음이 평화로운 사람은
아무리 많은 일을 해도 피로하지 않다.
그의 시간은 바쁘지 않아도 빛난다.
그 빛은 고요 속에서 자라난다.
삶은 달리기 경주가 아니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고,
결과보다 과정이 아름답다.
우리는 지금 ‘얼마나 바쁜가’로 평가받지만,
언젠가 세상은 묻는다.
“그 바쁨 속에서, 당신은 행복했는가?”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