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청강 허태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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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광등과 거미줄
시인 청강 허태기
터널 귀퉁이
길 밝히는 형광등 주위로
보일 듯 말 듯
쳐져 있는 거미줄
날벌레가 잡혀있다
어둠 밝히는 형광등
사로잡힌 날벌레
찬란한 불빛에 끄달려
길 아닌 길에서
생명을 잃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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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기 시인의 시 '형광등과 거미줄'을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허태기 시인의 〈형광등과 거미줄〉은 짧은 시 속에 현대인의 삶과 존재의 아이러니를 응축한 작품이다.
시인은 터널 귀퉁이의 사소한 장면을 통하여, 문명과 생명, 빛과 어둠의 역설적 관계를 통찰한다. 그에게 형광등은 단순한 조명기구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이성의 빛’이며, 거미줄은 그 빛이 만들어낸 ‘덫’이다.
“형광등 주위로 / 보일 듯 말 듯 쳐져 있는 거미줄”이라는 구절에서 시인은 인간 문명의 맹점을 드러낸다. 밝히기 위해 켜둔 불빛이 오히려 생명을 옭아매는 역설, 그것이 이 시의 중심 사유다. 형광등은 터널을 밝히지만, 동시에 어둠 속 생명에게 죽음의 유혹이 된다. 찬란한 불빛은 안전과 편리의 상징이지만, 그 속으로 뛰어든 날벌레는 생을 잃는다. 빛은 구원의 이름을 걸고 등장하지만, 그 빛에 끌린 존재는 오히려 파멸로 이끌린다. 시인은 이 장면을 통해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의 빛이 얼마나 많은 생명을 희생시키며 존재하는가를 묻는다.
시인 허태기 시의 미의식은 단순한 묘사 속에 도덕적 성찰을 숨기는 절제의 미학에 있다. 그는 교훈을 설파하지 않는다. 다만 터널의 한 귀퉁이, ‘보일 듯 말 듯’한 거미줄 하나를 통해 인간의 삶을 비춘다. 그 절제된 언어 속에서 독자는 스스로 깨닫게 된다. 시인은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며 인공의 빛에 집착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날벌레의 운명 속에서 읽어낸다.
형광등은 문명의 상징이요, 동시에 인간의 자만을 비추는 거울이다. 시인은 그것을 어둠 속의 윤리로 전환시킨다. 빛은 더 이상 절대 선이 아니다. 거미줄은 어둠이 만든 함정이 아니라, 빛이 불러온 덫이다. 결국 날벌레의 죽음은 인간의 자화상이며, ‘길 아닌 길’은 문명 속에서 방향을 잃은 현대인의 삶이다.
허태기 시인의 시 세계는 언제나 작은 사물 속에서 인간의 근원을 묻는다. 그는 세상을 꾸짖지 않고, 그저 조용히 ‘밝힘’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형광등과 거미줄〉은 짧지만, 한 줄 한 줄이 삶의 경계에 선 이들을 향한 묵언의 경책이다. 빛에 끌리되, 그 빛에 사로잡히지 말라는 시인의 낮은 음성. 그것이 허태기 시가 지닌 윤리이자 미학이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