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나무에게 배운다
나무는 말이 없다.
그 침묵은 세상의 어떤 교훈보다 깊다.
나무는 가르치려 하지 않지만,
곁에 서 있기만 해도 사람의 마음을 가르친다.
그 뿌리의 묵묵함, 줄기의 단단함,
그리고 바람을 견디는 잎의 떨림 속에
삶의 모든 이치가 숨어 있다.
나무는 서두르지 않는다.
봄이 오면 잎을 틔우고,
가을이 되면 조용히 내려놓는다.
그 순환은 계산이 없고, 후회도 없다.
필 때는 피고, 질 때는 진다.
그 단순한 진리를 배우지 못해
사람은 평생을 허둥댄다.
나무는 오늘을 살 뿐인데,
사람은 늘 내일의 걱정 속에 산다.
그래서 나무는 평화롭고,
사람은 늘 불안하다.
바람이 불면
나무는 몸을 맡긴다.
휘어지되 꺾이지 않는다.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바람에 맞서 싸우지 않고,
그 힘을 흘려보내며 견딘다.
나무의 강인함은 단단함이 아니라 유연함이다.
그 유연함이 뿌리를 지키고,
결국은 다시 곧게 선다.
삶도 그렇다.
부러지지 않기 위해선
휘어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무는 한자리에 서 있지만
그 마음은 어디에도 갇히지 않는다.
그늘을 만들어주는 일,
새들의 집이 되어주는 일,
스쳐 가는 바람에게 길을 내주는 일 —
모든 것을 주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다.
그것이 나무의 품격이다.
나무는 빛을 독차지하지 않는다.
햇살이 닿는 만큼만 머금고,
남은 빛을 아래로 흘려보낸다.
그 배려 속에서 숲이 자란다.
나무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시간이 대신 증언한다.
세월이 지나면 나이테가 남고,
그 안에 계절의 숨결이 새겨진다.
상처가 깊을수록
그 나이테는 더 선명하다.
상처는 나무에게 흉터가 아니라
시간의 문장이다.
사람도 그렇다.
아픈 기억이야말로
자신의 삶을 증명하는 가장 진한 흔적이다.
비가 오면
나무는 젖는다.
그 젖음은 두려움이 아니다.
그건 생의 한 과정일 뿐이다.
비를 맞으며 더 단단해지고,
햇살 속에서 더 깊이 숨 쉰다.
나무는 자신에게 주어진 날씨를 탓하지 않는다.
가뭄이 와도, 폭풍이 몰아쳐도,
그 자리를 지킨다.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을 견디는 존재.
그게 나무다.
나무는 서 있는 것으로
이미 하나의 기도가 된다.
그 침묵은 단순한 정지가 아니라,
깊은 호흡이다.
그 호흡 속에는
‘존재한다’는 순수한 뜻이 담겨 있다.
사람은 말로 자신을 증명하려 하지만,
나무는 존재 자체로 증명한다.
그 묵묵한 생의 자세는
사람에게 잊힌 덕목을 일깨운다.
삶은 종종
뿌리를 내릴 수 없는 땅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나무는 돌틈에서도 자란다.
흙 한 줌 없는 절벽에서도
빛을 향해 몸을 뻗는다.
그 끈질김이 생명이다.
우리가 배워야 할 건 바로 그것이다.
조건이 아니라 의지로 서는 힘.
환경이 아니라 마음으로 자라는 법.
나무는 늘 위를 바라보지만,
그 발끝은 땅속 깊은 어둠을 향한다.
빛을 그리워하면서도
자신의 근원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하늘을 닮고,
동시에 땅을 닮는다.
사람 또한 그렇게 살아야 한다.
빛을 향하되,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는 마음으로.
나무는 묻지 않는다.
그저 서 있을 뿐이다.
그 고요한 존재 하나가
세상을 맑게 만든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