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 나무다리에 앉은 햇살 한 조각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영주 무섬 외나무다리







외딴 나무다리에 앉은 햇살 한 조각





들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개울을 건너는 나무다리가 놓여 있었다.
시간에 닳아 결이 드러난 나무판은
아침 햇살을 받아
은은한 빛결로 반짝였고
그 위에 앉은 햇살 한 조각은
말없이 사람의 마음을 붙들어 세웠다.

나무다리는 넓지 않았다.
사람 두엇이 지나가면 발자국이 겹칠 만큼
아담하고 소박한 다리였지만
그 위에는 많은 날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비가 새겨 놓은 깊은 홈,
여름 태양이 남긴 마른 흔적,
바람이 깎아낸 잔금들이
나뭇결마다 조용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다리 아래 물은
어린 목소리로 흐르며
돌과 돌 사이를 어루만졌다.
물살은 세차지 않았고
느릿한 흐름 속에서
삶의 단단함과 온순함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그 물결을 들여다보는 마음은
언제나 조금은 가벼워졌다.

아침 바람이
다리 위 나무판을 지나갈 때
나무는 낮은 탄식을 토한 듯한
부드러운 울음을 냈다.
그 울음은
어제의 흔들림도,
오늘의 걱정도
조용히 받아들여
다리 아래 깊숙한 곳으로 흘려보냈다.

멀리서 들려오는 종달새의 노래가
나무다리 위에 내려앉으면
다리는 잠시 따뜻한 떨림으로 응답했다.
사람이 지나지 않아도
자연은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바람과 햇살, 물결과 노래가
나무다리에 앉은 작은 생처럼
서로 어깨를 기대고 살고 있었다.

때때로 홀로 길을 걷다
이 나무다리에 다다르면
누군가는 가만히 앉았다가
한숨 한 번 길게 내쉬고 떠났다.
그 한숨이 다리에 스며들어
나뭇결을 조금 더 깊게 만들었다.
슬픔조차 나무는
부드럽게 받아내는 품성을 지니고 있었다.

햇살 한 조각이
다리 한가운데 앉아 반짝일 때면
이 작은 다리는
세상의 번잡함과 먼 삶을
순식간에 멀리 밀어냈다.
그 한 조각의 빛만으로도
사람은 마음을 다시 고르게 세웠다.

외딴 나무다리는
누구를 기다리는 것도,
누구를 불러 세우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 자리에서
흘러가는 물소리와 바람결을 품어
사람의 걸음을 부드럽게 받쳐주는
작은 쉼의 다리였다.

나무다리에 앉은 햇살 한 조각은
작은 빛처럼 보였으나
한 사람의 하루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은근한 힘이었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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