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 <위로>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위로



윤동주




거미란 놈이 흉한 심보로 병원 뒤뜰
난간과 꽃밭 사이 사람 발이 잘 닿지 않은 곳에 그물을 쳐 놓았다.
옥외 요양을 받는 젊은 사나이가 누워서 쳐다보기 바르게-

나비가 한 마리 꽃밭에 날아들다
그물에 걸리었다. 노-란 날개를 파득거려도 나비는 자꾸 감기우기만 한다.
거가 쏜살같이 가더니 끝없는 실을 뽑아 나비의 온몸을 감아버린다. 사나이는 긴 한숨을 쉬었다

나이보담 무수한 고생 끝에 때를 잃고 병을 얻은 이 사나이를 위로할 말이- 거미줄을 헝클어 버리는 것밖에는 위로의 말이 없었다






■ 청람 시평

윤동주 시 <위로>

― 말이 닿지 않는 자리에서, 위로는 손이 된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윤동주의 <위로>는 위로에 관한 시이되, 위로의 불가능성을 먼저 고백하는 작품이다. 이 시에서 위로는 감정의 언어가 아니라 행동의 윤리로 제시된다. 시인은 병원 뒤뜰이라는 공간을 택한다. 병원은 치유의 장소이지만, 동시에 말이 무력해지는 장소다. 그곳에서 거미는 사람의 발이 닿지 않는 틈을 정확히 알고 그물을 친다. 고통은 늘 가장 취약한 자리를 노린다.

시의 시선은 누워 있는 젊은 사나이에게 고정되어 있다. 그는 ‘옥외 요양’을 받는 몸이다. 움직일 수 없고, 개입할 수 없다. 다만 바라볼 뿐이다. 그 앞에서 나비 한 마리가 그물에 걸린다. 노란 날개는 생의 색채이자 무력한 아름다움이다. 파득거림은 저항이지만, 그 저항은 곧 더 깊은 포획으로 이어진다. 윤동주는 이 장면을 과장하지 않는다. 거미는 ‘흉한 심보’로 등장하지만, 악마화되지 않는다. 외려 냉정하고 효율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고통은 잔인해서가 아니라, 무심해서 무섭다.

중요한 것은 사나이의 반응이다. 그는 외친다거나 울부짖지 않는다. “긴 한숨”을 쉰다. 이 한숨은 언어 이전의 반응이다. 말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자각에서 나오는 숨이다. 여기서 시는 결정적인 문장에 도달한다.
“이 사나이를 위로할 말이— 거미줄을 헝클어 버리는 것밖에는 위로의 말이 없었다.”

윤동주는 ‘위로의 말’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도, 그것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치환한다. 말은 외려 공허하다. 이 시에서 참된 위로는 설명도, 공감의 문장도 아니다. 얽힌 구조를 끊어내는 손의 개입이다. 거미줄을 헝클어 버리는 행위는 질서를 파괴하는 일이며, 그래서 위험하다. 그러나 윤동주는 그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위로를 위로로 인정하지 않는다.

<위로>는 윤동주의 시 가운데 가장 윤리적인 작품 중 하나다. 이 시는 묻는다. 말로 위로한다고 할 때,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가. 고통을 바라보며 한숨만 쉬는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손을 내밀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윤동주는 조용히 답한다. 위로는 아니라, 구조를 흔드는 용기라고.




■ 오산학교 제자 달삼과 문예교사 청람의 대화

― 달삼과 청람, “왜 그는 말을 하지 않았을까요?”






달삼은 시를 읽고 잠시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
이 시는 이상해요.
‘위로’라는 제목인데,
위로하는 말이 하나도 없어요.”

청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 시가 진짜 위로다, 달삼아.”

달삼이 눈을 들었다.

“말이 없는데 어떻게 위로가 되죠?”

청람은 병원 뒤뜰을 가리키듯 손짓했다.

“윤동주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어떤 고통 앞에서는 말이 외려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달삼은 나비가 그물에 걸리는 대목을 다시 읽었다.

“나비가 파득거릴수록 더 감기잖아요.
도와주려는 말도 그런 걸까요?”

“그렇다.
잘못된 말은
움직임을 방해하고,
체념을 강요한다.”

달삼은 물었다.

“그럼 사나이는 왜 거미줄을 직접 끊지 않았을까요?”

청람은 조용히 답했다.

“그는 누워 있는 몸이다.
이 시의 슬픔은
도울 마음은 있으나
몸이 닿지 않는 상태다.”

“그래서 한숨만 쉬는군요…”

“그 한숨은 비겁함이 아니다.
자기 한계를 정확히 아는 숨이다.”

달삼은 마지막 문장을 읽었다.

“‘거미줄을 헝클어 버리는 것밖에는…’
이게 왜 ‘말’이죠?”

청람은 미소를 지었다.

“윤동주는 행동을
가장 정직한 언어로 보았다.”

“그러니까,
손이 말보다 먼저 나가는 거군요.”

“그래.
말은 설명하지만,
손은 바꾼다.”

달삼은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

“선생님,
그럼 우리는 언제 위로할 수 있나요?”

청람은 천천히 답했다.

“내가 위험해질 각오를 할 때다.
질서를 헝클 각오,
관계가 흔들릴 각오.”

달삼은 고개를 끄덕였다.

“위로는 예쁜 말이 아니라
용기군요.”

청람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윤동주는 그렇게
위로를 다시 정의했다.
말하지 않아도,
손이 먼저 가는 것—
그게 위로다.”


ㅡ청람


작가의 이전글윤동주 시 '병원'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