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 '병원' ㅡ 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병원



윤동주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에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金盞花)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이곳 ㅡ 병원




사실 윤동주의 첫 시집이자 유고 시집이 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원제는 이 시 제목처럼 '병원'이었다고 한다
윤동주의 사후에 고이 보관해 왔던 시들을 모아 세상에 내놓은 지 인 정병욱은 당시의 그의 말을 이렇게 회상했다고 하지만 무슨 연유에서인지 후에 시집의 제목은 우리가 익히 아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되어 출간되었다.





■ 청람 시평


윤동주의 시 <병원>
병이 없다는 진단, 그러나 병으로 가득 찬 세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윤동주의 <병원>은 아픈 몸을 다룬 시가 아니다.
이 시는 병이 ‘진단되지 않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존재의 고독을 그린 작품이다.
그래서 이 시는 윤동주의 시 가운데 가장 조용하면서도, 가장 깊은 절망을 품고 있다.

시의 첫 장면은 병원 뒤뜰이다.
살구나무 그늘, 흰 옷, 젊은 여자의 하얀 다리, 일광욕.
모든 것은 평온해 보이지만, 그 평온은 기이할 만큼 공허하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아무도 이 여자를 찾아오지 않는다.
나비 한 마리조차 없다.
자연마저 이 고통에 반응하지 않는 세계,
그것이 윤동주가 바라본 병원의 풍경이다.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바람은 윤동주 시에서 늘 윤리와 시대의 감각을 상징했다.
그 바람이 멈췄다는 것은,
이 병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 전체가 감각을 잃은 상태임을 암시한다.

화자는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가 병원에 온다.
그러나 늙은 의사는 말한다.
“병이 없다.”
이 장면은 이 시의 핵심이다.
윤동주의 병은 체온이나 수치로 드러나는 병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존재의 피로, 윤리의 과로다.
그래서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이 문장은 세대의 단절이자,
역사 인식의 단절을 동시에 말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기에는 분노보다 더 깊은 체념이 있다.
윤동주는 분노를 선택하지 않는다.
그는 분노마저 시대가 요구한 침묵의 일부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반부에서 여자는 금잔화를 가슴에 꽂고 병실로 사라진다.
금잔화는 회복과 치유의 상징이지만,
그 치유는 개인의 영역에만 머문다.
화자는 그 여자의 건강을 빌면서,
“아니 내 건강도”라고 덧붙인다.
이 짧은 전환은,
자신의 병이 여자의 병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그는 결국 여자가 누웠던 자리에 눕는다.
이 장면은 윤동주 시 세계에서 매우 중요하다.
병원은 치료의 공간이 아니라,
서로의 고통을 잠시 대신 눕혀보는 자리가 된다.

그래서 이 시가,
윤동주의 유고 시집의 원래 제목이 ‘병원’이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윤동주는 자신의 모든 시를
하나의 병실에 눕혀두고 싶었던 것이다.
이 시대를 아프게 통과한 젊은 영혼의 기록으로서.





오산학교 제자 달삼과 청람의 대화

― 달삼과 청람, “왜 그의 시집 제목은 ‘병원’이었을까”





달삼은 시를 다 읽고 나서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이 시를 읽으니까
윤동주는 정말 아픈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의사는 왜 병이 없다고 했을까요?”

청람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달삼아,
윤동주의 병은 시대가 진단할 수 없는 병이었다.
그래서 의사는 모른다.
늙은 의사일수록 더더욱.”

“그럼 이 병은… 마음의 병인가요?”

“그보다 깊다.
이건 존재의 병이다.
자기 시대를 너무 또렷하게 느낀 사람만이 앓는 병이지.”

달삼은 고개를 들어 물었다.

“그래서 이 시 제목이 ‘병원’이고,
원래 시집 제목도 ‘병원’이었나요?”

청람의 눈빛이 잠시 깊어졌다.

“그래.
윤동주는 자기 시들을
‘치유된 언어’로 내놓고 싶지 않았다.
아직 아픈 상태 그대로
세상에 남기고 싶었던 거다.”

"선생님, 제가 듣기에

윤동주의 유고시집 제목이 원래 '병원'이었는데
왜 제목이 바뀌었을까요?”

“정병욱은 알고 있었겠지.

윤동주의 시가 너무 아파서
사람들이 바로 들어오기 어려울 거라는 걸.”

달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되었군요.
조금 더… 밝게 보이니까요.”

청람은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기억해라, 달삼아.
그 하늘과 바람과 별은
모두 병실 창문으로 보이던 풍경이다.”

달삼은 다시 시를 펼쳐 보며 말했다.

“선생님,
이 시에서 제일 슬픈 건
아무도 그 여자를 찾아오지 않는 장면인 것 같아요.”

청람은 낮게 대답했다.

“그건 곧 윤동주의 모습이기도 하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지만,
그는 끝까지 기다린다.
누군가 자신의 병을 알아봐 주기를.”

달삼은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말했다.

“그 여자가 누웠던 자리에
윤동주가 누워 본다는 게…
마치 자기 시들을 눕히는 것 같아요.”

청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하다.
윤동주는 자기 시를
치유가 끝난 언어로 남기지 않았다.
아픈 그대로,
이 시대의 병상에 눕혀 두었다.”

달삼은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그럼 윤동주의 시를 읽는 우리는
병문안을 온 사람들인가요?”

청람은 잠시 웃으며 답했다.

“그래.
그리고 그 병문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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