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 이름으로 남은 한 사람의 조국 ㅡ청람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육사, 이름으로 남은 한 사람의 조국




청람 김왕식



1904년 5월 18일
경북의 한 마을에서
한 아이가 태어난다

그의 이름은 아직 시가 아니고
번호도 아니며
다만 숨 쉬는 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시대는
그에게 이름 대신
쇠 붙은 숫자를 먼저 건넨다

감옥의 차가운 바닥
기록지에 찍힌 수인번호
264
그 숫자가
훗날 그의 이름이 된다

이육사
이름이 아니라
저항의 형식이었다

그는 총을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언어는
언제나 겨눠져 있었다

굴복을 향하지 않고
침묵을 향하지도 않고
오직
짓밟힌 땅과
부서진 인간의 존엄을 향해
곧게 서 있었다

감옥은
그를 가두지 못했다
쇠창살은
그의 사유를 막지 못했다
그곳에서 그는 배웠다

사람은
자유를 빼앗길 수는 있어도
의지를 빼앗길 수는 없다는 것을

그의 시는
꽃을 노래하지 않았다
먼저
돌과 바람과 황야를 불렀다

“광야”는 풍경이 아니었다
그것은
민족이 서 있던 자리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는
노출된 삶의 현장이었다

바람은 불었고
눈은 내렸으며
길은 끝없이 멀었다

그러나 그는
길을 묻지 않았다
이미
걸어야 할 방향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절정”에서 그는
고통을 숨기지 않았다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다

외려
고통을 견디는 인간의
가장 단단한 순간을
정면으로 세웠다

그에게 절정은
환희가 아니라
끝까지 무너지지 않는
자세였다

1944년 1월 16일
그는 베이징의 차가운 감옥에서
숨을 거둔다

39세.
그러나 그 나이는
그의 생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는
너무 일찍 죽은 시인이 아니라
이미
한 시대를 끝까지 산
사람이었다

그의 몸은 사라졌으나
그의 문장은
지워지지 않았다

억압의 시대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
1월 16일
우리는 다시
그의 이름을 부른다

이육사.
그 이름은
과거형이 아니다

그 이름은
지금도
비굴해지지 말라는
현재형의 명령이다

그는
나라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나라가 다시
사람의 얼굴을 갖게 하려 했다

그의 시는
애국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끝없는 신뢰였다

오늘도
어디선가
광야는 이어지고
바람은 거세다

그러나
그가 남긴 문장 하나가
여전히
우리 등을 떠민다


쓰러지지 말라고
끝까지 서 있으라고
이름을 지우지 말라고

이육사
그는
죽은 시인이 아니라
지금도
시가 되어
우리를
살게 한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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