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 《끝까지 서 있는 문장》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끝까지 서 있는 문장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육사의 생애와 작품을 말할 때,

우리는 흔히 ‘저항 시인’이라는 규정부터 꺼낸다.
하나, 이 규정은 정확하면서도 불충분하다. 그의 시와 삶은 저항이라는 단어가 감당하기에는 훨씬 더 깊고 단단한 윤리의 결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육사는 무엇에 맞섰는가 이전에, 어떻게 서 있었는가를 먼저 묻게 하는 시인이었다.

그의 삶은 이름보다 먼저 번호로 불렸다.

감옥의 기록지에 찍힌 숫자는 단순한 행정 표식이 아니라, 한 인간을 익명화하려는 시대의 폭력이었다. 역설적으로 그 숫자는 그의 이름이 되었고, 이름이 된 순간부터 그것은 지워지지 않는 증언이 되었다.

이육사는 그 번호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시로 바꾸었고, 존재의 자세로 바꾸었다. 억압은 인간을 작게 만들기 위해 숫자를 붙이지만, 그는 그 숫자를 들어 올려 한 시대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광야와 바람, 눈과 돌은 자연의 풍경이 아니다. 그것들은 모두 노출된 삶의 상태를 가리키는 은유다. 보호받지 못한 자리, 기대지 못한 조건, 스스로 서지 않으면 안 되는 공간이 바로 그의 광야였다. 이육사에게 광야는 절망의 배경이 아니라,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서야 하는 시험장이었다.
하여, 그의 시에는 위로보다 긴장이 먼저 흐른다. 안온한 감상은 없고, 대신 끝까지 무너지지 않으려는 의지가 문장 속에 곧게 박혀 있다.

《절정》에서 드러나는 태도는 특히 그렇다. 절정은 환희의 순간이 아니라, 고통이 가장 극심한 지점에서 자세를 유지하는 인간의 상태다. 그는 고통을 과장하지도, 숨기지도 않는다. 다만 그것을 견디는 인간의 존엄을 조용히 세운다. 여기서 이육사의 미학은 비극을 장식하지 않는 데 있다. 그는 슬픔을 울음으로 풀지 않고, 침묵으로 단단히 묶는다. 그 침묵은 체념이 아니라, 끝내 흔들리지 않겠다는 결의에 가깝다.

그의 언어는 화려하지 않다. 외려 건조하고 직선적이다. 그 직선성은 단순함이 아니라 윤리의 형태다. 우회하지 않는 문장, 물러서지 않는 이미지, 쉽게 감동을 요구하지 않는 태도. 이는 시를 통해 시대를 설득하려 하지 않고, 스스로를 먼저 시험대에 올려놓는 자세에서 비롯된다. 이육사는 독자에게 감정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 어떤 자세로 이 문장을 읽고 있는지를 묻게 한다.

1944년 1월 16일, 그는 차가운 감옥에서 생을 마쳤다. 그의 죽음은 종결이 아니다. 그의 시가 여전히 현재형으로 읽히는 이유는, 그가 남긴 문장이 시대의 질문을 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굴복하지 말라는 외침보다, 부끄러워지지 말라는 침묵의 명령이 그의 시 속에 살아 있다.

이육사는 오래 산 시인이 아니라, 끝까지 산 사람이었다.
그 삶은 오늘도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어떤 자세로 서 있는가를.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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