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 광야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광야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서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지난 여름 이옥비 여사와 함께




어렴풋한 기억에 남은 광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육사를 말할 때 우리는 늘 완결된 얼굴을 떠올린다. 저항 시인, 독립투사, 강인한 정신의 상징.


지난 여름,

지인들과 이육사 기념관에서 그의 딸 이옥비 여사와 차를 나누며 만난 이육사는, 그 모든 규정 이전에 한 아이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아버지였다.
차담은 조용했다.
말은 많지 않았고, 침묵이 길었다. 그러다 이옥비 여사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네 살 때라 어렴풋한 기억이에요.”

그 한마디가 공간의 공기를 바꾸었다. 역사가 증언이 아니라 기억의 형태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뚜렷하지 않기에 더 지워지지 않는 장면들, 설명할 수 없지만 몸에 남아 있는 기척 같은 것들이 그 말속에 담겨 있었다.
그 기억 속의 아버지는 영웅이 아니었다. 시를 낭송하는 모습도, 투쟁을 외치는 장면도 아니었다. 다만 말이 적었고, 오래 바라보았고, 쉽게 다가오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 분이셨어요.”

네 살 아이의 기억과 성인의 언어가 겹쳐지는 그 지점에서, 이육사의 시 세계는 전혀 다른 결로 읽히기 시작한다. 그의 시가 왜 그토록 절제되어 있는지, 왜 격정 대신 침묵을 택했는지, 왜 끝내 울지 않는지를 설명하는 문장은 외려 삶의 가장 사소한 증언 속에 있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처음으로 풀어놓은 이야기들은, 우리가 알고 있던 이육사를 한층 입체적으로 만든다. 말 위에서도 백발백중이었다는 명사수의 면모, 열일곱 번의 옥고를 치르며도 꺾이지 않았던 정신. 그러나 그 강인함은 신화처럼 말해지지 않았다. 포승줄에 쇠고랑을 찬 채 마지막으로 작별하던 장면을 떠올리며, 이옥비 여사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 장면은 어떤 역사적 수식보다도 깊은 울림을 남겼다. 저항은 선언이 아니라, 그렇게 삼켜야 했던 울음의 다른 이름이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초인은 우리 아버지가 아닐까요.”
이 말은 《광야》의 마지막 구절을 다시 불러낸다. 그 초인은 미래에 말을 타고 오는 존재가 아니다. 이미 모든 것을 치르고 사라진 사람, 기억 속에서는 흐릿하지만 삶의 결로는 분명히 남아 있는 존재다. 초인은 도래하는 영웅이 아니라, 끝까지 버티고 떠난 인간일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광야는 달라져 보였다. 그것은 더 이상 추상적인 민족사의 공간이 아니라, 네 살 아이의 어렴풋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아버지의 뒷모습, 말없이 떠나야 했던 한 사람의 시간들이 겹겹이 쌓인 자리였다.
이육사의 시가 지금도 살아 있는 이유는, 그것이 위대한 이념을 외쳤기 때문이 아니라, 한 인간이 끝내 사람으로 남기 위해 견뎌낸 침묵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광야는 멀리 있지 않다. 오늘 우리가 서 있는 자리, 설명되지 않는 책임과 선택 앞에 선 그곳이 이미 광야일지도 모른다. ㅡ청람

□ 이육사 시인



□ 이육사 시인 따님 이옥비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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