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미소 하나가, 동네의 온도를 올렸다ㅡ청람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그 미소 하나가, 동네의 온도를 올렸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늘 마주치는 경비 아저씨가 있다.
우리는 서로를 잘 모른다. 이름도, 고향도, 어떤 사연을 품고 사는지도 모른다. 그저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사람 사이의 관계란 꼭 친밀함으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묻지 않고도 서로를 지켜 주는, 조용한 온기가 있다.
인사는 늘 비슷하다.
“추우시죠.”
“예, 추워요.”
그 말이 끝이다.
사실 그 인사는 대단한 말이 아니다.
뉴스에 나올 만큼 특별하지도 않고, 감동적인 문장처럼 멋지지도 않다. 그러나 그 짧은 대화가 매일 반복되면, 그 안에는 작은 신뢰가 쌓인다.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 찰나에, 우리는 무심한 듯 서로를 확인한다. “오늘도 무사하시군요.” “오늘도 여기 계셨군요.” 말로 다 하지 않아도 그 정도는 충분히 전달된다.
그 경비 아저씨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우리를 맞는다.


새벽에도, 늦은 밤에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출입구 근처를 지킨다. 누군가 택배를 놓고 가면 먼저 확인하고, 낯선 사람이 들어오면 눈길로 한 번 더 살핀다. 세상이 뒤숭숭하고 사건 사고가 많아도, 우리가 집 문을 닫고 편히 잠들 수 있는 이유는 그런 조용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실을 자주 잊는다.
사람은 익숙해지면 고마움을 잃어버린다. 공기처럼 늘 곁에 있는 존재는 중요함을 잊게 되고, 묵묵히 제 역할을 하는 사람은 칭찬 대신 당연함으로 취급된다. 그래서 경비실 앞을 지나면서도 우리는 휴대폰만 보고 걷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도 눈인사만 툭 던지고는 들어가 버린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경비실 창문에 작은 손글씨 종이가 하나 붙어 있었다. 삐뚤빼뚤하지도 않고, 과장되지도 않은 글씨였다. 그냥, 누가 봐도 마음을 담아 쓴 문장이었다.
“아저씨, 따뜻한 커피 드시고 힘내세요.
우리는 아저씨 덕분에 안심하고 살아요.”
그 종이를 보는 순간, 마음이 잠시 멈췄다.
세상이 이렇게 차가운데도, 누군가는 여전히 따뜻한 말을 건네고 있었다. 그 말은 커피 한 잔보다 더 진했고, 핫팩보다 더 뜨거웠다. 한 장의 종이가 아저씨의 하루를 덥혀 주고, 그 문장이 고단한 밤을 지나게 해 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비 아저씨는 그 글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웃었다. 크게 웃지도 않았다. 누가 보라고 미소 짓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입가가 살짝 올라갔고, 눈이 잠깐 부드러워졌다. 그러나 그 짧은 표정 하나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사람의 마음은 늘 거창한 위로보다, 그런 미소 하나에 더 깊게 흔들린다.


그날 우리 동네의 온도는 정말 조금 올라간 것 같았다.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고, 겨울은 변함없이 매서웠지만, 마음의 체감은 달랐다. 누군가 한 사람에게 건넨 따뜻한 문장이, 그 아파트 전체의 공기를 바꾸어 놓았다. 그건 대단한 기적이 아니라, 아주 작은 사람의 친절이 만든 변화였다.
생각해 보면, 사람은 거창한 사랑보다 이런 것에 더 오래 기억된다.
부담스러운 위로가 아니라, “당신 덕분에 고맙습니다”라는 단순한 인정.
값비싼 선물이 아니라, “따뜻한 커피 한 잔 드세요”라는 생활의 언어.
그런 말 한 줄이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버티는 기둥이 된다.


우리는 때때로 잊는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큰 권력이 아니라, 작은 마음이라는 것을.
사람을 살리는 것은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손끝에서 나온 한 문장이라는 것을.
그날 이후로 엘리베이터에서 그 경비 아저씨를 마주치면, 인사가 조금 달라졌다.
“추우시죠?” 하고 묻는 목소리에 한 톤의 온기가 실렸다.
아저씨도 “예, 추워요” 하고 대답하지만, 그 뒤에 덧붙인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 말이 참 오래 남는다.
괜찮다는 말은 사실, 괜찮지 않은 날에도 스스로를 세우는 사람의 언어다.


그리고 그 언어는 결국 누군가가 건넨 따뜻한 한 문장에서 시작된다.
우리의 삶이 조금 더 나아지는 길은 멀지 않다.
경비실 창문에 붙은 그 한 장의 종이처럼,
서로를 알아보는 눈길 하나,
고맙다고 말하는 용기 하나,
따뜻하게 웃어 주는 마음 하나면 된다.
그 미소 하나가, 그날 우리 동네의 온도를 올렸듯이.
오늘은 또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봄을 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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