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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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값으로 확인하는 사랑
시장 골목 국밥집에는 늘 같은 풍경이 있다.
간판의 글씨는 바람에 조금 바랬고, 문을 열면 국밥 냄새가 먼저 반긴다. 들기름이 살짝 섞인 듯한 구수함, 파 송송 썬 냄새,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뚝배기에서 올라오는 온기가 겨울바람을 단번에 물러서게 한다. 그 집은 화려하지 않다. 대신 사람을 덥히는 법을 안다. 그게 오래된 가게가 가진 품격이다.
그날도 점심 무렵이었다.
낡은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할머니 두 분이 마주 앉아 계셨다. 국밥이 나오자마자 서로 숟가락을 번쩍 들더니, 밥보다 먼저 말이 나온다.
“야, 너는 진짜 많이 늙었다.”
“뭐래. 니가 더 늙었다. 거울 좀 봐라.”
말이 거칠다. 어쩌면 듣는 사람은 순간 놀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말에는 날이 없다. 욕이 아니라 농담이고, 공격이 아니라 정겨운 확인이다.
‘오늘도 잘 왔네.’
‘오늘도 살아 있네.’
그렇게 서로를 살피는 방식이 그분들에겐 저런 문장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한 분이 국밥을 후루룩 한 숟갈 뜨며 또 한마디 한다.
“너는 세상에, 이빨이 아직 남아있냐?”
다른 분이 콧방귀를 뀐다.
“남아있긴, 다 빠졌지. 근데 너보다 오래 버틴 건 사실이다.”
그 말을 듣고 두 분이 동시에 웃는다.
젊은 사람들이라면 ‘몸매 관리’나 ‘피부 관리’를 말하겠지만, 이분들의 자랑은 딱 하나다.
“오늘까지 버텼다.”
그리고 그 버팀은 서로가 옆에 있어 가능했다.
잠시 뒤, 한 분이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국밥 위에 떠 있던 김이 잦아들 무렵이었다.
마치 마음속에 오래 담아둔 말을 지금 해야겠다는 듯, 그분은 목소리를 조금 낮춘다.
“야, 근데 너… 늙어도 예쁘다.”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시간도 잠깐 멈춘다.
입에 담기에는 쑥스러워서 평생 미뤄둔 진짜 마음이, 저렇게 툭— 하고 튀어나온다.
늙어도 예쁘다는 말은 사실 ‘예쁘다’가 아니라, ‘고맙다’이고, ‘살아줘서 다행이다’이며, ‘너 없으면 나는 허전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감동은 오래 못 간다.
감동이 길어지면 민망해지는 법이니까.
다른 할머니가 곧바로 콧방귀를 뀌며 웃는다.
“아이고, 말은 곱다. 근데 국밥값은 네가 내라.”
순식간에 분위기가 풀린다.
국밥집 천장이 흔들릴 만큼 큰 웃음이 터진다.
그 웃음은 참 묘하다. 농담인데 눈물이 살짝 섞여 있다.
가난한 시절을 같이 건너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웃음이다.
‘너 예쁘다’는 말 뒤에 ‘네가 내라’가 붙는 순간, 그 사랑은 더 현실적이고 더 따뜻해진다. 진짜 사랑은 꼭 거창하지 않다. 국밥값 한 번 대신 내주는 게 사랑이다. 반찬 더 얹어 주는 게 사랑이다. 생선살 발라서 상대 그릇에 슬쩍 올려 주는 게 사랑이다.
두 분은 다시 숟가락을 든다.
한 분이 말한다.
“야, 너 국밥 먹을 때는 조용히 좀 먹어라. 소리가 무슨 포클레인이냐.”
다른 분이 맞받아친다.
“너야말로. 씹는 소리가 밭 갈아엎는 소리다.”
그러면서도 김치는 꼭 서로에게 먼저 밀어준다.
“이 집 깍두기 맛있다, 너 많이 먹어라.”
“아이고, 너나 먹어. 너 살 빠졌다.”
살이 빠졌다는 말도 사실은 걱정이다.
이제는 다들 병원 이름부터 먼저 떠올리는 나이라서, 살이 빠졌다는 한마디는 “어디 아픈 거 아니냐”는 말로 이어진다. 그걸 직접 묻기 어려우니, 이렇게 우회한다. 마음은 다정한데 표현은 늘 거칠다. 그게 오래된 우정의 방식이다.
세상은 빠르다.
핸드폰 화면은 눈 깜빡할 사이에 바뀌고, 사람들의 관계도 어느 순간 ‘읽씹’으로 끊어진다. 그런데 이 국밥집 할머니들의 관계는 끊어지지 않는다. 느리지만 깊다. 서툴지만 진짜다. 무엇보다 서로를 웃게 만든다.
삶이 힘들수록, 함께 웃어주는 사람이 가장 귀하다.
국밥 한 그릇이 다 비워지고, 할머니들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한 분이 계산대 앞에서 지갑을 꺼내며 말한다.
“내가 낼게.”
그러자 다른 분이 손사래를 친다.
“아니야, 오늘은 내가 낼게. 니가 어제 냈잖아.”
그 다툼은 보기 좋다.
누가 더 많이 내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마음을 보태느냐의 싸움이다.
젊은 날의 자존심 싸움이 아니라, 늙어서도 남아 있는 사랑의 버릇이다.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차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마음은 따뜻하다.
국밥 때문만은 아니다.
그 웃음 때문이고, 그 농담 속에 숨은 사랑 때문이며,
서로에게 “살아줘서 고맙다”라고 말하지 못해도
끝내 밥값으로, 깍두기로, 한마디 농담으로 전해주는 그 마음 때문이었다.
그날 깨닫는다.
사람을 살리는 건 거창한 말이 아니라,
한 그릇의 국밥처럼 따뜻한 관계다.
그리고 사랑은 때로 이렇게 말한다.
“야, 너 늙어도 예쁘다.”
“그래, 그럼 국밥값은 네가 내라.”
그 웃음이 바로 인생이고,
그 투박한 말투가 결국 사랑이었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