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인의 <쉽게 씌어진 시>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윤동주 시인




[김왕식 문학평론가] 윤동주 시인 - 제1부 부끄러움의 시작 - 2편






쉽게 씌어진 시



윤동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불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ㅡ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윤동주 시인의 <쉽게 씌어진 시>
ㅡ남의 나라 육첩방에서, 등불 하나로 나를 악수하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는 한 청년 시인이 일본 유학 시절 “남의 나라”에서 숨죽여 살아가며, 시를 쓰는 일이 얼마나 부끄럽고도 필연적인가를 스스로에게 묻는 고백록이다.

이 작품을 떠받치는 첫 기둥은 단연 “육첩방은 남의 나라”라는 한 문장이다. 육첩방은 단지 좁은 하숙방이 아니다. 그것은 타국의 공기 속에서 살아야 하는 식민지 청년의 현실이며, 몸은 그 방에 있으나 마음은 끝내 정착하지 못하는 존재의 유배지다.
윤동주는 그 방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그 방을 규정한다. 그리고 그 규정은 곧 시대의 그림자 속에서 흔들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똑바로 세우는 선언이 된다.

시의 첫 장면은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라는 감각에서 시작한다. 윤동주의 언어는 늘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오히려 “속살거려”라는 작은 소리로 세계를 흔든다. 그 밤비는 위로의 비가 아니라, 시대의 비애가 조용히 스며드는 소리다. 그렇게 감각이 먼저 들어오고 나서 “육첩방은 남의 나라”가 따라붙는다. 처음의 화자는 아직 생각보다 몸으로 먼저 시대를 느낀다. 그러나 시가 한 바퀴를 돌고 나면, 윤동주는 똑같은 구절을 다시 꺼내면서도 행의 순서를 뒤집는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이것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시 전체의 심리 구조를 완성하는 고도의 장치다. 초반에는 비가 현실 인식을 끌어냈다면, 후반에는 현실 인식이 비의 소리까지도 ‘남의 나라의 소리’로 바꿔버린다. 감각이 생각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감각을 다시 채색한다.
윤동주는 이 뒤집기를 통해 “환경은 그대로지만, 그 속의 나는 달라졌다”는 성숙을 조용히 증명한다.

이 시의 슬픔은 개인감정에 머물지 않는다. 시인은 “시인이란 슬픈 천명”임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불까”라고 묻는다. ‘천명’이라는 말은 직업이 아니라 운명이며, 그 운명이 영광이 아니라 슬픔으로 규정되는 순간 윤동주의 윤리적 세계관이 드러난다.
그는 시를 낭만으로 치장하지 않는다. 시를 쓴다는 것은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못하는 일이자, 동시에 그 아픔 앞에서 자신이 안전한 방 안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시 쓰기는 위안이 아니라, 자신에게 내리는 판결처럼 읽힌다.

윤동주의 시는 늘 구체적 현실을 지나 윤리로 도착한다.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 보내주신 학비 봉투”는 아름다운 장식이 아니다. 그것은 가족의 노동과 희생이 손에 잡히는 형태로 전해진 생의 증거다. 그 봉투를 받아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가는 장면은, 시대의 청춘이 얼마나 성실하게 자신을 지탱하는지를 보여준다. 윤동주는 거창한 투쟁을 말하지 않더라도, 살아내는 하루 자체가 이미 무겁고 절실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그가 시를 “쉽게” 쓰는 순간, 그 쉽다는 느낌은 곧바로 죄책감이 된다. 삶이 어렵다면 시도 어려워야 정직하다는 믿음, 이것이 윤동주의 가치철학이다.

중심부에서 “어릴 때 동무들 /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라는 고백이 나온다. 이는 단순한 성장의 상실이 아니라 시대가 빼앗아 간 관계의 붕괴다. 그 상실의 끝에서 그는 묻는다.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윤동주의 고독은 멋이 아니다. 침전은 조용히 가라앉는 일이며, 그 가라앉음 속에서 자신을 더 맑게 거르려는 고통의 방식이다. 그는 떠들지 않고 침묵 속으로 내려가며, 그 내려감으로 자신의 양심을 이끌어 올린다.

마침내 이 시는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라는 문장으로 결의를 세운다. 윤동주의 위대함은 여기 있다. 그는 어둠을 한 번에 없앤다고 말하지 않는다. 단지 “조금” 내몰겠다고 말한다. 거대한 구호가 아니라 작은 빛 하나로 시대의 아침을 기다리는 태도. 그 태도가 윤동주 시의 윤리이자 미학이다.
그리고 마지막,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에서 이 작품은 완성된다.
그는 타인에게서 먼저 구원을 찾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손을 내밀어 자기 자신과 화해의 악수를 한다. 그 악수는 승리의 악수가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다짐이며, 눈물 속에서 다시 인간으로 서려는 조용한 각오다.

요컨대,〈쉽게 씌어진 시〉는 ‘쉽게 쓰인 시’가 아니다. 이 작품은 시대의 어둠 속에서 시를 쓰는 자신을 끝까지 의심하고, 그 의심을 끝내 윤리로 바꾸어낸 한 청년의 가장 정직한 기록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라는 차가운 현실 위에서, 윤동주는 등불 하나를 들고 자신의 부끄러움을 지킨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이야말로 이 시를 오늘까지 살아 있게 하는 가장 맑은 힘이다.





■ 달삼과 오산학교 문예교사 청람의 대화



윤동주의 밤비 앞에서, 달삼이 묻고 스승이 답하다



비가 오면, 방은 늘 작아진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얇아지고, 얇아진 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그날도 그랬다.
밖은 눅눅했고, 방 안은 책 냄새와 습기의 냄새가 섞여 있었다. 청람은 창을 조금 열어 두었다. 비가 실내로 들어오는 길이 아니라, 비가 마음으로 들어오는 길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달삼이 조용히 들어왔다.
문을 닫는 손끝이 어째 조심스러웠다. 그는 늘 그렇게 들어왔다. 책을 읽고 난 뒤의 사람처럼, 말보다 먼저 숨을 고르는 표정으로.

“선생님, 비가 오니까… 이 시가 더 가까이 들립니다.”

그가 손에 쥔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
이 시를 여러 번 읽었는데도, 비 오는 날이면 문장이 다시 젖는 것 같았다. 글줄이 아니라 체온이 늘어나는 느낌이었다.
달삼은 시의 첫 줄을 낮게 읽었다.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그리고 잠깐 멈추더니, 곧바로 다음 줄을 읽었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그는 그 두 줄을 읽고 나서, 종이를 가만히 내려놓았다. 마치 어떤 사실을 놓아두기라도 하듯이.

“선생님, 방이 왜 나라가 됩니까? 방은 방인데.”

비가 창문 틈으로 더 가늘게 들어와 바람과 함께 흔들렸다. 청람은 대답을 서두르지 않았다. 윤동주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말은 언제나 늦게 오는 쪽이 더 정직하다는 사실이었다.

“달삼아. 방이 방으로만 남아 있을 때가 있다. 그건 네가 그 방의 주인일 때다.”

청람은 찻잔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손이 따뜻해지기 전에 마음이 먼저 데워지는 것을 느끼는 듯했다.

“그런데 어떤 날은 방이 방을 넘어선다. 네가 그 방의 주인이 아니라… 손님처럼 살 때지. 아니, 손님보다 더 낯선 사람으로.”

달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다는 표정보다, 이해가 시작됐다는 표정이었다.

“윤동주는 일본 유학을 하며 ‘육첩방’을 살았지. 다다미 여섯 장짜리, 좁고 조용한 방. 그런데 그 방은 단지 좁은 공간이 아니라… ‘자기 자리’가 아니었어. 그러니까 그는 그렇게 말한 거다. ‘남의 나라’라고.”

달삼이 웃지도 울지도 않는 얼굴로 다시 물었다.

“그럼 첫 연은요. 왜 하필 ‘밤비’부터 시작할까요? 밤비는 그냥 비잖아요.”

“그 비가 그냥 비가 아니어서 그렇다.”

청람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빗줄기가 반짝이며 미끄러졌다.

“윤동주에게 밤비는 위로가 아니라 감시처럼 들려. 비가 오면 세상이 조용해지지. 조용해지면… 사람은 자기를 듣게 된다. 자기 안에서 들리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려.”

달삼은 종이를 다시 들어, 눈으로 따라가며 읽었다.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불까,”

그는 그 구절에서 어딘가 아프다는 표정을 잠깐 드러냈다. 그리고 그 아픔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목소리를 더 낮췄다.

“선생님, 시인은 왜 슬픈 천명입니까? 시인이면 좋잖아요. 글을 쓸 수 있는데.”

청람은 그 질문이 고맙다는 듯, 잠시 숨을 고르며 말했다. 시인이 왜 슬픈 천명인지 묻는 사람은, 아직 시를 꿈으로만 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시를 현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사람이었다.

“시인이란 이름이 멋있어서가 아니다.”

청람은 말끝을 잘랐다. 말이 길어지면 윤동주의 목소리에서 멀어질 것 같았다.

“윤동주가 말한 ‘천명’은 선택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자리야. 시대가 아픈데도 모른 척 못 하는 자리. 쓰지 않으면 비겁해질 것 같고, 쓰면 사치처럼 느껴지는 자리. 그게 슬프지.”

달삼은 그 말을 들으며, 마치 어떤 마음의 줄이 조용히 당겨지는 듯했다. 그는 시 중간을 읽다가, 눈길을 오래 붙잡는 구절 앞에서 멈췄다.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그는 그 문장에서 말을 잃었다. 두 사람은 잠시 말을 하지 않았다. 이런 구절 앞에서는 설명이 자꾸 불경해지는 순간이 있었다. 문학이 아니라 삶이 먼저 울기 때문이다.
달삼이 조용히 말했다.

“이 부분이… 너무 구체적이라서 더 슬픕니다. 학비 봉투에 땀냄새가 난다는 말이요.”

“그렇지.”

청람은 그 구절이 윤동주의 비밀 노트처럼 느껴지는 듯했다.

“윤동주의 죄책감은 공중에서 생기지 않는다. 가족의 땀에서 생긴다. 그 봉투는 돈이 아니라, 삶이야. 그리고 그 삶 위에서 시를 쓴다는 게… 그에게는 늘 조심스러운 일이었지.”

달삼이 마치 그 학비 봉투를 직접 만져 본 사람처럼, 손가락을 살짝 접었다.

“그래서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는군요.”

그가 다시 읽었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달삼이 묻지 않아도, 그 문장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윤동주의 부끄러움은 겸손이 아니라 윤리였다. 시가 잘 나와서 부끄러운 게 아니다. 시가 잘 나온 만큼 삶을 제대로 살았는지 의심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다.
청람이 조용히 말했다.

“달삼아. 윤동주는 시를 ‘잘 쓰는 것’보다 ‘바르게 쓰는 것’을 두려워했다. 시가 쉽게 나오면, 그만큼 삶의 고통을 얕게 통과한 건 아닌지 자기를 의심한 거다.”

달삼은 그 말을 듣고, 천천히 다음으로 넘어갔다.
시가 다시 첫 장면으로 돌아갈 때였다. 달삼은 다시 한번 그 두 줄을 읽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까와 다르게 읽었다. 미세하게 호흡이 바뀌었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그는 눈을 들어 청람을 보았다.

“선생님, 이 부분… 처음과 같은데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청람은 웃지 않았다. 이런 대목에서는 웃음이 아니라 고개가 숙여지는 법이었다.

“그래. 윤동주는 반복하지 않았다. 돌아왔다.”

청람은 창문 쪽을 손끝으로 가리켰다.

“처음에는 비가 먼저였지. 비를 듣고 ‘남의 나라’를 깨달았다. 그런데 끝에서는 ‘남의 나라’가 먼저야. 그 사실을 가슴에 넣어버린 다음에… 비를 듣는다. 시를 한 바퀴 돌고 나면 같은 빗소리도 다르게 들리거든.”

달삼이 중얼거렸다.

“같은 비인데… 귀가 달라진 거네요.”
“맞다. 같은 방인데, 마음이 달라진 거다.”

청람은 말을 조금 더 눌러서 덧붙였다.

“그 도치가 큰 해설은 아니다. 윤동주는 대놓고 말하지 않잖아. 다만 행을 살짝 바꿔서 ‘나의 체온이 달라졌다’를 보여 주는 거지.”

달삼은 고개를 끄덕이며 시의 끝부분을 다시 읽었다.
그가 읽을 때마다 방 안의 공기가 조금씩 더 조용해졌다.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그는 그 구절을 읽고 나서, 잠깐 웃었다. 아주 짧은 웃음이었다. 웃기 때문이 아니라, 이 문장이 가진 단단함이 오히려 사람을 살게 해서 나오는 웃음이었다.

“선생님, 여기서 윤동주는 갑자기 강해집니다.”

“강해진 게 아니다.”

청람은 바로 잡아 주었다.

“윤동주는 원래 강했다. 다만 표현을 크게 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중요한 단어를 짚어 주었다.

“그는 어둠을 ‘없앤다’고 말하지 않는다. ‘조금 내몬다’고 말한다. 그게 윤동주다. 그는 위대한 척하지 않는다. 견디는 척도 하지 않는다. 그냥, 조금씩 어둠을 밀어내며 산다.”

달삼이 마지막 구절을 읽었다.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그가 종이를 내려놓을 때, 눈빛이 맑아져 있었다. 그 맑음은 기쁨이 아니라, 눈물 뒤의 맑음이었다.

“선생님…”

달삼이 잠시 말끝을 붙잡다가 놓았다.

“자기 자신과 악수한다는 게… 이상하게 따뜻합니다.”

청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윤동주는 자기 자신을 미워해도, 버리지는 않았다.”

청람은 그 마지막을 오래 굴렸다.

“그가 부끄러워한 것은 시가 아니라, 자기의 삶이었다. 그러나 그 부끄러움 끝에서 그는 자기를 살려냈다. 작은 손을 내미는 방식으로.”

비는 계속 속살거렸다.
창밖의 밤비는 여전히 밤비였고, 육첩방은 여전히 남의 나라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윤동주의 이 시가 끝내 남긴 것은 절망이 아니라, 등불 하나라는 것을.
달삼이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이 시는 쉽게 씌어진 게 아니라…
쉽게 살아지지 않는 시대를, 쉽게 말하지 않으려던 마음 같아요.”

청람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창문을 조금 더 닫았다.
비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게 아니라,
비가 남긴 여운이 이 방을 오래 떠나지 못하게 하려는 마음으로.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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