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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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우리는 어제를 이야기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내일을 기대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마음은 늘 지나간 시간 쪽으로 기울고, 아직 오지 않은 시간 쪽으로 앞서 달려간다. 그래서 삶은 자주 ‘여기’가 아니라 ‘저기’에 머문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있다. 어제는 이미 떠났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 내일은 반드시 올 것 같지만, 인생은 그 당연함을 언제든 흔들 수 있다. 내일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 불확실함 앞에서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가.
과거를 떠올리는 일은 아름답다. 오래전 웃음과 손길, 그 시절의 공기와 풍경은 마음을 따뜻하게 감싼다. 하지만 아무리 곱게 기억해도 과거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미래를 준비하는 일 또한 의미 있다. 계획은 삶을 지탱하는 뼈대가 된다. 그러나 미래는 늘 불투명하다. 기대한 대로 오지 않기도 하고, 약속한 대로 이어지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 과거와 미래는 삶의 일부이되, 삶의 중심이 될 수는 없다.
삶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결국 하나뿐이다.
바로 지금이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만은 현실이다.
숨이 가슴을 드나드는 시간도 지금이고, 눈빛이 닿는 순간도 지금이다. 따뜻함이 손끝에 남는 것도 지금이며, 어떤 결심이 마음속에 내려앉는 것도 지금이다. 과거는 기억 속에 있고, 미래는 상상 속에 있지만, 삶은 지금에서만 온전히 존재한다. 그러니 지금을 놓치면, 우리는 삶을 놓치는 셈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가장 확실한 시간을 자주 흘려보낸다. 어제의 후회가 오늘을 흐리게 만들고, 내일의 불안이 오늘을 미리 닳게 한다. 그 결과 하루는 끝나는데, 마음에는 “나는 오늘을 살았나”라는 허무만 남는다. 인생의 큰 손해는 실패가 아니다. 오늘을 오늘답게 살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을 잘 보내면, 지금은 아름다운 과거가 된다.
지금을 성실하게 지냈기에 내일도 지금처럼 잘 지낼 수 있다.
내일은 기적처럼 떨어지는 선물이 아니라, 오늘의 태도가 만들어 내는 다음 장면이다.
문득 떠오른다.
지금을 충실히 사는 사람을 바라보면 반드시 그만의 특징이 있다. 말이 많지 않다. 세상을 붙잡아 흔들려하지 않고, 넉넉한 미소로 세상을 관조할 줄 안다.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지도 않고, 오늘을 과장하여 떠들지도 않는다. 그저 지금 앞에 서서, 해야 할 몫을 조용히 해낸다. 그래서 그 사람의 얼굴에는 늘 편안한 표정이 머문다. 불안이 없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불안을 다루는 방법을 아는 표정이다. 마음이 현재에 닿아 있다는 가장 단정한 증거다.
더 선명한 특징이 있다.
그런 사람은 절대로 세상과 남을 탓하지 않는다.
늘 원인을 바깥에서 찾지 않고, 자기 안에서 먼저 찾는다.
상처가 와도 누구의 잘못인지부터 따지지 않고, “내가 어디에서 흔들렸는가”를 먼저 돌아본다. 이것은 자신을 낮추는 일이 아니라, 삶을 품격 있게 지키는 방식이다. 탓은 마음을 헐게 하지만, 성찰은 마음을 단단하게 한다. 그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삶이 거칠어도 얼굴에 가시가 돋지 않는다.
그는 이 세상을 축복의 땅으로 겸허히 여긴다.
어떤 날은 힘들고, 어떤 날은 막막해도, 그 안에서도 감사할 자리를 놓치지 않는다. 작은 빛 한 줄기, 누군가의 무심한 안부, 따뜻한 밥 한 끼, 무사히 지나간 하루. 그런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 오늘이 주어진 것 자체가 감사임을 안다. 그 사람은 세상이 무너진다 말하는 대신, 오늘을 지켜내는 법을 선택한다. 그 선택이야말로 ‘지금’을 사는 사람의 가장 큰 힘이다.
오늘 아침은 그런 사람을 닮고 싶다.
말을 줄이고, 마음을 넓히고, 미소를 남겨두는 사람.
불필요한 다툼을 피하고, 필요 없는 걱정을 줄이며, 지금 이 순간을 또렷하게 살아내는 사람.
자기 안을 먼저 돌아보고, 세상을 탓하는 대신 자신을 다스리는 사람.
감사를 잃지 않고, 이 땅을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어제는 이미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
오직 지금만이 우리의 것이다.
그러니 지금을 가볍게 여기지 말자. 지금은 작은 순간이 아니라 인생의 중심이다. 지금을 지키는 사람이 삶을 지킨다. 그리고 삶을 지키는 사람의 얼굴에는, 반드시 그만의 넉넉한 미소가 남는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