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김왕식 문학평론가] 윤동주 시인 - 제1부 부끄러움의 시작 -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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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록 懺悔錄
.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골이 남어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一 만이십사 년 滿二十四年 일 개월一介月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든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 懺悔錄을 써야 한다.
ㅡ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든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
윤동주 시인의 《참회록》
ㅡ파란 녹의 거울 앞에서, 스물넷이 견딘 양심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윤동주의 〈참회록〉은 ‘시’라는 형식으로 쓰인 한 편의 고백이기보다, 한 인간이 자신의 양심 앞에서 스스로를 심문하는 기록에 가깝다. 이 작품에서 윤동주는 세계를 비난하지 않는다. 시대를 원망하지도 않는다. 먼저 자신의 얼굴을 바라본다.
윤동주의 시가 오래도록 사람을 울리는 까닭은, 그가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엄정한 윤리를 끝까지 놓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남을 겨누는 칼 대신 거울을 들고, 그 거울 앞에서 자신을 단죄하는 쪽을 택한다. 그 선택이 바로 윤동주의 문학을 ‘아름답다’ 이전에 ‘정직하다’라고 부르게 만든다.
첫 연의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 내 얼골이 남어있는 것은”에서 거울은 단순한 생활용품이 아니다. ‘구리’라는 오래된 재질은 시간을 끌어당기고, “파란 녹”은 침식된 내면의 표정을 드러낸다. 이어지는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라는 구절은 자기 얼굴을 현재의 얼굴이 아니라, 낡은 역사 속 유물처럼 느끼는 비극적 자의식을 형성한다.
여기서 윤동주는 자기 존재를 미화하지 않는다. 외려 시대의 그늘 속에서 자기 얼굴이 부끄러움의 표본처럼 남아 있다는 사실을 견딘다. 그래서 마지막에 “이다지도 욕될까”라는 한 문장이 떨어진다. 윤동주는 자신을 ‘가엾다’ 고도, ‘불쌍하다’ 고도 말하지 않는다. 그는 ‘욕되다’고 말한다. 이 단어의 차가움은 그의 윤리의 뜨거움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자기에게 관대해지는 순간을 경계한다. 시대가 어둡다고 해서 자신이 가벼워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 시의 중심축은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라는 선언에서 더 선명해진다. 윤동주는 문장을 늘려 감정을 부풀리는 시인이 아니다. 그는 문장을 줄여 진실을 남기려는 시인이다. 변명과 수사를 덜어낼수록, 남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뿐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생을 숫자로 적는다.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이라는 구체적 시간은 청춘의 찬란함이 아니라 결산의 언어다. 스물네 살의 삶을 돌아보며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든가”라고 묻는 순간, 이 시는 젊은 날의 우울을 넘어 양심의 재판정이 된다. 그의 질문은 철학적이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이다. “나는 무엇을 했는가”라는 물음이 “나는 무엇을 바라며 살아왔는가”라는 물음으로 이어진다.
특히 이 시가 더 깊은 이유는 참회가 한 번의 고백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윤동주는 참회를 과거에만 묶어두지 않는다. 그는 미래의 운명으로 옮겨 놓는다. ‘즐거운 날’에도 참회를 써야 한다는 말은, 윤동주의 세계에서 기쁨조차 가볍게 허락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는 현실이 허락한 좁은 틈에서 잠시 웃더라도, 그 웃음이 누구의 눈물 위에 놓였는지 잊지 못한다. 이처럼 윤동주의 참회는 죄를 고백하는 감정이 아니라 ‘깨어 있음’이 만들어낸 고통이다. 윤동주는 잠들면 편해질 것을 알면서도 끝내 잠들지 못한 사람이다. 그 불면이 그의 시를 맑게 만든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든가.”라는 대목은 마치 미래의 자신이 과거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처럼 들린다. 윤동주의 시에는 시간의 겹침이 자주 나타난다. 현재의 ‘나’가 과거의 ‘나’를 바라보고, 과거의 ‘나’는 미래의 ‘나’를 예감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단순한 자책이 아니라 한 인간의 ‘양심이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는 청춘의 패기를 외치지 않는다. 청춘의 부끄러움을 적는다. 그 부끄러움이야말로 윤동주가 스스로에게 허락한 가장 엄격한 존엄이다.
그리고 마침내 시는 실천의 자리로 내려앉는다.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여기서 손바닥은 노동의 흔적이고, 발바닥은 삶의 고단함이다. 윤동주는 참회를 생각으로만 하지 않는다. 몸으로 닦는다. 거울을 닦는 행위는 사물을 깨끗이 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마음의 얼룩을 지우려는 반복된 수행이다. “밤이면 밤마다”라는 말속에는 참회가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생활의 습관이 되어야 한다는 윤동주의 엄정함이 들어 있다.
마지막 장면은 이 시의 가장 깊은 고요다.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윤동주는 자기 얼굴이 아니라 ‘뒷모양’을 본다. 앞모습은 사회의 눈을 의식해 꾸밀 수 있지만, 뒷모습은 숨길 수 없다. 뒷모습은 한 인간이 짊어진 무게가 그대로 드러나는 자리다. 더구나 그는 “운석 밑”을 걷는다. 운석은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파국이고, 시대의 폭력이며, 개인에게 닥칠 운명의 낙하다. 그 아래를 “홀로” 걷는 뒷모양은 식민지 청년의 고독을 넘어 인간 보편의 불안을 증언한다. 그러나 윤동주는 그 아래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걷는다. 그 걷는 뒷모양이야말로 윤동주의 품격이며, 그의 시가 가진 조용한 힘이다.
〈참회록〉은 결국 ‘부끄러움의 미학’이다. 윤동주에게 참회는 약함이 아니라 강함이다. 자신을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바로 세우는 방식이다. 파란 녹이 낀 거울 앞에 선 스물네 살의 시인은 시대의 어둠을 누구보다 또렷이 보았고, 그 어둠을 남에게 떠넘기지 않고 자기 가슴에 안았다. 그래서 그의 시는 슬프다. 그러나 그 슬픔은 흐릿하지 않다. 선명하다.
그 선명함은 오늘의 독자에게도 묻는다.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든가.” 윤동주의 시가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그 질문이 지금도 살아 있기 때문이다.
■ 달삼과 오산학교 문예교사 청람의 대화
겨울비와 눈 사이, 문예반실에서 나눈 참회의 문장
겨울비와 눈이 섞여 내렸다.
비가 먼저 떨어지고, 눈이 늦게 내려앉았다. 운동장 흙은 검게 젖었고, 복도 창문에는 물방울이 길게 흘렀다. 바람이 한 번 지나갈 때마다 눈발이 휘어졌다가, 다시 비처럼 풀어졌다. 쌓이지 못하는 흰 것이 미련처럼 남았다가 사라졌다. 겨울은 늘 그런 방식으로 사람 마음을 건드렸다.
문예반실은 그날따라 더 조용했다.
교실 끝자리에는 낡은 시집 몇 권이 겹쳐져 있었고, 칠판 한쪽엔 누군가 적어 둔 짧은 문장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난방이 세지 않은 방, 그러나 이상하게도 따뜻함이 있는 방. 말이 많지 않아도 마음이 오래 머무르는 방. 청람은 창문을 조금 열어 두었다.
추위를 들이려는 것이 아니라, 밖의 소리를 들여놓기 위해서였다. 겨울비와 눈이 섞인 소리는 이상하게 사람을 정직하게 만들었다.
그때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달삼이 들어왔다. 교복 소매 끝은 젖어 있었고, 어깨에는 녹아버린 눈이 잔뜩 묻어 있었다. 그는 털어내지 않았다. 털어내면, 오늘이라는 날의 감각까지 함께 떨어질 것 같았다.
교복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펴는 손이 유난히 단정했다. 젊은 손인데, 벌써 오래된 슬픔을 만져 본 손처럼.
“선생님… 오늘은 눈도 아니고 비도 아니고, 둘이 섞여서 내려요.”
달삼이 창밖을 잠깐 보더니, 종이를 조심스럽게 펼쳤다. 종이도 겨울 습기를 먹어 모서리가 약간 눅눅했다.
“그래서인지 이 시가… 더 무섭게 들립니다.”
청람은 그 말을 듣고도 놀라지 않았다. 윤동주의 시는 사람을 달래기 전에 먼저 흔들어 깨우는 쪽에 가까웠다. 그 무서움은 공포가 아니라, 양심이 깨어나는 소리였다.
“무섭다는 건 네 안에서 무언가가 깨어났다는 뜻이다.”
달삼은 고개를 끄덕이고 시를 읽기 시작했다. 교복 깃 사이로 새어 나오는 목소리가 낮았다. 낮은 목소리는 겨울 교실에 더 오래 남는다.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골이 남어있는 것은…”
달삼은 거기서 멈췄다.
창문을 타고 물방울이 한 줄 흘렀다. 그 물방울 사이로 눈발이 흔들렸다. 문예반실의 공기가 한층 더 조용해졌다.
달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왜 윤동주는 ‘거울’부터가 아니라 ‘녹’부터 시작합니까?
보통은 얼굴을 보잖아요. 그런데 윤동주는 녹을 먼저 봅니다.”
청람은 손에 들고 있던 시집을 조용히 덮었다. 말은 서두르지 않았다. 겨울에는 대답도 숨을 고르는 법이었다.
“거울은 본래 비추는 물건이다. 그런데 녹이 끼면, 거울은 비추지 못한다.”
청람이 창밖을 잠깐 바라보며 말했다.
“윤동주는 자기 얼굴을 보기 전에, 먼저 자기 시선이 얼마나 흐려졌는지부터 본 거다.”
달삼의 눈이 커졌다.
“자기 얼굴이 아니라… 자기 시선이요?”
“그래.”
청람의 목소리는 낮지만 또렷했다.
“윤동주의 참회는 ‘내가 나쁜 사람이다’ 같은 수준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더 무서운 걸 묻는다.
‘나는 지금 제대로 보고 있나?’
거울에 녹이 끼면 얼굴은 남아 있어도 진실은 흐려진다.
그 흐림 자체가 참회의 출발점이다.”
달삼은 한 번 숨을 삼켰다.
교복 속에서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그는 다음 구절을 읽었다.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달삼이 종이를 살짝 들어 올렸다. 글자들이 무게를 가진 듯했다.
“선생님, 여기서 저는 더 막힙니다.
왜 자기 얼굴이 ‘왕조의 유물’입니까?
그냥 ‘초라하다’ 거나 ‘낡았다’고 하면 되잖아요.”
청람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윤동주는 자기 얼굴을 ‘지금의 얼굴’로 보지 않는다.”
청람은 말을 짧게 끊고, 다시 이어 붙였다.
“그는 자기 얼굴을 역사 속에 남겨진 흔적으로 본다.
왕조의 유물이라는 말에는 ‘내가 지금 이 시대에 남아 있는 방식’이
부끄럽다는 뜻이 들어 있다.”
달삼이 나직하게 되물었다.
“그럼 ‘욕되다’는 말도… 그냥 자기를 미워하는 말이 아니군요?”
청람은 잠시 침묵했다.
겨울 문예반실에서는 침묵이 오히려 더 큰 설명이 되기도 했다.
“윤동주는 자기를 미워하면서도, 사실은 자기를 살리고 있다.”
청람이 말했다.
“사람은 스스로를 아름답게 꾸미면 잠깐 편해진다.
그런데 윤동주는 그 편안함을 더 무서워했다.
그래서 그는 ‘가엾다’가 아니라 ‘욕되다’를 택했다.
그 말은 자기에게 내리는 형벌이 아니라,
자기를 깨우는 마지막 벨이다.”
달삼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표정이 편해지진 않았다.
윤동주의 시는 사람을 편하게 만들지 않는다. 대신 사람을 바로 세운다.
달삼은 다음 대목을 읽었다.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사 년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달삼이 중간에서 멈췄다.
“선생님, 여기서 왜 숫자가 나옵니까?
시인데… 시적으로 쓰면 되잖아요.”
청람이 바로 말했다.
“숫자는 거짓말을 잘 못한다.”
짧은 문장이 문예반실의 공기를 단단히 잡았다.
“윤동주는 참회 앞에서 수사를 싫어했다.
자기 생을 장부처럼 계산해 보는 거다.
스물네 살을 감정으로 말하면 도망칠 수 있지만,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이라고 적으면 도망칠 수 없다.”
달삼이 입술을 깨물었다.
“스물네 살이면… 시작인데요.
그 나이에 왜 이렇게까지 자신을 심문합니까?”
청람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눈이 비에 섞여 떨어지듯, 사람의 마음도 한쪽으로만 기울지 않는다.
“윤동주는 스물네 살이라서 참회한 게 아니다.”
청람이 조용히 말했다.
“스물네 살인데도 참회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윤동주다.
그는 젊음을 면죄부로 쓰지 않았다.
젊다고 해서 가벼워지지 않았다.
그게 그의 비극이고 품격이다.”
달삼은 천천히 다음 구절로 내려갔다.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달삼이 그 문장을 읽고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선생님… 이건 너무합니다.
즐거운 날에도 참회록을 쓴다니.
그러면 윤동주는 평생 행복할 수 없는 사람 아닙니까?”
청람은 서둘러 대답하지 않았다.
문예반실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시집이 아니라, 대답을 기다리는 침묵이었다
.
“윤동주는 행복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청람이 말했다.
“오히려 행복을 너무 잘 알아서 두려워한 사람이다.
즐거운 날은 사람을 쉽게 잊게 만든다.
자기만 웃고 있다는 사실을.”
청람은 말을 낮춰 마무리했다.
“윤동주는 그 잊음을 무서워했다.
그래서 즐거운 날에도 한 줄을 쓰겠다고 한 거다.
행복을 부정하려는 게 아니라,
행복이 누구의 슬픔 위에 서지 않게 하려고.”
달삼의 눈빛이 흔들렸다.
운동장 쪽에서 체육시간 종소리가 멀게 들렸다가 사라졌다.
학교는 여전히 돌아가고, 두 사람의 시간만 다른 속도로 흘렀다.
달삼이 다시 읽었다.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는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 왜 ‘발바닥’까지 나옵니까?
거울은 손으로 닦지, 발로 닦습니까?”
청람이 아주 작게 웃었다.
윤동주의 절박함을 이해한 사람만이 낼 수 있는 온기였다.
“발바닥은 그 사람의 인생이 묻어 있는 곳이다.”
청람은 단어를 하나씩 눌러 말했다.
“윤동주는 손으로만 참회하지 않는다.
머리로만 참회하지 않는다.
살아온 몸 전체로 닦는다.
손바닥은 노동이고, 발바닥은 하루하루 버틴 생의 흔적이다.
참회는 생각이 아니라 습관이 되어야 한다고 그는 믿었다.”
달삼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참회는… 하루의 습관이군요.”
청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윤동주는 자기에게서 도망칠 수 없기 때문에,
자기를 매일 점검한다.”
달삼은 마지막 구절로 내려갔다.
이쯤에서 그의 목소리는 더 얇아졌다. 교복 깃 사이로 겨울이 들어오는 듯했다.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달삼은 종이를 내려다보지 않고 청람을 바라보며 물었다.
“선생님… 왜 하필 ‘뒷모양’입니까?
왜 얼굴이 아니라 뒷모양이죠?”
청람은 잠시 숨을 멈춘 듯하다가 말했다.
“앞모습은 꾸밀 수 있다.”
청람의 말은 짧았다.
“뒷모습은 못 꾸민다.”
그는 한 박자 쉬고 덧붙였다.
“윤동주는 남들이 보는 얼굴이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을 때의 자신을 보려는 거다.
혼자 걸어갈 때의 모습,
그때조차 떳떳한지 확인하려는 거다.”
달삼이 눈을 내리깔았다.
“운석 밑이라는 말이… 너무 큽니다.”
달삼이 말했다.
“너무 무섭습니다.”
청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운석은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시대다.”
청람의 목소리가 조금 더 단단해졌다.
“폭력이고, 체포이고, 죽음이다.
그런데 윤동주는 그 아래서 뛰지 않는다.
숨지 않는다.
그냥 걷는다.”
그 말이 문예반실 안에 오래 남았다.
“그게 더 무섭고, 더 아름답다.”
달삼은 종이의 모서리를 살짝 눌렀다.
교복 소매 끝에서 물기가 한 방울 떨어졌다.
그 한 방울이 꼭 문장처럼 보였다.
“선생님…”
달삼이 입술을 떼었다.
“윤동주는 왜 이렇게까지 자신을 몰아붙입니까?
이 정도면 사람이 부러질 것 같은데요.”
청람은 잠시 달삼을 바라보았다.
교복을 입은 아이의 얼굴이 아니라, 이미 무엇인가를 알아버린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윤동주는 자기를 부러뜨리려고 참회한 게 아니다.”
청람이 조용히 말했다.
“자기가 부러지지 않기 위해 참회한 거다.
세상이 무너질 때,
자기 안까지 같이 무너질까 봐
거울을 닦고 또 닦은 거야.”
달삼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창밖은 여전히 눈과 비가 섞여 내렸다.
무엇도 확실히 쌓이지 못하는 날씨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문예반실 안에서는 마음이 더 또렷해지고 있었다.
“선생님, 그럼 이 시의 끝은… 절망이 아니네요.”
청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절망이 아니다.”
청람은 짧게 말했다.
“윤동주의 참회는 자기혐오가 아니다.
자기 보존이다.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마지막 증거다.”
달삼은 종이를 접지 않고 그대로 들고 있었다.
접어 버리면 윤동주의 뒷모습까지 사라질 것 같아서였다.
그가 마지막으로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이 시는…
참회가 아니라, 버티는 법을 배우는 글 같습니다.”
청람은 대답 대신 달삼의 쪽으로 종이컵에 담긴 따뜻한 차를 하나 밀어 놓았다.
말보다 먼저 건네는 온기.
운동장 위로 겨울비와 눈이 계속 섞여 내릴수록,
그 온기는 더 선명하게 남았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