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인 서시- 제1부 부끄러움의 시작 - 4편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김왕식 문학평론가]
윤동주 시인 - 제1부 부끄러움의 시작 - 4편







서시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11.20)







윤동주의 <서시>를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윤동주의 〈서시〉는 한 편의 시라기보다 한 인간이 자기 영혼 앞에서 세운 ‘평생의 서약’이다. 이 짧은 시는 거창한 선언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외려 가장 조용한 다짐으로 시작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이 첫 구절에서 윤동주의 문학은 이미 방향을 정한다. 그는 성공을 말하지 않는다. 업적을 말하지 않는다. 위대한 이름을 꿈꾸지도 않는다. 그가 끝까지 붙잡고 싶은 것은 단 하나, “부끄럽지 않음”이다.
여기서 부끄러움은 단순한 도덕 교과서의 훈계가 아니다. 윤동주에게 부끄러움은 시대와 인간을 동시에 정직하게 바라보는 윤리의 감각이며,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으려는 마지막 방어선이다.

“하늘을 우러러”라는 표현은 맹세의 공간을 만든다. 하늘은 누구의 편도 아니다. 누구도 매수할 수 없다. 하늘 앞에서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
윤동주는 사람 앞에서가 아니라 하늘 앞에서 자기 인생을 평가받고자 한다. 그래서 이 시의 첫 문장은 기도가 된다. 그러나 이 기도는 종교적 형식에 갇히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끝까지 지키고자 하는 절박한 자세다. ‘한 점’이라는 단위는 더욱 엄격하다. 크고 작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아주 작은 티끌 같은 부끄러움조차 남기지 않겠다는 마음. 이 엄격함이 윤동주의 문학을 신비롭게 만든다. 그는 거대한 악에 분노하기 전에, 자신 안의 작은 흐림부터 두려워한다.

다음 구절은 놀랍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바람은 죄가 없다. 잎새는 더더욱 죄가 없다. 그런데 시인은 바람에도 괴로워한다. 여기서 윤동주의 내면은 단숨에 드러난다. 그는 세상에 무감각해질 수 없는 사람이다. 누구나 지나칠 풍경에도 마음이 걸리는 사람이다. 그것은 예민함이 아니라 양심의 예민함이다. 시대가 사람을 무디게 만들 때, 윤동주는 끝내 무뎌지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바람이 스쳐도 괴롭다. 바람은 자연현상이지만, 그 바람이 자기 마음의 먼지까지 흔들어 놓기 때문이다. 윤동주의 괴로움은 상처가 아니라 깨어 있음의 증거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에서 〈서시〉는 한층 더 깊어진다. 별은 멀고 차갑지만, 별을 노래하는 마음은 따뜻하다. 윤동주에게 별은 아름다움이자 책임이다. 별을 바라보는 사람은 쉽게 타인을 짓밟을 수 없다. 별은 위로이면서 동시에 자기 검열의 거울이다. 그러므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한다는 말은 감상적인 연민이 아니다. 시대는 수많은 것을 죽이고 있었다. 인간의 존엄, 청춘의 꿈, 말의 자유, 진실의 숨결. 윤동주는 그 죽어가는 것들 앞에서 등을 돌리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가 사랑하겠다는 대상은 강한 것들이 아니라 ‘사라져 가는 것들’이다. 이 선택이 윤동주를 윤동주로 만든다. 그는 살아남는 기술을 익히기보다, 죽어가는 것들을 품는 마음을 지키려 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 이 문장이 이 시의 진짜 중심이다. 앞선 구절들이 윤동주의 내면이라면, 이 구절은 윤동주의 결단이다. 그는 ‘원하는 길’을 말하지 않는다. ‘주어진 길’을 말한다. 여기에는 시대의 가혹함을 받아들이는 체념이 아니라, 자기 몫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책임감이 있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함부로 꾸미지 않는다. 억지로 영웅이 되려 하지도 않는다.
다만 자신의 자리에서 끝까지 걸어가겠다고 말한다. 이 단순한 문장이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는, 윤동주가 그 길의 끝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걷겠다고 말한다. 이것이 윤동주의 아름다움이다. 그는 화려하게 살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고 말한다.

마지막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는 결말이면서도 시작이다. 시는 끝났는데, 장면은 계속된다. 별과 바람은 여전히 움직이고, 시인은 여전히 깨어 있다. 여기서 ‘오늘 밤에도’라는 말은 하루만의 고백이 아니라 매일의 반복임을 의미한다. 윤동주의 시는 한 번의 다짐으로 끝나지 않는다. 매일 밤 다시 다짐해야 하는 삶의 윤리다. 별이 바람에 스치는 장면은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은 편안하지 않다. 그 스침은 흔들림이고, 흔들림은 다시 괴로움으로 이어진다. 윤동주는 그 흔들림을 피하지 않는다. 흔들리면서도 부끄러움 없이 살기를 원한다.

〈서시〉가 지금도 많은 사람의 가슴을 두드리는 까닭은, 이 시가 ‘시인의 말’이기 전에 ‘인간의 말’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다. 그러나 누구나 쉽게 부끄러움을 타협한다. 윤동주는 그 타협의 순간을 가장 두려워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시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지 않는다. 오히려 낮은 자리에서 자신을 단련한다. 그 단련의 언어가 한 줄 한 줄 쌓여, 우리에게 묻는다. 오늘의 나는 무엇 앞에서 부끄러워하는가. 오늘의 나는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내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가.

윤동주의 〈서시〉는
부끄러움이 사라진 시대에, 부끄러움을 지키는 것이 가장 용기라는 사실을 말한다.
그 용기를 조용히 적어 놓은 페이지가, 지금도 별처럼 흔들리며 우리 마음을 비춘다.





■ 달삼과 오산학교 문예교사 청람의 대화
ㅡ문예반실, 겨울비와 눈 사이에서 지킨 한 줄의 윤리





겨울비와 눈이 섞여 내렸다.
비가 먼저 떨어지고, 눈이 늦게 내려앉았다. 운동장 흙은 검게 젖었고, 복도 창문에는 물방울이 길게 흘렀다. 바람이 한 번 지나갈 때마다 눈발이 휘어졌다가, 다시 비처럼 풀어졌다. 쌓이지 못하는 흰 것이 미련처럼 남았다가 사라졌다. 겨울은 늘 그런 방식으로 사람 마음을 건드렸다.

문예반실은 그날따라 더 조용했다.
교실 끝자리에는 낡은 시집 몇 권이 겹쳐져 있었고, 칠판 한쪽엔 누군가 적어 둔 짧은 문장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난방이 세지 않은 방, 그러나 이상하게도 따뜻함이 있는 방. 말이 많지 않아도 마음이 오래 머무르는 방. 청람은 창문을 조금 열어 두었다. 추위를 들이려는 것이 아니라, 밖의 소리를 들여놓기 위해서였다. 겨울비와 눈이 섞인 소리는 이상하게 사람을 정직하게 만들었다.

그때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달삼이 들어왔다. 교복 소매 끝은 젖어 있었고, 어깨에는 녹아버린 눈이 잔뜩 묻어 있었다. 그는 털어내지 않았다. 털어내면, 오늘이라는 날의 감각까지 함께 떨어질 것 같았다.
교복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펴는 손이 유난히 단정했다. 젊은 손인데, 벌써 오래된 슬픔을 만져 본 손처럼.

“선생님… 오늘은 눈도 아니고 비도 아니고, 둘이 섞여서 내려요.”

달삼이 창밖을 잠깐 보더니, 종이를 조심스럽게 펼쳤다. 종이도 겨울 습기를 먹어 모서리가 약간 눅눅했다.

“그래서인지 이 시가… 더 무섭게 들립니다.”

청람은 그 말을 듣고도 놀라지 않았다. 윤동주의 시는 사람을 달래기 전에 먼저 흔들어 깨우는 쪽에 가까웠다. 그 무서움은 공포가 아니라, 양심이 깨어나는 소리였다.

“무섭다는 건 네 안에서 무언가가 깨어났다는 뜻이다.”

달삼은 고개를 끄덕이고 시를 읽기 시작했다. 교복 깃 사이로 새어 나오는 목소리가 낮았다. 낮은 목소리는 겨울 교실에 더 오래 남는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달삼은 그 자리에서, 문장을 내려놓지 못했다. 마치 눈송이 하나가 손등 위에서 녹지 못하고 버티는 것처럼 그 말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은, 단지 아름다움이 아니라 어떤 논쟁의 불씨까지 함께 들고 있었다.
달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사실 이 대목이요.”

그의 목소리가 한 톤 더 낮아졌다.

“맹자의 군자삼락 중 두 번째 구절을 가져온 거라고… 표절 시비가 있다지 않나요.”

문예반실 공기가 순간 더 차가워진 듯했다.
창문 틈으로 들어온 겨울 기운이 아니라, 말 하나가 가진 무게 때문이었다. 달삼은 말을 마치고도 눈을 내리지 못했다. 질문은 질문이지만, 이 질문에는 ‘윤동주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함께 섞여 있었다.
청람은 그 질문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책상 위의 시집을 천천히 옆으로 밀었다. 윤동주를 숨기려 하지 않는 동작이었다. 그리고 분명하게 말했다.

“달삼아. 그건 표절이 아니다.”

말이 짧았다. 짧아서 더 단단했다.
달삼이 곧바로 반문했다.

“하지만… 너무 비슷하지 않습니까?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이 없기’라는 이 말이요.”

청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할 건 인정하는 사람처럼.

“비슷하다. 닮았다. 그건 사실이다.”

그리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닮았다고 해서 곧바로 훔친 건 아니다.”

달삼이 숨을 삼켰다.
청람은 말을 이어 갔다. 문예반실의 불빛이 그의 이마에 얇게 내려앉았다. 영화에서 인물의 눈빛을 클로즈업하듯, 그 순간의 청람은 ‘교사’라기보다 ‘문학의 법’을 설명하는 증인처럼 보였다.

“고려시대 이인로가 있다. 『파한집』을 남긴 그 문인.”

청람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정확한 단어를 골라 꺼냈다.

“그가 ‘용사론用事論’이라는 문예창작의 원리를 말한다.”

달삼이 눈을 크게 떴다.

“용사론用事論이요?”

“그래.”

청람은 칠판 쪽을 바라보며, 마치 오래된 강의를 다시 꺼내듯 말끝을 고르게 다듬었다.

“남의 글을 가져와도, 그걸 그대로 붙여 놓는 게 아니라
자기 작품 안에서 숨처럼 자연스럽게 살게 만드는 것.
그 또한 창작의 기술이고 문학의 전통이다.”

달삼은 여전히 불안한 얼굴이었다.
그 불안은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윤동주가 상처 입는 것을 싫어해서였다.

“그럼 선생님, 윤동주는 맹자를… 의도적으로 가져온 겁니까?”

청람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윤동주는 ‘가져왔다’고 보이지만, 사실은 ‘살았다’고 보는 게 맞다.”

청람의 목소리가 아주 낮아졌다.

“그는 맹자의 문장을 인용해 멋을 낸 게 아니다.
그 문장의 윤리를 자기 피로 만들었다.”

달삼이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피로 만들었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청람은 창밖을 가리키지 않았다.
대신 달삼의 교복 소매 끝을 바라보았다. 젖은 천이 차갑게 붙어 있었다. 시가 추상으로 들릴 때, 청람은 늘 구체로 내려앉혔다.

“달삼아, 네 교복이 젖었다.
비와 눈이 너를 지나갔기 때문이다.”

청람이 말했다.

“그 흔적이 네가 바깥에 있었다는 증거다.
윤동주의 문장도 그렇다.
그가 맹자의 말을 ‘지나갔다’ 면 흔적만 남고 끝났겠지.
그런데 윤동주는 그 문장을 ‘살았다’.
살아버리면 문장은 더 이상 남의 것이 아니다.”

달삼의 눈빛이 조금 풀렸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확인을 위해 다시 물었다.

“그러면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이 없기’는
윤동주의 것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청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그리고 결정적인 차이를 짚었다.

“맹자의 구절이 윤리의 격언이라면, 윤동주의 이 문장은
시대 속에서 피 흘리는 한 청년의 서약이다.
같은 문장처럼 보여도, 결이 다르다.
맹자는 ‘군자’를 말했고, 윤동주는 ‘자기’를 말한다.
군자는 관념이지만, 윤동주는 실존이다.”

달삼은 그 대목에서 숨을 내쉬었다.
마치 무거운 돌 하나를 가슴에서 내려놓는 사람처럼.
청람은 그때, 달삼의 종이 위 문장을 다시 바라봤다.
그리고 조용히 덧붙였다.

“용사론의 핵심은 이거다.
남의 말을 빌려도, 그 말을 자기 심장에 맞게 바꾸어 살아내면
그건 도둑질이 아니라, 문학의 계승이다.”

달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잠시 말을 잃었고, 그 침묵은 사과가 아니라 이해였다.
달삼은 다시 시를 읽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그가 조용히 물었다.

“선생님… 윤동주는 왜 바람에도 괴로워합니까.”

청람은 단호하게 답하지 않았다.
단호함은 이미 앞에서 충분히 썼다. 여기서는 사람의 마음을 다독이는 방식이 더 어울렸다.

“바람이 죄가 있어서 괴로운 게 아니다.”

청람이 말했다.

“바람은 흔든다.
윤동주는 그 흔들림 앞에서 자기 마음이 흔들리는 걸 봤다.
그리고 그 흔들림을 모른 척하지 않았다.”

달삼은 눈을 내리깔았다.
자기도 그렇게 흔들렸던 날들이 떠올랐을 것이다.
친구 앞에서 웃으면서도, 집에 가면 이유 없이 마음이 무거워졌던 날들.
말 한마디를 괜히 던지고 돌아서서 후회했던 날들.
달삼이 다음 구절을 읽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달삼이 문장 끝에서 잠깐 멈췄다.

“선생님, ‘죽어가는 것’을 사랑한다는 말은… 너무 큽니다.”

청람은 책상 위의 종이컵을 달삼 쪽으로 밀어주었다.
말보다 먼저 건네는 온기. 영화 속에서 주인공의 손이 떨릴 때, 카메라가 먼저 컵을 비추는 것처럼.

“윤동주의 시대엔 죽어가는 게 많았다.”

청람이 말했다.

“나라만 죽어가는 게 아니었다.
꿈도 죽어가고, 말도 죽어가고, 사람의 마음도 죽어갔다.”

그리고 조용히 덧붙였다.

“그런데 그는 끝까지 ‘사랑해야지’라고 한다.
이건 감상이 아니라 결심이다.”

달삼은 종이를 넘기듯, 시의 다음을 읽었다.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달삼이 말했다.

“선생님… 윤동주는 왜 ‘선택한 길’이 아니라 ‘주어진 길’이라고 합니까?”

청람은 그 질문에서 윤동주의 진짜 얼굴이 보인다고 생각했는지, 눈빛이 잠깐 깊어졌다.

“윤동주는 자기를 과장하지 않는다.”

청람이 말했다.

“선택했다고 말하면 멋있다.
하지만 주어졌다고 말하면… 더 무겁다.”

그는 잠시 멈췄다가, 아주 조용히 이어 붙였다.

“그 무게를 안고도 걷겠다는 게 윤동주의 용기다.”

달삼은 마지막 구절을 읽었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그는 종이를 접지 않았다.
접어 버리면, 별이 사라질 것 같았다.
달삼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선생님, 이 시는 끝난 것 같은데… 왜 끝난 느낌이 없습니까.”

청람이 창문 밖을 바라봤다.
비와 눈이 섞여 내리는 운동장은 어둡고, 그 어둠 위로 가로등 빛이 번졌다. 번진 빛은 선명하지 않았지만, 사라지지도 않았다.

“윤동주는 결말을 폭발로 만들지 않는다.”

청람이 말했다.

“그는 결말을 ‘계속되는 밤’으로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 한마디가 떨어졌다.

“별이 스친다는 말은, 오늘도 흔들리면서도
끝내 하늘을 보겠다는 뜻이다.”

달삼은 입술을 살짝 열었다가 닫았다.
말을 더 얹으면 이 장면이 깨질 것 같았다.
그는 종이를 조심스럽게 접어 교복 주머니에 넣었다.
그 동작이 마치 다짐처럼 보였다.
문예반실 문을 열고 나가기 전, 달삼이 한 번 뒤돌아봤다.

“선생님.”

그가 말했다.

“그럼… 맹자의 말을 빌린 게 아니라,
윤동주가 윤동주로 살아낸 거네요.”

청람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딱 한 문장만 남겼다.

“문장은 빌릴 수 있어도, 삶은 못 빌린다.”

복도 끝으로 달삼의 교복 뒷모습이 멀어졌다.
겨울비와 눈은 여전히 섞여 내렸다.
쌓이지 못하는 흰 것들이 미련처럼 사라졌다가, 또 나타났다.
그러나 문예반실 안에는
그날의 별 하나가 오래 남아 있었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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