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또 다른 고향〉 ㅡ 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김왕식 문학평론가]
윤동주 시인 - 제1부 부끄러움의 시작
- 5편








또 다른 고향



윤동주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 곱게 풍화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 윤동주의 〈또 다른 고향〉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윤동주의 〈또 다른 고향〉은 ‘귀향’의 정서를 노래하는 시가 아니다. 이 시에서 고향은 따뜻한 품이 아니라, 인간 존재를 끝까지 추궁하는 심문실에 가깝다. 돌아온 고향의 밤은 위로가 아니라 냉혹한 자각으로 시작한다.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 내 백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살아 있는 ‘나’와 죽은 ‘나’가 한 방에 눕는다. 이 장면은 공포를 만들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윤동주가 자신의 삶을 얼마나 정직하게 바라보았는지를 드러내는 고백이다. 그는 죽음을 먼 데서 불러오지 않는다. 죽음은 이미 자신을 따라다니는 그림자이며, 결국 자기 자신의 진실을 확인하는 최후의 증거다. 백골이 ‘있다’가 아니라 ‘따라왔다’는 표현은 의미심장하다.

윤동주에게 죽음은 정지된 결과가 아니라, 조용히 뒤따라오는 현실이다. 고향에 와서야 비로소 그 현실이 더 선명해진다.

이어지는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는 윤동주의 시적 시야가 얼마나 넓고 깊은지를 보여 준다. 방은 좁다. 그러나 그 좁음이 오히려 우주로 열리는 역설이 된다. 사람은 군중 속에서 자신을 잊지만, 고독 속에서 자신에게 닿는다.

윤동주에게 ‘어둔 방’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자리다. 그 자리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자연의 바람이 아니라 양심의 바람이다.
“소리처럼” 불어온다는 것은, 그것이 눈에 보이는 사건이 아니라 들려오는 내면의 호출이라는 뜻이다. 이 시의 공기는 차갑지만, 그 차가움은 절망이 아니라 깨어 있음이다.

시의 핵심은
“어둠 속에 곱게 풍화작용하는 / 백골”이라는 대목에서 드러난다. 윤동주는 죽음을 처참하게 묘사하지 않는다.
외려 “곱게”라는 단어를 놓는다. 여기서 ‘곱게’는 죽음을 미화하는 말이 아니다.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정신을 함부로 흐트러뜨리지 않겠다는 태도이며, 비참함에 휩쓸리지 않겠다는 품위다. 윤동주의 언어는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다. 감정을 절제한 채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간다. 그래서 그는 묻는다.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 백골이 우는 것이냐 /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울음의 주체를 셋으로 나누는 이 질문은 단순한 슬픔의 토로가 아니라, 고통의 근원을 끝까지 확인하려는 윤리적 태도다. ‘나’의 울음은 개인의 연약함에서 온다. ‘백골’의 울음은 이미 예정된 운명에서 온다.
그런데 윤동주가 마지막에 붙잡는 것은 “아름다운 혼”의 울음이다. 여기에서 윤동주의 시는 사적인 비애를 넘어선다. 시대가 한 인간의 혼을 아름답게 유지하기 어려운 자리로 몰아넣었을 때, 그 혼이 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윤동주는 그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가장 조용한 문장으로 그 울음을 드러낸다.

이어지는 “지조 높은 개는 /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는 이 시에서 가장 낯설면서도 강렬한 장면이다. ‘개’는 흔히 본능과 충성의 상징이지만, 윤동주는 그 개에게 ‘지조’라는 가장 높은 윤리적 단어를 부여한다. 이는 인간이 해야 할 일을 인간이 못 하는 시대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사람이 침묵하는 동안, 개는 어둠을 향해 짖는다. 밤을 새워 짖는다는 것은 잠깐의 분노가 아니라 지속되는 경계다. 윤동주의 양심은 늘 이렇게 밤샘의 형태로 나타난다. 다만 그는 그 양심을 거창한 선언으로 말하지 않고, 개의 짖음으로 낮춰서 보여 준다. 그 낮춤이 더 무섭다. 문학은 높은 말이 아니라, 낮은 장면에서 진실을 증명할 때 더 강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는 결정적인 고백에 이른다. “어둠을 짖는 개는 /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개가 어둠을 짖는다면 어둠을 쫓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윤동주는 자신이 쫓긴다고 말한다. 이 문장은 윤동주의 정신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 준다. 그는 악을 바깥에만 두지 않는다. 그는 어둠을 남 탓으로만 돌리지 않는다. 어둠은 내 밖에 있으면서 동시에 내 안에도 있다. 그래서 윤동주의 시는 고발로 끝나지 않고 자책으로 깊어진다. 그 자책은 자기혐오가 아니라, 자기 감시다. 자기 영혼을 끝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마지막 긴장이다.

마지막으로 시는 절박한 이동의 명령으로 닫힌다.

“가자 가자 /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 백골 몰래 /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여기서 ‘가자’는 희망찬 출발이 아니다. 생존의 발걸음이다. 윤동주는 쫓기우는 사람처럼 간다고 말한다. 이는 단지 개인의 불안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한 인간을 어디까지 몰아붙이는지를 증언한다. 그런데도 그는 ‘아름다운’이라는 말을 끝까지 놓지 않는다. 윤동주가 말하는 “또 다른 고향”은 지리적 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윤리가 보존되는 자리, 혼이 더럽혀지지 않는 자리, 부끄러움이 죄가 되지 않는 자리다.
이 시에서 현실의 고향은 이미 백골을 데려오는 곳이 되었고, 개가 어둠을 짖어야 하는 곳이 되었다. 그러므로 윤동주는 현실의 고향을 넘어선 ‘또 다른’ 곳을 꿈꾼다. 그 꿈은 도피가 아니라, 인간으로 남기 위한 최후의 선택이다.

〈또 다른 고향〉의 감동은 눈물의 크기에서 오지 않는다. 이 시의 감동은 끝까지 흔들리면서도 자기 영혼의 방향을 잃지 않으려는 절제에서 온다. 윤동주는 시대의 폭력 앞에서 울부짖지 않는다. 대신 한 방에 백골을 눕혀 놓고 조용히 묻는다. 내가 우는가, 백골이 우는가, 아름다운 혼이 우는가. 그리고 마지막에 말한다. 가자, 몰래 가자. 이 낮고 조용한 결심이야말로 윤동주 문학의 품격이다. 그는 살아남으려 애쓰면서도, 살아남는 방식이 인간다움을 잃는 방식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 바람이 이 시를 지금까지도 맑게, 그리고 아프게 빛나게 한다.





■ 달삼과 오산학교 문예교사 청람의 대화




복도 끝에서 “철컥” 하는 소리가 났다.
야간자율학습 시작을 알리는 출입문 잠금 소리였다. 학교는 밤이 되면 거대한 배처럼 문을 닫는다. 그 안에 남은 학생들은 각자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교실이든, 마음이든.
문예반실에는 스탠드 하나만 켜져 있었다.
천장 형광등은 꺼져 있었고, 불빛은 책상 위에만 둥글게 모여 있었다. 빛이 작을수록 사람은 더 깊어지는 법이다. 창문에는 김이 얇게 서렸고, 누군가 손가락으로 그은 자리가 물길처럼 남아 있었다. 바깥은 아직 겨울이 아니었는데, 바깥보다 방 안이 먼저 겨울로 들어가 있었다.

청람은 칠판 앞에 서서 분필을 쥐고 있었다.
‘고향’이라는 단어를 쓰려다 말고,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고향은 돌아가는 곳인가, 빠져나오는 곳인가’

그때 문이 열렸다.
달삼이 들어왔다.
교복은 단정했지만 숨이 조금 가빴다. 뛰어온 얼굴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땀 때문이 아니라 어떤 문장 때문인 얼굴이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지 않았다. 대신 손을 펼쳐 보였다. 손바닥에 볼펜 자국이 파랗게 번져 있었다. 급히 메모한 흔적이었다.

“선생님.”

달삼이 먼저 말했다.

“오늘은… 시를 종이로 들고 오지 않았습니다.”

청람이 고개를 들었다.

“왜.”

달삼이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여기다 써놨습니다. 무서워서요.”

달삼이 손바닥을 주먹처럼 오므렸다.

“주머니에 넣으면, 이 문장이 제 안에서 더 커질 것 같아서요.”

청람은 잠깐 웃었다. 짧고 조용한 웃음이었다.

“시가 사람을 잡아당기는 날이 있지.”

달삼이 숨을 고르고, 손바닥에 적힌 첫 문장을 읽었다.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달삼은 끝까지 읽지 못했다.
그 문장 끝에서, 눈이 청람에게 붙었다.

“선생님… 이게 말이 됩니까?”

달삼이 낮게 말했다.

“살아서 돌아온 고향인데, 왜 백골이 따라옵니까?
왜 하필 ‘따라와’입니까?
백골이 원래 거기 있었던 것도 아니고… 따라온다는 건…
마치 자기를 쫓아오는 것 같잖아요.”

청람은 달삼의 질문을 바로 잡지 않았다.
질문이 이미 정답을 절반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달삼아.”

청람이 말했다.

“윤동주에게 고향은 휴식이 아니다.”

달삼이 고개를 들었다.

“그럼 고향이 뭡니까.”

청람이 칠판에 적어둔 문장을 가리켰다.

“돌아가는 곳이 아니라…
빠져나오고 싶은 곳이 되기도 한다.”

달삼의 눈빛이 흔들렸다.

“선생님, 고향이 어떻게 사람을 밀어냅니까.”

청람은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구체적으로 말했다.

“고향은 네가 어릴 때의 너를 알고 있잖아.
너의 순진함도 알고, 너의 약속도 안다.
그래서 고향에 돌아가면…”

청람이 낮게 이어 말했다.

“현재의 네가 그 약속을 지켰는지
과거의 네가 묻는다.”

달삼이 숨을 삼켰다.

“그 질문이… 백골입니까?”

청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골은 미래의 죽음이기도 하지만,
과거의 너다.
살아 있으되 이미 끝난 순수, 이미 닳아버린 결심.”

청람은 한마디를 더했다.

“윤동주는 그것이 ‘따라온다’고 느낀 거다.”

달삼은 손바닥을 다시 펼쳤다.
손바닥의 잉크가 땀에 살짝 번져 있었다. 문장이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그럼 ‘한 방에 누웠다’는 건…”

달삼이 물었다.

“같이 잔다는 뜻입니까?”

청람이 말했다.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피할 수 없다는 뜻이요?”

“그래.”

청람은 단정하게 말했다.

“사람은 도망칠 수 있다.
친구에게도, 세상에도, 심지어 고향에도.
그런데 자기에게는 못 도망친다.
윤동주는 그걸 알고 있었다.”

달삼은 그 말이 갑자기 무거워져, 어깨가 조금 처졌다.
달삼은 두 번째 연을 떠올리듯 말했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그리고 눈을 들었다.

“선생님, 여기서 진짜 이상합니다.
방이 우주로 통한다는 건, 멋있긴 한데…
왜 하필 ‘어둔 방’입니까?
윤동주는 왜 늘 어둠 속에서 우주를 봅니까?”

청람은 달삼의 질문에 답을 주기 전에, 스탠드 불빛을 조금 낮췄다.
빛이 줄어들자 방 안의 어둠이 더 분명해졌다.

“달삼아.”

청람이 말했다.

“우주는 원래 밝아서 보이는 게 아니다.
어둠이 있어야 별이 보인다.”

달삼이 멈췄다.
그 말이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한 사람의 생을 요약하는 문장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청람이 이어 말했다.

“윤동주의 방이 어두운 이유는,
그가 어둠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 시대가 그를 어둡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 어둠 속에서 그는 도망치지 않고
더 멀리 본다.
그래서 방이 우주로 통한다.”

달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라기보다, 받아들임이었다.
그는 세 번째 연을 말했다.
말이라기보다, 자신에게 확인하는 중얼거림이었다.

“어둠속에 곱게 풍화작용하는 백골…”

달삼은 여기서 다시 멈췄다.

“선생님, 이 단어요. ‘곱게’.”

달삼이 혀끝으로 단어를 굴렸다.

“죽음이 곱다는 말은… 잔인합니다.”

청람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잔인이 아니다.”

청람은 단호하면서도 조용했다.

“윤동주가 자기에게 남겨둔 마지막 예의다.”

달삼이 눈을 크게 떴다.

“예의요?”

“그래.”

청람이 말했다.

“죽음을 대하는 예의가 아니라,
자기 삶을 대하는 예의다.”

청람은 천천히 문장을 조립했다.

“사람은 무너질 때 문장이 흐트러진다.
윤동주는 무너질수록 더 단정해진다.
그 단정함이 ‘곱게’다.”

달삼은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문장이 더 선명해 보였다.
그는 이어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여기요.”

달삼이 말했다.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왜 울음을 셋으로 나눕니까?
그냥 내가 운다고 하면 되잖아요.”

청람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달삼아, 울음이 하나면 감정이다.”

그는 한 박자 쉬었다.

“울음이 셋이면… 심판이다.”

달삼이 되물었다.

“심판이요?”

“그래.”

청람이 말했다.

“윤동주는 자기 울음이 단순한 슬픔인지,
운명 때문인지,
아니면 혼 자체가 훼손되는 시대 때문인지
끝까지 판결을 내리려 한다.”

그리고 더 낮게 말했다.

“그게 윤동주의 시다.
울음도 그냥 두지 않는다.”

달삼은 다음 연로 넘어갔다.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달삼은 이번엔 질문이 아니라, 얼굴 표정으로 먼저 물었다.
‘왜 갑자기 개냐’는 표정이었다.
청람이 먼저 답했다.

“개가 갑자기 나온 게 아니다.”

청람이 말했다.

“윤동주가 일부러 데려온 거다.”

달삼이 물었다.

“왜요?”

청람의 대답은 예상과 달랐다.

“윤동주는 인간이 어둠을 짖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는 걸 알았다.”

청람이 말했다.

“사람은 계산을 한다.
짖으면 손해인지, 살 수 있는지.”

청람은 짧게 말했다.

“개는 계산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조가 된다.”

달삼이 순간 웃음을 흘릴 뻔하다가, 곧 입을 다물었다.
웃음이 아니라 통증이었기 때문이다.
달삼이 다시 읽었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달삼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선생님… 여기서 윤동주는 왜 자기를 쫓깁니까?
어둠을 짖는다면 어둠이 도망가야 하는데…
왜 윤동주가 도망칩니까?”

청람은 그 질문을 기다린 듯했다.
그래서 아주 짧게 말했다.

“윤동주는 어둠을 남에게만 두지 않았다.”

달삼이 눈을 내리깔았다.

“어둠이… 내 안에도 있다는 뜻이군요.”

청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청람은 단단히 말했다.

“윤동주의 윤리는 ‘고발’이 아니다.
‘동참하지 않기’다.
자기 안의 어둠에 끌려가지 않기.”

달삼은 마지막으로, 시의 끝을 말했다.
이때 그의 목소리는 거의 숨처럼 얇아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달삼이 마지막 단어를 뱉고, 그대로 굳었다.

“선생님.”

달삼이 말했다.

“이게 제일 이상합니다.
‘몰래’요.
왜 몰래 갑니까?
왜 이렇게까지 조용히 도망갑니까?”

청람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책상 위 스탠드 불빛을 다시 조금 올렸다.
빛이 커지자, 방 안의 사물이 다시 보였다. 낡은 시집, 필통, 의자, 젖은 창틀.
그리고 청람이 말했다.

“달삼아.”

“몰래 간다는 건 비겁함이 아니다.”

그는 짧게 끊었다.

“윤동주의 시대에서는…
윤리를 지키는 일 자체가 이미 ‘몰래’ 해야 하는 일이었다.”

달삼이 눈을 들었다.

“윤리를 몰래 지킨다…”

청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크게 외치면 들킨다.”

청람이 낮게 말했다.

“들키면 부서진다.
그래서 그는 몰래 간다.”

그리고 마지막 한마디를 붙였다.

“윤동주는 도망치는 게 아니라,
혼을 옮기는 거다.”

달삼은 한참 말이 없었다.
손바닥의 잉크가 이제 거의 지워져 가고 있었다.
문장도, 오늘도, 사람의 손바닥 위에서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듯이.
달삼이 조용히 물었다.

“선생님… ‘또 다른 고향’은 결국 어디입니까?”

청람은 창밖을 봤다.
운동장 끝 가로등 아래로 눈인지 비인지 알 수 없는 것이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쌓이지 못하는 흰 것들이 어둠을 더 환하게 만들었다.
청람이 말했다.

“네가 끝까지 너를 배반하지 않는 자리.”

그리고 덧붙였다.

“그게 고향이다.”

달삼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종이를 들고 오지 않았지만, 오늘은 시가 그의 손바닥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시가 그의 얼굴에 남아 있었다.
처음 들어올 때와 다른 눈빛. 조금 더 단단해진 눈빛.
달삼이 문예반실 문을 닫으며,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남겼다.

“선생님…
저도 언젠가 제 ‘또 다른 고향’을 찾게 될까요.”

청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책상 위 시집을 다시 펼쳤다.
그가 읽지 않은 구절이 아니라,
그가 살아야 할 구절이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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