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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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백 년에 한 번 오는 2월
올해 2월 달력은
이상하리만큼 꽉 차 있다.
틈이 없다.
하얀 여백이 숨을 쉴 자리조차 없이
숫자들이 정갈한 행렬을 이루고 있다.
마치 “한 칸도 허투루 쓰지 말라”는 듯
달력 자체가 단단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사람은 보통 2월을
짧아서 좋은 달이라 말한다.
덜 버티면 되니까,
덜 견디면 되니까.
헌데, 올해 2월은 다르다.
짧은 달이면서도
빈칸을 허락하지 않는다.
보통의 2월이 “쉬어갈 숨”을 남겨 둔다면,
올해의 2월은
숨조차 “일정”으로 적어 두는 달이다.
더 신기한 것은
그 꽉 찬 달력이
어설픈 혼잡이 아니라
완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몇 백 년에 한 번쯤 나타난다는
정교한 배열의 2월.
날짜들은 서로 부딪히지 않고,
요일들은 흔들림 없이 맞물려
한 장의 설계도처럼 가지런하다.
어느 누구의 손도 빌리지 않은 채
시간이 스스로 건축해 낸
정밀한 집 한 채 같다.
달력은 원래
시간을 담는 그릇이다.
올해 2월의 달력은
그릇이 아니라
쇠로 만든 틀처럼 보인다.
이 달을 지나려면
느슨한 마음은 통과하지 못한다.
대충 살던 습관,
미루던 버릇,
흐릿한 결심은
이 달력 앞에서
자연히 납작해진다.
완벽한 구조라는 것은
아름다움이면서 동시에
사람을 긴장시키는 질서다.
그렇다고 해서
올해 2월이 차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외려 이 빽빽함 속에는
묘한 위로가 있다.
비어 있는 날이 없다는 것은
허무가 파고들 틈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을 흔드는 것은
대개 바쁨이 아니라
멈춰 선 시간의 공백이다.
그 공백에서
쓸쓸함이 자라고
후회가 고개를 들며
불안이 마음을 점령한다.
올해 2월은
그 허술한 틈을 주지 않는다.
달력이 꽉 차 있다는 건
삶이 도망갈 구멍이 없다는 것.
결국 나 자신을
정면으로 만나야 한다는 뜻이다.
이 달은
가랑비처럼 작고 촘촘한 날들이
한꺼번에 내려앉는 달이다.
큰 사건보다
작은 반복이 무게를 갖는다.
하루를 살아내는 일이
어느새 장인이 하는 작업처럼
정교해진다.
시간은 말을 하지 않지만
달력의 구조는 말한다.
“흔들리지 말아라.
네 하루를 네 손으로 채워라.”
하여, 올해 2월은
그 자체로 하나의 메시지다.
완벽한 배열은
완벽한 인생을 뜻하지 않는다.
하지만 완벽한 배열은
완벽을 향해 가는 태도를 요구한다.
허투루 넘기지 않는 눈,
대충 살지 않는 손,
흘려보내지 않는 마음.
그런 태도만이
이 촘촘한 달을 품을 수 있다.
달력의 빈칸은
사람에게 쉼을 주기도 하지만
사람에게 핑계도 준다.
올해 2월은 그 핑계를 거두어 간다.
대신
가장 단순한 문장을 남긴다.
“너는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가.”
꽉 찬 달력은
삶을 압박하는 종이가 아니라
삶을 세우는 설계도다.
올해 2월은
몇 백 년에 한 번 오는
완벽한 구조의 달.
그 달이 우리에게 주는 진짜 선물은
시간이 아니라
시간을 다루는 자세다.
이 2월을 지나며
적는다.
빈칸이 없어서 힘든 달이 아니라,
빈칸이 없기에
마음이 무너지지 않는 달이었다고.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