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지는 곳, 경회루가 피어난다 ㅡ청람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비가 지는 곳, 경회루가 피어난다



청람 김왕식





경회루의 아름다움은 늘 ‘설명하는 사람’보다 ‘지키는 사람’이 먼저 안다.
경복궁 경회루 앞 경비 아저씨는 하루 종일 그 자리에 서 있지만, 사실은 그 자리에서 시간을 맡아 지키는 사람이다. 관광객은 사진을 찍고 떠나지만, 그는 계절이 바뀌는 방식까지 본다. 벚꽃이 피는 속도, 소나기가 지나간 뒤 공기가 씻겨 나가는 냄새, 연못 위로 바람이 미끄러질 때 물결의 결이 어떻게 달라지는지까지. 경회루는 그에게 ‘경치’가 아니라 ‘살아 있는 하루’로 남는다.


사시사철을 매일 보는 눈에는, 아름다움이 늘 같은 모양으로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이 먼저 들어온다. 봄의 경회루는 빛이 조금 성급하다. 초록이 다 자라기 전에 먼저 반짝이며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여름은 더 깊다. 나무들이 잎을 크게 펼쳐 그늘을 만들면, 경회루는 그늘 속에서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가을엔 햇살이 낮아지며 기둥과 처마가 길게 드리운다. 겨울에는 모든 것이 비어 있어, 경회루가 오히려 본래의 뼈대를 드러낸다. 그때의 경회루는 장식이 아니라, 오래 버틴 문장의 골격처럼 아름답다.


유홍준 선생이 그에게 물었다고 한다.
“경회루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언제인가요?”
아마 그 질문은 전문가가 가진 질문이었을 것이다. 정답을 찾기 위한 질문, 의미를 얻기 위한 질문. 그러나 경비 아저씨의 대답은 아름다움을 ‘정답’이 아니라 ‘순간’으로 돌려놓았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말했을 것이다. 장마철 비가 내릴 때, 빗방울이 경회루 연못에 떨어져 방울방울 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때라고.


그 말이 참 좋다.
‘지는 모습’이라는 말은 원래 꽃에게 붙는 말인데, 그는 빗방울에게 그 말을 붙였다. 빗방울도 꽃처럼 진다. 떨어지는 것은 끝이 아니라, 연못 위에서 잠깐 피었다가 사라지는 일이다. 빗방울 하나가 연못에 닿는 순간, 작고 둥근 파문이 생긴다. 그 파문은 누군가의 마음이 흔들릴 때처럼 원을 그리며 번지고, 다른 빗방울의 원과 만나며 조용히 겹친다. 수천 개의 작은 원들이 서로를 침범하지도, 밀어내지도 않고, 그저 겹치며 새로운 무늬를 만든다. 그 무늬는 오래 남지 않지만, 오래 남는 것들보다 더 오래 기억된다.
경회루는 그 장마의 연못을 거울로 삼는다.


연못은 하늘을 비추고, 경회루는 그 하늘을 다시 받아 올린다. 그래서 경회루 앞에 서면, 사람이 보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물 위에 잠깐 떠오른 시간의 얼굴이다. 비가 오는 날, 경회루는 화려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고요해진다. 관광객의 말소리도 줄어들고, 발걸음도 느려진다. 그때 비는 궁궐을 울리는 것이 아니라, 궁궐의 침묵을 더 완성해 준다.


경비 아저씨는 그 침묵의 번역자다.
하루에도 수없이 “여기서 사진 찍으세요”라고 말하고, “난간 밖으로 손 내밀지 마세요”라고 안내하며, 안전을 지키는 일이 그의 임무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가장 오래 하는 일은 사실 ‘바라보기’다. 아무도 손뼉 치지 않는 시간 속에서 아름다움을 읽어내는 일. 유명한 설명이 없어도, 화려한 문장이 없어도, 오직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만 얻는 감각이 있다. 그 감각은 대개 조용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놓친다. 그러나 지키는 사람은 놓치지 않는다.
장마철의 빗방울이 방울방울 연못에 지는 모습을 보는 순간, 그는 아마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세상에는 떨어져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야 물이 되고, 물이 되어야 하늘을 비출 수 있다. 비는 하늘의 눈물이 아니라, 하늘이 지상에 보내는 얇은 편지인지도 모른다. 읽는 사람만 읽는다. 대부분은 우산으로 가리고 지나간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 편지를 굳이 펴서 읽는다. 그 사람이 경회루를 지키는 사람이다.


경회루의 아름다움은, 결국 그 자리를 오래 지킨 사람의 눈빛 안에서 완성된다.
우리는 늘 ‘특별한 날’을 찾지만, 그는 특별함이 찾아오는 방식을 알고 있다. 특별함은 축제처럼 오지 않는다. 빗방울 하나가 연못에 닿는 소리처럼 온다. 눈에 잘 띄지 않게, 그러나 확실하게. 그리고 그것은 오래 바라본 사람에게만 제 모습을 준다.
그래서 경회루 앞에 서면 이런 마음이 생긴다.
아름다운 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래 바라보는 데서 태어난다는 것.


삶도 어쩌면 그렇다는 것.
계절이 바뀌는 것을 매일 보는 사람만이, 오늘의 빛이 어제와 다르다는 사실을 안다.
경회루는 그 사실을 말없이 가르치고,
경비 아저씨는 그 수업의 가장 성실한 학생으로, 오늘도 그 자리에서 비를 바라본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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