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인 - 제1부 부끄러움의 시작 - 10편

윤동주 '별 헤는 밤'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김왕식 문학평론가]
윤동주 시인 - 제1부 부끄러움의 시작
- 10편






별 헤는 밤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들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오.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오.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따는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1941,11.5)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은 별을 세는 시가 아니다. 이 작품은 한 인간이 자기 이름을 어떻게 감당하는가를 묻는 시이며, “부끄러움”이라는 윤동주 시세계의 첫 문이 어디서 열리는지를 가장 맑고도 아프게 보여 주는 시다.

하늘의 별은 아름다움이지만, 윤동주에게 별은 기억의 단위이고, 양심의 단위이며, 그리움이 붙는 자리다. 하여, 이 시는 풍경을 노래하는 듯 시작하지만, 끝내 한 사람의 존재론으로 깊어진다. 별빛이 내리는 밤은 낭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숨길 수 없는 시간이다.

첫 연의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는 계절의 묘사가 아니다. 가을은 윤동주에게 성숙의 계절이며, 잎이 떨어지듯 불필요한 것이 벗겨지는 계절이다. 하늘이 가을로 가득하다는 말은, 세계가 조용히 정리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 정리의 시간 속에서 시인은 “아무 걱정도 없이 /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아무 걱정도 없이’는 실제로 근심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외려 근심이 너무 커서, 잠시 별을 세는 행위로 마음을 붙들려는 태도다. 윤동주는 늘 큰 고통을 큰 말로 말하지 않는다. 대신 가장 고요한 방식으로 버틴다. 별을 세는 일은 그에게 도피가 아니라 정돈이다.

이어지는 연에서 윤동주의 청춘은 ‘희망’이 아니라 ‘유예’로 드러난다.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오. /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오. /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을 다 헤지 못한 이유를 아침 때문이라 말하면서도, 사실은 인간의 마음이 다 담아내지 못한 기억과 감정 때문임을 독자는 안다.
다만 윤동주는 그것을 절망으로 말하지 않는다. 내일 밤이 남았다고 말한다. 청춘이 다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 구절은 젊음의 자랑이 아니라, 아직 끝내 무너지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윤동주에게 청춘은 기쁨의 시절이 아니라, 부끄러움을 끝까지 지키기 위한 마지막 체력이다.

시의 중심부는 별을 하나씩 붙들어 인간의 삶을 배열한다. “별 하나에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과… 동경과… 시와… 어머니.” 이 열거는 단순한 감정 목록이 아니다. 윤동주는 별 하나에 하나씩 의미를 붙임으로써, 무너질 것 같은 삶을 다시 정리한다. 흩어진 마음을 별이라는 점으로 묶어, 하나의 지도처럼 만든다.
특히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에서 반복되는 호명은 말이 아니라 숨이다. 여기서 어머니는 가족의 의미를 넘어 윤동주의 윤리적 근원을 상징한다. 윤동주는 언제나 어머니 앞에서 자기 자신을 점검한다. ‘부끄러움’이 가장 먼저 닿는 자리도 결국 어머니의 눈빛이다.

이어지는 긴 구절에서 윤동주는 이름들을 부른다. 소학교 친구들의 이름, 이국 소녀들의 이름, 벌써 애기 어머니가 된 아이들, 가난한 이웃, 동물들, 시인들의 이름까지. 이 호명은 추억의 나열이 아니라, 세계를 사랑하려는 방식이다. 윤동주는 사람을 ‘대상’으로 말하지 않는다. 이름으로 부른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한 존재를 한 존재로 인정하는 행위다. 그리움의 본질은 결국 ‘이름 부르기’이며, 윤동주의 시는 그 이름들이 모여 하나의 별자리가 된다. 그러므로 이 시의 별은 하늘의 별만이 아니라, 그가 만난 존재들의 점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곧바로 그는 거리의 현실을 꺼낸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이름을 불렀지만, 닿을 수 없다. 그리움은 불러도 사라지지 않는 거리를 남긴다. 그리고 가장 큰 거리, 가장 깊은 그리움은 어머니에게로 간다. “어머님, /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이 한 줄에서 윤동주의 시대가 조용히 드러난다. 식민지의 현실, 떠나 있는 고향, 몸과 마음이 분리된 삶. 윤동주는 이 시대의 상처를 정치적 언어로 말하지 않는다. 대신 어머니의 거리로 보여 준다. 그 거리는 모든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거리다. 그리움의 좌표가 되기 때문이다.

이 시의 절정은 “내 이름자”에서 열린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 … / 내 이름자를 써보고, /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윤동주는 자신의 이름을 썼다가, 스스로 덮는다. 여기서 이름은 자존심이 아니라 존재 자체다. 자기 이름을 흙으로 덮는 행위는, 스스로를 숨기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를 감당할 수 없어서 하는 행위다. 이름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부끄럽지 않은 이름’으로 살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윤동주의 부끄러움은 자기 비하가 아니라 자기 검열이며, 더 정확히는 자기 윤리다. 이 시가 “부끄러움의 시작”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윤동주는 별빛 아래에서 자기 이름을 다짐처럼 쓰지만, 곧 그 이름이 무거워 덮어버린다. 그 무게가 윤동주의 품격이다.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벌레의 울음은 자연의 소리처럼 들리지만, 윤동주는 그것을 자기 내면의 울음으로 듣는다.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것은, 이름에 걸맞은 삶을 살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마음의 소리다. 윤동주는 자신을 가엾게 만들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를 다잡는다. 슬픔을 방치하지 않고, 슬픔을 윤리로 바꾼다.

마지막 연에서 윤동주는 희망을 말한다. 그러나 그 희망은 환호가 아니라 조용한 약속이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여기서 봄은 시대의 변화이기도 하고, 인간 내면의 회복이기도 하다. 그는 이름을 묻었지만, 그 이름이 언젠가 “자랑처럼” 풀이되어 돋을 것을 믿는다. 이 믿음은 자기 위안이 아니라 자기 책임이다. 윤동주는 미래를 선언함으로써 현재를 견딘다. 봄을 믿는 것이 아니라, 봄이 오게 살겠다는 결심을 담는다.

〈별 헤는 밤〉은 결국 별빛으로 시작해 이름으로 끝나는 시다. 윤동주는 사랑을 말하지만 더 크게는 책임을 말하고, 추억을 말하지만 더 깊게는 윤리를 말한다. 그는 별을 세며 세계를 붙들고, 이름을 묻으며 자신을 단련한다. 그리고 끝내, 부끄러움이 절망이 아니라 인간을 살리는 힘임을 보여 준다.
이 시가 오늘도 오래 읽히는 이유는 명확하다. 누구나 잃어버린 이름을 다시 찾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별은 멀리 있지만, 윤동주의 부끄러움은 우리 가까이에 있다. 그 부끄러움이 있기에 인간은 아직, 인간으로 남는다.



■ 달삼과 오산학교 문예교사 청람의 대화



문예반실의 창문은 늘 반쯤 열려 있었다.
바람을 들이기 위한 것도, 냄새를 빼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청람은 “문장에는 공기가 필요하다”라고 말하곤 했다. 시는 책 속에만 있지 않고, 창밖의 소리와 함께 살아 움직인다고. 그날은 유난히 하늘이 낮았다. 해가 지기도 전에 교실 안엔 가을빛이 한 번 꺼졌다 다시 켜지는 듯 흐릿하게 번졌다. 운동장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방송은 중간에 잡음이 섞이며 끊겼고, 복도 끝에서는 청소부 아저씨의 빗자루 소리가 자꾸만 일정한 박자를 만들었다.

청람은 교지 원고를 넘기다 말고, 책상 모서리에 손을 올려놓은 채 있었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자세였다. 문예반실은 가끔 그런 방이 된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듯한데, 갑자기 한 사람의 마음이 도착하는 방.

문이 열렸다.
달삼이 들어왔다.
교복 상의 주머니가 불룩했다. 주먹을 넣어 부풀린 게 아니라, 종이를 숨기듯 넣어 둔 모양이었다. 그는 문을 닫을 때도 조용히 닫았다. 소리를 죽이는 버릇은, 말보다 마음을 먼저 쓰는 사람들에게서 자주 보이는 습관이다.
달삼은 책상 앞에 서서 주머니 속 종이를 꺼냈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종이는 여러 번 접혔다 펴진 흔적이 있었다. 읽고 또 읽은 사람의 구김이었다.

“선생님.”

달삼이 먼저 말했다.

“이 시는 왜 이렇게… 환한데, 왜 이렇게 아픕니까.”

청람은 종이를 받지 않았다.
그 대신 달삼의 눈을 먼저 봤다. 그 눈빛이 이미 시를 반쯤 설명하고 있었다.

“어디가 아프냐.”

달삼은 첫 연을 읽었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는 ‘가을로 가득’에서 멈췄다.
가을이라는 단어 하나가 문예반실 공기를 바꾸었다. 가을은 향기처럼 들어왔다가, 상처처럼 남는 계절이다.
달삼이 물었다.

“선생님, 윤동주는 왜 하필 가을입니까?”
“봄도 여름도 있는데… 가을로 가득이라니요.”

달삼은 잠깐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가을은… 끝나는 계절 같아서요.”

청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가을은 끝을 준비하는 계절이다.”

청람은 짧게 말했지만, 그 안에 오래된 사유가 들어 있었다.

“윤동주는 늘 시작이 아니라 ‘끝을 감당하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조용히 이어 말했다.

“가을은 낭만이 아니라 정리다.”

달삼은 곧바로 다음 줄을 읽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달삼이 여기서 목소리를 조금 낮췄다.

“선생님, 이게 이상합니다.”
“윤동주는 아무 걱정도 없다고 말하는데…”

그는 종이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윤동주가 걱정 없는 사람이었습니까?”

청람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걱정이 없어서 저렇게 쓰는 게 아니다.”
“걱정을 잠깐 내려놓아야 숨을 쉬니까 저렇게 쓴다.”

달삼이 다시 물었다.

“그럼 ‘아무 걱정도 없이’는… 거짓말입니까?”

청람은 그 말을 바로잡았다.

“거짓말이 아니라 ‘희망의 자세’다.”

청람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사람은 늘 걱정 속에 살지만, 가끔은 걱정을 ‘없는 것처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별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별을 본다는 건, 잠깐이라도 자기 마음을 놓아주는 일이다.”

달삼은 그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시의 가운데로 들어갔다.

“가슴속에 하나 들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달삼이 여기서 숨을 들이켰다.

“선생님.”
“윤동주는 왜 ‘다 못 헤는 것’을 핑계처럼 말합니까?”

달삼의 질문은 예리했다.

“아침이 오는 까닭이오.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오…”
“이건… 스스로를 달래는 말 같아요.”

청람이 미묘하게 웃었다.
달삼이 정확히 건드렸기 때문이다.

“달삼아.”
“윤동주는 달래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달삼이 눈을 크게 떴다.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요?”

청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윤동주는 자기 마음을 다루는 법을 아는 사람이다.”
“사람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건, 슬픔 때문이 아니라…”

청람은 말끝을 눌렀다.

“슬픔을 다루지 못해서다.”

그는 창밖을 가리키듯 손끝을 들어 말했다.

“아침이 온다는 말은 현실이고, 내일 밤이 남았다는 말은 약속이다.”
“윤동주는 현실과 약속 사이에 자기 심장을 묶어 둔다.”

그리고 한 줄처럼 말했다.

“그게 그의 생존이다.”

달삼은 그 말을 듣고 시의 핵심부를 읽기 시작했다.
이 부분은 읽는 사람마다 숨이 달라진다. 숨이 길어지고, 문장이 늘어진다. 별 하나에 붙는 감정들이 한 줄씩 내려앉기 때문이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달삼의 목소리는 ‘어머니’에서 흔들렸다.
교복 깃 사이로 들어온 저녁 공기가 갑자기 차가워진 듯했다.
달삼이 말했다.

“선생님, 여기서 윤동주는 갑자기… 사람을 울립니다.”
“왜 어머니를 두 번 부릅니까?”

달삼은 목소리를 낮추며 덧붙였다.

“그냥 어머니라고 하면 되잖아요.”

청람은 그 질문을 길게 끌지 않았다.
윤동주의 어머니는 길게 설명하면 오히려 흐려진다.

“두 번 부르는 건 말이 아니다.”

청람이 말했다.

“호흡이다.”

달삼이 되물었다.

“호흡…”

청람은 조용히 말해줬다.

“첫 번째 어머니는 부름이고, 두 번째 어머니는 무너짐이다.”
“윤동주는 어머니 앞에서 늘 중심이 무너진다.”
“무너지는 걸 숨기지 않는다.”

그는 한 문장을 덧붙였다.

“그게 윤동주의 순결이다.”

달삼은 시의 긴 ‘이름 부르기’ 대목으로 갔다.
친구들 이름, 이국 소녀들 이름, 벌써 애기 어머니가 된 아이들, 가난한 이웃, 동물들, 시인들의 이름들.
달삼은 그 부분을 읽다가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 윤동주는 왜 이렇게 이름을 많이 부릅니까?”
“이건 시가 아니라 명단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그는 쑥스럽게 웃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촌스럽지 않고, 오히려 아름답습니다.”

청람은 여기서 독자들이 놓치는 지점을 붙잡았다.
이름은 문학의 장식이 아니라 윤동주의 윤리라는 점.

“윤동주는 세상을 개념으로 부르지 않는다.”

청람이 말했다.

“이름으로 부른다.”

그리고 더 낮게 덧붙였다.

“이름을 부르면, 그 존재는 함부로 지워지지 않는다.”

달삼이 물었다.

“그럼… 윤동주는 사람들을 살리는 겁니까?”

청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기억한다는 건, 사랑의 방식이다.”
“윤동주는 그 사랑을 ‘큰 말’로 하지 않고, 이름으로 한다.”

달삼은 다음 구절로 넘어갔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달삼이 여기서 종이를 잠깐 내려다보았다.

“선생님, 이름을 불렀는데도 멀다고 합니다.”
“부르면 가까워지는 게 아닌가요?”

청람은 조용히 말했다.

“그리움은 부른다고 줄어드는 게 아니다.”
“오히려 더 분명해진다.”

달삼이 고개를 숙였다.
그 말은 불편했지만 사실이었다.
이어서 달삼은 가장 중요한 대목에 이르렀다.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달삼은 여기서 말을 멈췄다.
그 한 줄은 더 읽기 어려웠다. ‘북간도’라는 지명은 지리보다 마음을 찌르는 단어였다.
달삼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선생님, 윤동주는 어머니가 멀어서 슬픈 겁니까?”
“그냥… 보고 싶어서요?”

청람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보고 싶은 것도 맞다.”
“하지만 더 큰 건…”

청람은 잠시 멈추고 말을 꺼냈다.

“어머니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다.”

달삼의 눈이 커졌다.

“부끄럽지 않은…”

청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윤동주의 고향이고, 양심이고, 기준이다.”
“그 기준이 멀리 있으니, 더 외롭다.”

달삼은 마침내 시의 절정에 닿았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달삼은 여기서 종이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그 문장이 방 안에서 너무 크게 울렸기 때문이다.

“선생님.”

달삼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건 너무 잔인합니다.”
“왜 자기 이름을 쓰고… 왜 덮어 버립니까?”

달삼은 거의 속삭이듯 말했다.

“이름은 자랑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청람은 이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아주 낮고 단단하게 대답했다.

“윤동주는 자기 이름을 미워한 게 아니다.”
“자기 이름이… 무거웠던 거다.”

달삼이 되물었다.

“무겁다고요?”

청람은 분명히 선을 그었다.

“윤동주에게 이름은 명찰이 아니다.”
“이름은 책임이다.”
“그 이름으로 살아낼 수 있을지 두려워서,
한 번 묻어 본 거다.”

달삼은 눈을 감았다 뜨며 말했다.

“선생님, 그럼 윤동주는 겁쟁이입니까?”

청람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겁쟁이가 아니다.”
“겁을 아는 용기다.”

달삼이 숨을 삼켰다.
겁을 모르는 게 용기가 아니라, 겁을 알면서도 지키는 것이 용기라는 말이 가슴에 박혔다.
달삼은 다음 구절로 내려갔다.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달삼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생님… 벌레가 우는 게 아니라, 윤동주가 우는 거죠?”

청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윤동주는 자연을 빌려 자기 마음을 말한다.”
“벌레 소리로 자기 양심을 듣는 거다.”

달삼이 마지막 연을 읽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달삼의 목소리가 조금 밝아졌다.
그러나 그 밝음은 환희가 아니라, 조심스러운 희망이었다.
달삼이 물었다.

“선생님, 이건 희망입니까?”

청람은 짧게 답했다.

“희망이다.”

달삼은 다시 물었다.

“근데 왜 이렇게 조심스럽죠?”

청람은 이 시의 마지막 진실을 꺼냈다.

“윤동주의 희망은 ‘괜찮아질 거야’가 아니다.”
“윤동주의 희망은…”

청람이 말끝을 눌렀다.

“‘괜찮아질 때까지 부끄러움을 지키겠다’다.”

달삼은 그 말을 듣고, 종이를 천천히 접었다.
이번에는 숨이 조금 편해진 접힘이었다.
문예반실 문 앞에서 달삼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선생님.”
“별을 세는 게 이렇게 무거운 일인지 몰랐습니다.”

청람은 대답 대신, 창문을 조금 더 열었다.
밖에서 가을바람이 얇게 들어왔다.
바람은 별을 데려오지 못했지만, 별을 생각하게는 만들었다.
청람이 조용히 말했다.

“달삼아.”
“윤동주는 별을 헤는 게 아니라…”
“자기 이름을 헤는 거다.”

달삼은 고개를 끄덕이고 복도로 나갔다.
교복 뒷모습이 멀어지며 형광등 아래로 사라졌다.
문예반실에 남은 것은 시집 한 권과,
한 사람의 부끄러움이 지켜낸 작은 빛이었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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