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상처가 향기를 만든다
청람 김왕식
평온한 날의 소나무에서는 특별한 향이 나지 않는다. 햇빛이 고르게 비치고 바람이 잠잠할 때, 나무는 그저 나무로 서 있을 뿐이다. 그러나 숲을 걸으며 가장 짙은 송향을 맡게 되는 순간은 따로 있다. 세찬 바람이 지나간 뒤다.
바람은 나무를 시험하지 않는다. 다만 지나갈 뿐이다. 그러나 그 지나감이 가지를 찢고 결을 갈라놓는다. 그때 소나무는 침묵하지 않는다. 갈라진 틈으로 송진을 밀어 올린다. 투명하고 끈적한 액체가 상처를 감싸며 천천히 굳어 간다. 그 과정에서 향이 오른다. 짙고 깊은 송향이 숲을 채운다.
향은 꽃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꽃보다 더 오래 남는 향은 상처에서 비롯된다. 송진은 단순한 치유제가 아니다. 그것은 나무가 자기 몸의 상처를 스스로 꿰매는 방식이며, 동시에 자신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언어다. 상처를 숨기지 않고, 그 위에 머물며, 그 틈을 통해 자신의 본질을 드러낸다.
영혼 또한 다르지 않다. 아무 일 없는 날에는 깊은 향이 나지 않는다. 마음이 고요할 수는 있지만, 그 고요는 아직 응축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바람이 삶을 스치고 지나가며 마음의 가지를 찢어 놓을 때, 우리는 비로소 안쪽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 틈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눈물이다. 눈물은 약함의 표지가 아니라, 내부가 외부와 맞닿는 통로다.
상처는 삶을 무너뜨리는 사건이 아니라, 삶을 깊게 만드는 사건이다. 찢긴 자리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새로이 만난다.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진심, 억눌려 있던 온기, 쉽게 드러내지 못했던 연약함이 그 틈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시간이 지나며 하나의 향으로 응결된다.
짙은 향은 고통의 부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통과의 기록이다. 많이 견딘 나무일수록 향이 깊은 것은, 그만큼 더 많은 바람을 겪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깊은 사람일수록 말은 적지만 향은 오래 남는다. 그 향은 과시하지 않는다. 다만 곁에 머물며 공기를 바꾼다.
평온은 필요하다. 그러나 평온만으로는 깊이가 생기지 않는다. 상처는 원하지 않아도 찾아온다. 하지만 그 상처를 어떻게 품느냐에 따라 향의 농도가 달라진다. 찢긴 자리를 원망할 수도 있고, 그 틈으로 스며 나오는 빛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소나무는 바람을 막지 못한다. 대신 바람이 남긴 자리에 향을 남긴다. 사람 또한 삶의 바람을 피할 수는 없다. 다만 그 바람이 지나간 뒤 어떤 향을 남길 것인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상처는 흔적을 남긴다. 그러나 그 흔적이 향으로 바뀌는 순간, 고통은 의미가 된다. 그리고 우리는 안다. 향은 상처의 반대말이 아니라, 상처가 깊어질 때 비로소 피어나는 또 하나의 생명이라는 것을.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