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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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의 산등성이에서
— 어머니 황순이를 부르며
명절이다
이맘때가 되면
집 안의 공기가 먼저 달라지곤 했다
아직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신 새벽 부엌에서
아궁이 불은 먼저 깨어나
장작을 끌어안고
가마솥 밑을 오래 핥고 있었다
국이 끓어오르는 소리는
한 해의 첫 숨 같았고
그 김은
설날 아침의 기도처럼
지붕 밑으로 조용히 번졌다
설빔은
새 옷이 아니라
밤새 다려 놓은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 어머니의 시작은
명절보다 먼저
전쟁이었다
왜놈들의 군홧발 아래
열네 살에 댕기 풀고
이름보다 먼저
눈물을 배웠다
열여섯에
자기만 한 첫딸을 품고
그 뒤로
줄줄이 여섯을 낳는다
젖을 물리던 품은
쉰 적이 없고
등은
잠깐도 펴지지 못했다
남편은
뭐가 그리 급했는지
서른아홉에
하늘나라로 먼저 가버리고
서른셋
그 어린 나이에
세상의 짐을
혼자 등에 올려놓았다
밥은
늘 여섯 몫이었고
걱정은
늘 일곱 몫이었다
홀로 된
아흔의 시어머니를 모시고
고부간 갈등 한 줄 없이
효부로 살았다
말 한마디
먼저 높이지 않았고
밥 한 숟갈
먼저 들지 않았다
두 여인의 삶은
한 지붕 아래
서로의 등을
버팀목 삼아 이어졌다
두 여인 올림픽이 시작된
그해 늦가을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나란히
하늘로 갔다
그때 나이
환갑상도 받지 못한
쉰아홉
누가 그랬던가
아홉수 넘기기 힘들다고
지아비는 서른아홉에
자신은 쉰아홉에
세상을 떴다
지금
그 어머니는 없다
깊은 산속
양지바른 곳에
누런 잔디 속으로
몸을 낮추고 계신다
그곳에서도
아마
육 남매의 이름을
가슴에 품고
팔다리 편히 뻗지 못한 채
웅크려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고 계실 것이다
흙 위에 누워서도
기도는
위로 향한다
명절이 오면
산은 더 깊어지고
하늘은 더 멀어진다
나는
그 산등성이에 엎드려
잔디를 움켜쥔다
흙의 온도가
손바닥을 타고 올라온다
그 온기가
한때 나를 품었던
어머니의 체온과
닮아 있다
하늘을 향해
이름을 부른다
황
순
이
석 자의 이름이
가슴을 찢고 올라
허공에 걸린다
불러도
대답은 없고
대답이 없어도
나는
다시 부른다
황 ㅡ순 ㅡ이
그 이름이
명절의 첫제사처럼
입안에서 떨린다
어머니는
이제
돌아오지 않지만
그 손길은
여전히
가마솥의 김처럼
우리의 오늘을
데우고 있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