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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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베개
— 당신이 먼저 깨어 있던 자리
청람
명절 전날 밤이 되면, 어머니는 늘 장롱 깊숙한 곳에서 손때 묻은 낮은 베개 하나를 꺼내어 햇빛이 들지 않는 방 한쪽에 조용히 내려놓곤 했다.
그 베개는 우리를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니라, 외려 우리가 잠든 뒤에도 끝내 눕지 못하고 앉은 채로 밤을 지새워야 했던 당신의 등을 잠깐 기대기 위한 자리였다.
우리는 명절 아침에 일어나면 늘 말끔히 정돈된 이불과 베개 위에서 하루를 시작했지만, 그 포근함이 어떤 밤의 무게 위에 놓여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의 잠은 언제나 우리보다 늦게 시작되었고, 우리가 새벽 공기를 가르며 뒤척일 즈음에는 이미 부엌에서 쌀 씻는 물소리로 하루를 열고 있었다.
그 낮은 베개는 당신의 피로를 받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당신은 그것을 단 한 번도 높이 베지 않았다.
자식의 삶이 조금이라도 편안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앞에서, 자신의 편안함은 언제나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기 때문이다.
명절 밤, 손님이 돌아가고 설거지가 끝난 뒤에도 당신은 베개 위에 머리를 완전히 내려놓지 못한 채,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내일의 밥과 다음 해의 걱정을 먼저 떠올리고 있었다.
지금도 장롱 속에는 그 낮은 베개가 그대로 남아 있지만, 나는 그것을 꺼내어 베어 볼 수가 없다.
혹시라도 그 위에 머리를 올리는 순간, 당신이 잠들지 못했던 수많은 밤들이 한꺼번에 내 이마로 흘러들어올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명절은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날이 아니라, 누군가의 잠들지 못한 밤 위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날이었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