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치하 창씨개명 · 신사참배에 대한 성찰적 재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일제치하 창씨개명 · 신사참배에 대한 성찰적 재고
— 단죄를 넘어, 인간 조건을 묻는 역사 읽기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Ⅰ. 들어가는 말 ㅡ 판단 이전에 서야 할 자리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는 일제강점기 말 조선 사회에 강요된 대표적 동화정책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행정 조치나 종교 의례의 문제가 아니라, 식민 권력이 인간의 정체성과 내면 깊숙한 곳까지 개입하려 했던 총체적 통치 방식의 일부였다. 이름은 개인의 표식이면서 동시에 가문과 지역, 언어와 역사, 기억과 정서를 아우르는 상징이다. 또한 신사참배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삶의 궁극적 가치와 신앙의 방향을 건드리는 행위였다.


이처럼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는 인간 존재의 핵심을 겨냥한 정책이었기에, 그것을 둘러싼 선택 역시 단순히 도덕적 의지의 문제로 환원될 수 없다.
오늘의 시선에서 이를 바라볼 때 우리는 흔히 옳고 그름의 언어로 재단하려 한다.

그러나 역사 앞에서의 평가는 언제나 신중해야 한다. 당시의 현실은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과 가족, 신앙과 직업, 공동체와 양심이 얽힌 복합적 조건 속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학교와 관청, 직장과 지역사회 전반에서 제도적 압박이 작동했고, 거부자는 교육 · 취업 · 행정 절차에서 실질적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때로는 가족과 공동체 전체가 위험에 놓이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인의 선택은 결코 고립된 결단이 아니라 구조 속에서 이루어진 응답이었다.

실제로 일부는 끝까지 거부했고, 일부는 끝내 수용했다. 거부한 이들의 결단은 존중받아야 마땅하지만,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가능한 길이었던 것은 아니다. 반대로 수용한 이들의 선택을 단순히 비난하는 것 또한 충분한 이해라고 할 수 없다. 많은 경우 그들은 외형적으로는 제도에 응하면서도 내면에서는 끝내 동화되지 않았고, 해방 이후 깊은 자책과 성찰 속에서 삶을 이어갔다.

이처럼 창씨개명과 신사참배의 역사는 하나의 단일한 의미로 환원되지 않으며, 각기 다른 삶의 조건 속에서 형성된 복수의 경험을 담고 있다.

따라서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무조건 부정하거나 단죄하는 태도만으로는 그 시대의 인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오늘의 우리는 비교적 안전한 시간 속에서 과거를 평가하고 있지만, 만약 같은 상황에 놓였다면 과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었을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가족의 생존과 미래, 공동체의 안전과 자신의 신념이 동시에 시험받는 상황에서 인간은 언제나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 앞에서 먼저 서야 할 자리는 판단의 자리가 아니라 성찰의 자리다.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는 한 시대의 폭력적 정책이었음과 동시에, 인간이 극한의 조건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 존재인가를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그러므로 오늘의 독해는 단죄보다 이해를, 규정보다 질문을, 확정보다 성찰을 앞세울 때 비로소 그 시대의 인간과 더 가까워질 수 있다.



Ⅱ. 구조적 폭력과 인간의 한계 ㅡ거부와 수용의 갈림길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는 형식상 ‘선택’처럼 보였으나 실제로는 강력한 구조적 압박 속에서 이루어졌다. 이는 단순한 법적 조치가 아니라 학교 · 직장 · 관공서 · 종교기관 · 지역사회 전반에 걸쳐 작동한 일상적 통제 체계였다. 거부자는 교육과 취업에서 배제되거나 행정 절차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고, 때로는 감시와 체포, 투옥의 위험에 직면했다.
특히 교사 · 공무원 · 종교인처럼 공적 영역에 놓인 이들에게 그 압박은 더욱 직접적이었다. 이처럼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는 개인의 결단 이전에 이미 구조가 방향을 규정한 선택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일부는 완강히 거부했고, 일부는 끝내 수용의 길에 섰다. 이육사와 주기철은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한 상징적 인물로 자주 언급된다. 이육사는 수차례 투옥과 고문을 겪으면서도 이에 응하지 않았고, 그의 필명조차 수인번호에서 비롯된 저항의 표지로 남았다. 그의 시 세계는 결연한 개인의 태도가 민족적 저항의 언어로 승화된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주기철 목사 역시 신사참배와 창씨개명을 모두 거부하며 신앙적 양심을 지켰고, 반복된 투옥과 고문 끝에 순교에 이르렀다. 이들의 선택은 분명 도덕적 결단이었으나, 동시에 극단적 희생을 요구한 길이었다. 이 점에서 그들의 거부는 존경의 대상이면서도, 누구에게나 가능한 선택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함께 드러낸다.

반면, 윤동주와 한경직은 끝까지 버티지 못한 경우로 자주 논의된다. 윤동주는 일본 유학 중 창씨개명(히라누마 도주)을 하게 되었으나, 그의 시에는 식민지 청년의 죄책감과 성찰이 깊이 스며 있다. 그의 작품은 외형적 수용과 내면적 저항이 교차하는 기록이라 할 수 있다.

한경직 목사 역시 창씨개명과 신사참배 문제 속에서 깊은 갈등을 겪었고, 해방 이후 이를 두고 평생 회개적 태도를 보였다. 이는 단순한 실패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압박과 신앙적 양심 사이에서 겪은 인간적 고통의 증거였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러한 상반된 선택이 개인의 도덕성 차이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식민지 현실은 사람마다 다른 조건과 책임을 부과했다. 어떤 이는 독신이었고, 어떤 이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으며, 어떤 이는 공적 위치에 있었고, 어떤 이는 학생이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삶의 자리에서 동일한 선택을 기대하는 것은 역사적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일일 수 있다.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둘러싼 거부와 수용의 갈림길은 개인의 의지뿐 아니라 구조적 폭력과 인간 조건의 한계를 함께 드러낸다. 그 속에서 드러난 것은 단순한 영웅과 배신자의 구도가 아니라, 압박 속에서도 양심을 지키려 했던 다양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따라서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덕적 평가 이전에, 그 시대를 살았던 인간의 복합적 처지를 먼저 읽어내는 태도가 필요하다.




Ⅲ. 비난의 자리에서 돌아보는 자기 성찰

오늘의 우리는 비교적 안전한 시간 속에서 과거를 평가한다. 제도적 폭력과 생존의 공포가 일상으로 작동하던 시대를 경험하지 않은 채, 결과만을 놓고 옳고 그름을 판정하기는 쉽다.

그러나 같은 상황에 놓였다면 과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가족의 생존, 공동체의 안전, 자신의 직업과 미래가 동시에 위협받는 조건 속에서 인간은 언제나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 흔들림은 나약함의 증거이기보다 오히려 인간 조건의 본질에 가까운 것이다.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는 개인에게 단순한 결단을 요구한 사건이 아니라 삶 전체를 겨냥한 압박이었다. 선택은 언제나 개인의 양심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책임져야 할 타인의 삶과도 긴밀히 연결된다. 부모를 부양해야 했던 가장,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노동자, 신도와 공동체를 지켜야 했던 종교인에게 선택은 결코 단독의 문제가 아니었다. 따라서 당시의 선택을 오늘의 잣대로 단정하는 일은 역사적 맥락을 지워버리는 위험을 안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둘러싼 역사에서 필요한 태도는 비난 이전의 성찰이다. 당시를 살았던 이들을 단순히 ‘협력자’나 ‘배신자’로 규정하는 것은 현재의 도덕을 과거에 투사하는 일일 수 있다. 외려 그들의 선택 속에서 인간의 연약함과 동시에 양심의 흔적을 읽어내는 일이 더 중요하다. 실제로 많은 이들은 제도에 형식적으로 응하면서도 내면에서는 끝까지 동화되지 않았고, 해방 이후 깊은 자책과 반성을 삶의 일부로 짊어졌다. 이 점에서 그들의 삶은 단순한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성찰의 대상이 된다.

또한 자기 성찰은 과거를 이해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윤리적 태도를 돌아보게 한다. 극단적 상황에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를 묻는 일은 곧 오늘의 사회에서 우리가 어떤 기준을 세우고 살아가는가를 묻는 일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역사적 선택을 쉽게 판단하는 태도는 결국 현재의 우리 자신을 과신하는 데서 비롯될 수 있다.

따라서 창씨개명과 신사참배의 문제를 마주할 때 필요한 것은 단정적 판단이 아니라 질문하는 태도다. 그 시대에 살았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 것인가, 그리고 지금의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양심을 지킬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 뒤따라야 한다. 이러한 질문 앞에서 비로소 우리는 과거를 타인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된다. 결국 비난의 자리에서 성찰의 자리로 이동하는 순간, 창씨개명과 신사참배의 역사는 단순한 과거 사건을 넘어 오늘의 윤리를 묻는 살아 있는 질문이 된다.




Ⅳ. 역사 인식의 윤리: 이해와 책임 사이


이러한 성찰은 결코 과거를 면죄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창씨개명과 신사참배가 식민 권력에 의해 강요된 폭력적 정책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며, 그 역사적 성격 역시 분명히 규정되어야 한다. 문제는 그 정책 속에서 살아야 했던 개인의 삶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할 것인가에 있다. 역사 인식의 윤리는 단죄와 이해 사이의 균형 위에서만 성립한다. 단죄만으로는 인간의 복합적 현실을 설명할 수 없고, 이해만으로는 역사적 책임을 분명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선 거부한 이들의 용기는 분명 존중되어야 한다. 극단적 압박 속에서도 신념을 지킨 선택은 인간 정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례다. 그러나 동시에 그 선택이 얼마나 큰 희생을 요구했는지도 함께 기억되어야 한다. 거부의 길은 단순한 도덕적 결단이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까지 위협하는 현실적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었다. 이 점을 인식할 때 비로소 그들의 선택은 추상적 영웅주의가 아니라 구체적 역사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반면, 수용의 길에 섰던 이들의 삶 역시 역사적 이해 속에 놓여야 한다. 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제도적 압박 속에서 생존과 책임을 이유로 선택을 달리했으며, 해방 이후 깊은 자책과 반성 속에서 생을 이어갔다. 이 점에서 그들의 선택을 단순히 도덕적 실패로 규정하는 것은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러한 평가 방식은 식민지 현실이 개인에게 가한 구조적 폭력을 간과하게 만든다.

역사 인식의 윤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요구된다. 과거를 바라보는 태도는 도덕적 기준을 내려놓는 것도, 일방적 단죄에 머무는 것도 아니라, 책임과 이해를 함께 사유하는 데 있다. 식민 권력의 폭력성을 분명히 규정하면서도 그 속에서 살아간 개인의 선택을 다층적으로 읽어내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성숙한 역사 인식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균형은 현재의 윤리적 기준을 세우는 데에도 중요하다. 과거를 왜곡 없이 이해할 때 우리는 현재의 사회적 문제를 바라보는 기준 또한 더욱 깊어질 수 있다. 역사는 단순한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는 과정이며, 동시에 현재를 성찰하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이해와 책임 사이의 균형 속에서만 우리는 과거를 왜곡하지 않고도 현재의 윤리적 기준을 세울 수 있다.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둘러싼 논의는 단순한 과거의 평가를 넘어, 인간과 사회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묻는 윤리적 질문으로 남는다.




Ⅴ. 맺음말 ㅡ 역사 앞에서의 겸허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는 인간이 극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가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다. 그것은 단순한 제도사나 종교사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의 양심과 책임, 두려움과 생존 본능이 어떻게 충돌하는가를 드러낸다. 따라서 그 시대의 사람들을 평가하는 일은 과거를 재단하는 행위이기 이전에, 인간 자신을 성찰하는 일에 가깝다. 우리는 그들의 선택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강할 수 있는지뿐 아니라, 얼마나 흔들릴 수 있는지도 함께 본다. 이 이중의 인식이야말로 역사 앞에 서는 태도의 출발점이 된다.

오늘의 우리는 비교적 안전한 조건 속에서 과거를 바라본다. 그러나 그러한 안전은 우리 판단을 외려 가볍게 만들 위험도 내포한다. 만약 같은 시대, 같은 조건 속에 놓였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 것인가라는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가족의 생존과 공동체의 안위, 자신의 직업과 신념이 동시에 시험받는 상황에서 인간은 쉽게 단정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이 물음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과거를 타인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된다.


따라서 역사 앞에서 요구되는 태도는 무엇보다 겸허함이다. 겸허함이란 판단을 유보하는 소극적 태도가 아니라, 이해하려는 의지와 성찰하려는 노력을 포함하는 적극적 태도다. 창씨개명과 신사참배의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누가 옳았는지를 가르는 일이 아니라, 왜 그런 선택이 이루어졌는지를 묻는 일이며, 그 속에서 인간이 지닌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확인하는 일이다.

또한 이러한 성찰은 현재를 향한다. 극단적 상황에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를 묻는 문제는 오늘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권력과 양심, 생존과 신념이 충돌하는 상황은 시대를 달리해 반복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창씨개명과 신사참배의 역사는 이미 지나간 사건이 아니라, 오늘의 윤리적 기준을 되묻게 하는 살아 있는 질문으로 남는다.

우리가 얻어야 할 결론은 단정적 판단이 아니라 더 깊은 질문이다. 그 시대에 살았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 것인가, 그리고 지금의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양심을 지킬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이어져야 한다. 이 질문 앞에 서는 순간, 창씨개명과 신사참배의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을 넘어 인간을 이해하는 거울이 된다. 역사 앞에서의 겸허란 바로 그 거울 앞에 오래 서 있는 태도이며,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과거로부터 배울 수 있는 가장 깊은 교훈이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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