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굴레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약속의 굴레






약속은 언제나 가볍게 시작된다. 한마디 말, 짧은 고개 끄덕임, 혹은 눈빛 하나로도 약속은 성립된다. 그 순간 약속은 바람처럼 가볍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무게를 얻는다.
처음에는 서로를 향한 믿음의 표현이었던 것이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 굴레가 되어 마음을 조인다.
약속은 인간을 이어주는 다리이면서 동시에 인간을 묶어두는 끈이 된다.


사람은 약속 속에서 살아간다.
태어나면서부터 이름을 받고, 관계 속에서 역할을 부여받고, 그 역할에 맞는 책임을 수행하며 살아간다.
가족에게, 친구에게, 사회와 자신에게 수많은 약속을 한다. 그 약속들은 대부분 말로 명시되지 않지만, 일상의 질서로 작동한다.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일조차 어제의 자신과 맺은 약속의 연장이다. 이렇게 보면 약속은 인간 존재를 떠받치는 보이지 않는 구조이기도 하다.

허나
약속은 언제나 따뜻한 의미로만 남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약속은 기대가 되고, 기대는 의무가 되며, 의무는 부담이 된다. 처음에는 기쁨으로 시작된 약속이 어느새 지켜야 할 형식으로 굳어지기도 한다. 약속이 굴레가 되는 순간은 바로 이때다.

마음에서 우러난 선택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반복으로 느껴질 때, 약속은 자유를 제한하는 장치처럼 다가온다.
그렇다고 약속을 벗어난 삶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약속 없는 삶은 자유로울 것 같지만, 사실은 더 큰 불안을 동반한다. 약속이 사라지면 관계도 희미해지고, 관계가 희미해지면 존재의 자리가 흔들린다. 인간은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로 살아갈 수 없으며, 어느 정도의 얽힘 속에서만 안정과 의미를 얻는다.
이 점에서 약속의 굴레는 단순한 속박이 아니라 삶의 질서를 유지하는 틀이기도 하다.

문제는 약속 자체가 아니라 약속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타인의 기대에 끌려 무의식적으로 맺은 약속은 쉽게 굴레가 되지만, 스스로 선택한 약속은 오히려 삶의 중심이 된다. 굴레처럼 느껴지는 약속도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순간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그것이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는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는지를 묻는 순간 약속은 억압이 아니라 책임으로 바뀐다.

약속은 또한 인간의 시간성을 드러낸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나를 연결하는 매듭이 바로 약속이다. 우리는 미래를 확신할 수 없지만 약속을 통해 미래를 예감한다. 이때 약속은 그저 의무가 아니라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지속시키는 방식이 된다.

약속의 굴레란 벗어나야 할 사슬이 아니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 가깝다.
인간은 약속 없이 살 수 없고, 동시에 약속만으로 살 수도 없다. 필요한 것은 약속을 줄이거나 늘리는 일이 아니라, 그것을 살아내는 방식이다. 약속을 짐으로 느끼지 않기 위해서는 그 약속이 시작된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여,
약속의 굴레는 스스로에게 되돌아오는 길이다. 그 굴레를 벗으려 애쓸수록 외려 더 단단히 얽히고, 받아들일수록 조용히 느슨해진다. 약속은 묶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놓치지 않기 위해 존재한다.
그 사실을 기억하는 순간, 굴레는 더 이상 족쇄가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원이 된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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